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대웅제약의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가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기술을 도용했다며 10년간 수입을 금지한다고 예비판결을 내리면서 대웅제약이 위기에 몰렸다. 사진=일요신문DB
#‘희비 교차’ 메디톡스·대웅제약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ITC는 대웅제약의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가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기술을 도용했다며 10년간 수입을 금지한다고 예비판결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1월 메디톡스와 엘러간이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영업상 비밀침해 혐의로 ITC에 공식 제소하고 수입금지 신청한 데 따른 결정이다.
이로써 메디톡스는 대웅제약과의 국내외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오는 11월 ITC의 최종 판결이 남았지만, 예비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메디톡스는 국내에서 진행 중인 민·형사상 소송에서도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기술 도용에 관한 혐의를 밝힐 계획이다. 국내 재판부도 ITC의 결과를 참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 중소벤처기업부가 진행 중인 대웅제약의 기술침해 조사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민사 재판이 6차례 진행되는 동안에 ITC 예비판결 결과를 증거로 제출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곧 진행되는 7차 재판에 ITC 예비판결문을 제출해 국내 재판에서도 대웅제약이 균주를 도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반전 드라마를 쓰겠다는 각오다. 나보타 유통판매를 담당하는 에볼루스로부터 4000만 달러의 전환사채를 인수해 오히려 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ITC 예비판결도 최종 판결에서 뒤집힐 수 있다며 반박문을 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행정판사 스스로 메디톡스가 주장하는 균주 절취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명백히 밝혔음에도 논란이 있는 과학적 감정 결과에 대하여 메디톡스 측 전문가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인용했거나, 메디톡스가 제출한 허위자료 및 허위 증언을 진실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10년의 수입 금지명령을 포함해 예비판결은 구속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ITC 판결은 미국 산업 피해나 수출입 금지 여부를 가리는 행정심판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진행되는 재판과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최초 보툴리눔 톡신 제제 메디톡신주를 개발한 메디톡스가 무허가 원액을 사용한 혐의가 드러나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코스닥 상장 당시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는 여전히 암울한 메디톡스
메디톡스도 마냥 웃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메디톡스의 주력 제품 ‘메디톡신’이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메디톡신은 메디톡스 연간 매출액의 약 40%를 차지해 품목허가 취소시 매출 피해가 불가피하다. 메디톡스는 허가취소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처분 취소 소송을 청구했다. 가처분신청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허가취소 효력을 7월 14일까지 정지시켰다.
메디톡스는 처분 수위를 품목허가 취소에서 영업정지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식약처가 약사법 위반이라고 보는 기간인 2012년 12월~2015년 6월에 생산한 메디톡신은 이미 소진돼 현재 공중위생상의 위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메디톡스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식약처 처분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식약처는 허가받지 않은 성분을 사용한 사실을 바탕으로 메디톡신 허가를 취소했다. 생산 기간·위해성 여부가 처분 결정과 연관이 없다는 뜻이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데이터 무결성은 의약품 품질관리 및 안전성 측면에서 항상 중요하다”며 “식약처 처분은 메디톡신주의 데이터 무결성을 훼손해 약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생산 시점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데이터 무결성은 원본 데이터의 변경·파괴 없이 보존되는 특성을 말한다.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도 부담이다. 지난 6월 19일 법무법인 오킴스는 메디톡스 투자자들을 대리해 4월에 이어서 제2차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오킴스 측은 메디톡스가 무허가 원액을 이용한 제품 생산 등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며 허위 공시를 했고 이 공시를 믿고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아무도 웃지 못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다툼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것으로 보인다. 그간 집행된 막대한 소송비는 양사의 실적을 끌어내렸다. 메디톡스는 올해 1분기 100억 원을 소송비로 썼다. 대웅제약도 같은 기간 소송비로 137억 원을 사용했다. 나보타 수출액(136억 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메디톡스는 1분기 매출은 33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만 99억 원을 기록했다. 대웅제약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1% 줄어든 2284억 원, 영업이익은 87% 감소한 1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시작하기 한 해 전인 2016년부터 메디톡스는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제 왕좌를 휴젤에 내줬다.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인 ‘이노톡스주’와 ‘코어톡스주’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영업을 활성화해 매출을 방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둘의 매출 비중은 10%밖에 되지 않고 이노톡스주는 제조 업무 정지 3개월 행정처분을 받을 예정이다. 또 제약사들이 새로운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을 확대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어렵게 흑자 전환에 성공한 대웅제약은 수백억 원을 소송에 쏟아 붓고도 메디톡스에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미국 보톡스 시장에서는 공만 들이고 철수해야 할 상황이다. 대웅제약은 2018년 5월 나보타 제조시설 승인을 받은 뒤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웅제약은 나보타가 2024년 안에 약 2조 원의 매출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수입 금지 판결을 확정되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