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자신의 ‘풍속도첩’에 담은 씨름판의 모습이다. 씨름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이 널리 즐기는 대중적인 민속놀이이자 스포츠다. 지난 2018년에는 ‘한국의 전통레슬링, 씨름’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기도 됐다. 과연 씨름에 어떤 가치가 깃들어 있기에 인류가 함께 보호해야 할 유산으로 인정받게 된 것일까.
조선후기의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자신의 ‘풍속도첩’에 담은 씨름판의 모습이다. 씨름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이 널리 즐기는 대중적인 민속놀이이자 스포츠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씨름 경기는 단옷날 같은 전통 명절, 장이 서는 날, 축제 등 다양한 시기에 열린다. 특히 성인 대회에서 최종 우승한 사람은 ‘장사’라 불리며 풍농의 상징인 황소를 부상으로 받는 전통이 있다. 씨름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의 스포츠’라는 점이다. 씨름은 모래판이 있는 장소라면 마을 어느 곳에서든 벌어지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의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다. 씨름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증진하는 수단이지만,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기능이 크다.
씨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고유 놀이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4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의 석벽에서는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발견되기도 했다. 씨름은 예전에 한자로 각저(角觝), 각력희(角力戱), 각저희(角抵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문헌상 씨름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사’에서 발견된다. 고려의 제28대 왕인 충혜왕이 “나랏일을 신하들에게 맡기고 날마다 아랫사람들과 ‘각력희’를 하니 위아래의 예절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충혜왕은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구경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세종실록’, ‘명종실록’ 등에 비추어 보아 조선시대에 이르러 씨름은 더욱 대중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세종실록’ 세종 18년(1436) 2월 15일자에는 “군사 중에 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씨름을 하게 하여, 그 이긴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백사집’(행장 편)에 따르면 ‘오성과 한음’의 우정 이야기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도 소년 시절 씨름을 잘해 감히 맞설 자가 없었다고 한다.
씨름 경기는 단옷날 같은 전통 명절, 장이 서는 날, 축제 등 다양한 시기에 열린다. 특히 성인 대회에서 최종 우승한 사람은 ‘장사’라 불리며 풍농의 상징인 황소를 부상으로 받는 전통이 있다. 마산중학교 씨름부 학생들의 훈련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에는 단오에 벌어지는 씨름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내용도 나온다. 여기에 중국에서는 우리 씨름을 ‘고려기’(高麗技), ‘요교’(撩跤)라 부른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우리의 씨름이 중국의 것과 서로 다르다는 걸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고려기는 ‘고려의 기예’, 요교는 ‘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신채호가 지은 ‘조선상고사’에는 ‘씰흠’이라는 이름으로 씨름에 얽힌 역사와 일화가 담겨 있기도 하다.
씨름에 대한 우리 민족의 관심과 열기는 일제강점기 때도 이어졌다. 1912년에는 유각권(유도와 씨름과 권투를 통틀어 이르는 말) 클럽의 주관으로 서울 단성사 극장에서 대회다운 면모를 갖춘 씨름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또 1915년 단성사에서 열린 씨름대회는 무려 4주간에 걸쳐 진행될 정도로 국민의 호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그 이후 조선씨름협회가 창립돼 전국 규모의 대회를 열고, 조선체육회에서 씨름을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하는 등 모래판에서나마 민족정기를 이어가려는 노력이 모아졌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체육회가 해체되는 등 씨름 또한 침체기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씨름이 다시 국민 스포츠로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광복 이후의 일이었다.
우리 민족이 씨름판에서 느끼는 ‘향수’와 ‘동질감’ 때문일까. 흔히 씨름은 “한민족의 혼이 담긴 ‘모래판 위의 언어’”라고 불린다. 또한 씨름은 우리나라와 북한이 공동으로 등재한 최초이자 현재로선 유일한 유네스코 유산(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남북 관계가 요동치는 때일수록 씨름과 같은 우리 민족 공통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