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용은 비시즌마다 반복되는 산악훈련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했다. 사진=연합뉴스
“비시즌마다 산을 타고 트랙을 뛰는 게 힘들어서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운동이 농구 선수한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체력을 다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을 듣고 싶다. 미국 NBA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에서 비시즌마다 산악 훈련으로 체력 훈련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훈련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최근 소속팀인 서울 SK와 3억 원의 연봉(지난 시즌 1억 7000만 원)에 계약한 최준용은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팀들이 비시즌 때마다 반복하는 산악과 트랙 훈련의 비효율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들마다 몸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고, 비시즌이라 부상 정도의 차이도 있는데 팀 공식 훈련이라는 명분 아래 해마다 산을 타는 훈련이 얼마나 효율적일지 궁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각 팀마다 트레이너가 있다. 최준용은 트레이너가 선수들의 몸 상태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선수들은 그 프로그램대로 몸을 만들면서 개인 훈련과 팀 훈련을 병행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팀들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비시즌 때마다 미국으로 스킬 트레이닝을 배우러 갔다. 엄청난 훈련량과 강도 높은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도 훈련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내가 왜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 훈련을 해서 어떤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하고 훈련에 임했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자신의 유튜브, ‘한국 농구가 망해가고 있는 이유’에서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선수 몸이 아프고, 그 시합을 뛰면 선수 몸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트레이너들은 감독 눈치보느라 그래도 참고 뛰라고 말한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실제로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창원 LG를 이끌던 현주엽 전 감독은 허리 부상으로 훈련을 진행할 수 없었던 LG 세이커스 정희재에게 방송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허리 안 좋은 거 아니까 그냥 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햄스트링 부상이 있던 김시래한테도 훈련 강행을 요구해 눈길을 모았다. 하승진은 현주엽 전 감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선수의 몸 상태를 외면한 채 정해진 훈련량을 중요시하는 일부 지도자들의 강압적인 훈련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대성은 선수 개성을 존중해주는 미국 무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진=연합뉴스
프로농구에서 이대성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농구 인생은 ‘다름’과의 싸움이었다. 중앙대 3학년 시절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 2에 속한 브리검영대 농구부에 편입한 것도, 현대 모비스 입단 후 미국프로농구(NBA) 산하 G리그의 문을 두드린 것도,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현실이었다.
중앙대 시절 이대성은 거의 경기에 뛰지 못했다. 부상도 있었고, 당시 포워드로서의 주전 경쟁에 밀린 탓도 컸다. 그래서 그는 코칭스태프에게 포인트가드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냉정히 봤을 때 포인트가드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앙대에서 포인트가드로 뛸 수 없다면 과감히 중퇴하고 미국 대학에 편입해서 또 다른 기회를 찾고 싶었다. 브리검영대에서는 포인트가드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와그너 감독님은 농구의 기본기부터 가르쳐주셨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다.”
이대성이 미국 농구를 배우기 위해 찾았던 브리검영대의 켄 와그너 감독은 이대성의 다름을 인정했던 지도자다.
“와그너 감독님은 선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분이었다. 미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이대성 하면 다르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와그너 감독님은 항상 날 이해해주셨고, 존중해주셨다. 나의 다름이 나쁜 에너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셨다. 감독님 덕분에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10년 뒤, 20년 뒤에는 나의 다름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은 일부 선수들이 언급하는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코치, 감독대행, 그리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경험한 추승균 전 KCC 감독은 이에 대해 나름 소신을 갖고 이렇게 설명했다.
“NBA 선수들을 보면 개인 생활보다 연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비시즌 때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치열하게 훈련에 매달린다. 특히 스타플레이어들일수록 개인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다면 우리 선수들은 어떠할까. 물론 NBA 선수들처럼 높은 연봉을 받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할 정도의 환경이 아니지만 얼마나 간절하게 시즌을 준비하는지 묻고 싶다. 시즌 마치고 휴식기를 가진 후 팀 훈련을 시작하면 보통 오전 오후 훈련으로 진행한다. 저녁 식사 후의 야간 훈련은 선수의 선택에 맡기는데 이때 선수들 훈련하는 걸 보면 정말 야간 훈련이 필요해서 나온 건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코치 눈치 보느라 훈련하는 흉내만 내는지 알 수 있다.”
휴식도 훈련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추 전 감독도 그 내용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 전 제대로 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좋은 건 선수들의 자발적인 훈련이다. 만약 슛에 문제가 있는 선수라면 팀 훈련 한두 시간 전에 미리 나와 슛 연습을 하는 열정을 보여야 한다. 기억나는 외국인 선수 중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안드레 에밋은 슛이 안 들어가면 훈련 마치고 수백 개의 슛을 쏘며 감각을 되찾으려 애를 썼다. 내가 선수들한테 보고 싶었던 건 그런 열정과 간절함이었다.”
추 전 감독은 “이렇게 말하는 나를 꼰대라고 단정 짓지 말고 선수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지를”이라고 말한다.
창원 LG의 조성원 신임 감독은 선수 시절 가장 싫어했던 훈련으로 산악 훈련을 꼽았다. 한 팀을 이끌게 된 지금 자신은 선수들에게 강압적인 훈련보다 즐겁고 효율적인 훈련을 이끌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 KT 서동철 감독, 울산 현대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모두 산악 훈련을 지양하고 기술 훈련에 더 중점을 두는 지도자들이다. 유튜브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NBA를 접하며 성장한 농구 선수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훈련법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승진, 전태풍의 이야기가 프로농구의 모두를 대변하진 않지만 지도자라면, 농구인이라면 곱씹어볼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선수들은 공부하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