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국가인권위원회였다. 최 선수의 법률대리인 측에서 최 선수의 사망 하루 전 국가인권위원회에 가혹 행위 등과 관련해 진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희 문체부 2차관은 이번 사건에서 특별조사단장을 맡았다. 사진=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2월 최 선수 측에서 진정서를 제출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2월 12일에 최 선수의 부친이 인권위에 진정을 했다. 인권위 조사관이 선수 측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부친이 가해자의 형사처벌을 원한다고 하기에 빠른 대응을 위해선 검찰에 진정서를 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안내해드렸다. 인권위가 직권조사 권한이 없는 터라 그 내용을 전했더니 최 선수 측에서 진정을 취하하고 검찰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직권조사 권한 없는 인권위
지난 6월 25일에는 제3자인 법률대리인들이 인권위의 문을 두드렸다. 경주시체육회의 징계를 원한다는 법률대리인의 진정이 접수됐고, 인권위도 이를 받아들여 조사를 시작하려 했는데 다음날인 26일, 최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선수 측에서 진정을 해도 인권위 입장에서는 즉각 조치보다는 무죄추정 원칙 하에 확인 작업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진정인이 그 소속팀을 나와 있거나 운동을 그만뒀다면 조사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진정인이 아직 그 소속팀 선수로 뛰고 있다면 조사하는 과정도 조심스럽고, 조사로 인해 추후 선수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한국의 스포츠 인권 실태를 점검하고 스포츠 분야의 폭력·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을 출범시켰다. 지난 1년간 스포츠 분야 전반의 현장 실태 파악 및 인권 친화적 조사와 피해자 중심의 구제, 현장에서 지속 실천 가능한 선수 인권보호 대책 연구 등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스포츠 인권분야 정책 개선 권고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절차와 형식을 중시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자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다 상처를 키우고 곪은 부분이 터지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대한체육회의 안이한 태도
이번 최 선수의 사건을 통해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의 피해 사실에 얼마나 안이한 태도로 들여다봤는지도 알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비인기 스포츠 선수의 이야기다.
“대한체육회는 이런 현장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을 것이다. 선수가 여러 군데를 찾아다니며 거듭 진정을 했어도 결국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서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면 한 선수가 안타까운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강경책을 발표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이전의 행보를 답습한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로 대한체육회장이 진심으로 사과 한 번 한 적 있었나. 또한 사건, 사고가 터지면 해당 단체나 시·군·도청은 팀 해체를 먼저 고려한다. 항상 반복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업팀 운동선수 12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7%는 신체폭력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 폭력에 대응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보복이 무서워서’가 26.4%로 가장 많았고 이어 ‘상대방이 불이익을 줄까 걱정되어서’ 23.1%,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22% 순으로 나타났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