K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세징야(브라질)가 귀화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최고 외국인선수’의 의지
세징야는 K리그에 발을 내디딘 2016년부터 최고의 활약을 펼쳐온 선수다. 세징야는 2부리그에 있던 대구를 1년 만에 1부로 끌어올렸으며 1부리그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지난 시즌 ‘대구 돌풍’을 이끌며 35경기 15골 10도움을 기록해 MVP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세징야는 K리그 입성 이후 줄곧 대구에서만 활약하며 팀을 상징하는 선수가 됐다. 외국인 선수로선 드물게 팀 내 부주장을 맡고 있다. 구단 역사에서 역대 최다골, 최다 도움 기록도 가지고 있다. K리그 통산 기록은 131경기 47골 39도움이다.
이처럼 현 K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세징야가 귀화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로 귀화 요건 중 하나인 ‘5년간 국내 거주’를 채웠기에 일반귀화에 도전할 전망이다.
‘K리그 귀화 1호’ 신의손 코치는 “귀화 시험 과정에서 다소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간 혼혈이나 이민자가 아닌 순수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는 일반귀화와 특별귀화로 나뉘어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일었던 ‘귀화 러시’는 대부분 특별귀화였다. ‘특정 분야(체육)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해 국익에 기여할 것’을 인정받아 아이스하키, 바이애슬론, 루지 등 다양한 종목에서 귀화 허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올림픽 출전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한국을 떠나기도 해 눈총을 받았다. 국내 동계종목 저변이 열악한 탓이라는 항변도 있었다.
축구와 유사하게 구기종목이면서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농구에서도 특별귀화가 진행된 바 있다. 미국 출신 라건아(미국명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2018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KBL과 국가대표팀에서 현재까지 뛰고 있다. 2019 중국 농구월드컵에서도 우리나라의 핵심선수로 맹활약했다.
축구계에서도 귀화는 종종 있었다. 최초 사례는 2000년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이었다. 이후 데니스, 이싸빅(싸빅), 마니산(마니치) 등이 뒤를 따랐다. 마니산을 제외한 이들은 태극마크를 달지는 못했지만 귀화 이후로도 수년간 국내 리그에서 활약했다. 신의손은 지도자, 이싸빅은 에이전트로 최근까지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귀화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국가대표, 월드컵 출전 등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의향을 내비쳤지만 해외에서 거액의 이적 제안이 들어오자 홀연히 떠나기도 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축구 국가대표에 선발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귀화를 고려했던 사례도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이 2012년 당시 전북 소속으로 뛰던 에닝요(브라질)의 귀화를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귀화설에 불이 지펴지자 여론이 좋지 못했다. 에닝요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점을 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 떨어진다, 귀화 진정성에 의심이 든다’는 지적이 뒤따른 것이다. 결국 대한체육회가 특별귀화심사요청을 기각하며 에닝요 귀화는 무산됐다.
아내(가운데)와 조광래 대표이사(오른쪽)의 존재는 세징야의 귀화 과정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귀화·국대 합류…실현 가능성은?
세징야의 결심으로 2005년 마니산 이후 끊겼던 ‘귀화 축구선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당장의 벽은 필기와 면접으로 진행되는 귀화시험이다. 대한민국의 언어, 역사, 문화 등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받는다. 이를 대비해 세징야는 한국어 공부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세징야가 한국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세징야와 5년째 함께 한국에서 거주 중인 아내 역시 향후에도 한국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바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세징야와 달리 비교적 한국어 공부에 투자할 여유가 있기에 아내가 귀화시험에 합격한다면 배우자인 세징야가 한국 국적을 얻어내기 쉬워진다.
대구 구단 살림을 이끄는 조광래 대표이사의 존재도 세징야 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 대표는 안양 LG 감독 시절이던 2000년, K리그 최초 귀화인 신의손 만들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현재 김해시청에서 선수들을 지도 중인 신의손 코치는 과거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의 귀화 당시를 떠올리며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조광래 감독이 ‘경기에 뛸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귀화 제의를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현실로 이뤄졌다”고 회상한 바 있다.
다만 신의손 귀화 당시와 상황이 다소 다를 것으로 보인다. 신의손 코치는 “그때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돼 면접장에도 방송 카메라가 들어왔다. 면접관이 카메라 때문에 많이 긴장했는지 질문을 몇 개 안 하고 시험이 끝났다. 내 한국어 실력에 확신이 없었는데 덕분에 합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징야가 시험의 벽을 넘는다고 해서 곧장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아니다. 국익에 기여할 것을 인정받는 특별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귀화에 성공한다면 K리그 구단에서 외국인 쿼터를 소모하지 않고 활약할 수 있을 테지만 국가대표 선발은 다른 선수들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
한 축구계 인사는 “귀화 절차를 마친다고 가정하면 세징야는 분명 대표팀에 도움이 될 만한 선수라고 본다. 다만 대표팀 선발까지 코칭스태프의 선발, 여론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세징야가 좋은 선례로 남는다면 앞으로도 또 다른 귀화 국가대표 선수가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세징야의 행보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