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가볍게 하는 말이 의외로 묵직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선 이후 통합당을 쳐다보는 기자들이 늘었다. 뉴스가 나오기 때문이었고, 통합당 관련 보도가 늘어나자 여론의 관심 역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만 받았던 통합당은 속도감이 느껴질 만큼 국민 앞으로 달려 나온 것이다.
김 위원장은 5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조직위원장회의 비공개 특강에서부터 화제를 뿌렸다. 그는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세대가 바뀌었다. 당의 정강·정책부터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 국민은 더는 이념에 반응하지 않는다. (국민을) 보수냐 진보냐 이념으로 나누지 말자”고 했다. 한술 더 떠 통합당이 전통적 지지층에 호소해 온 ‘보수’ ‘자유 우파’를 더는 강조하지 말 것도 당부했다. 보수라는 이미지가 꼰대로 오인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 바꿔야 한다는 논리였다.
예전 같으면 통합당 내에서 어림도 없었던 단어인 ‘기본소득’도 김 위원장이 이슈화했다. 그는 6월 2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서 “기본소득 이론이 출현했을 때 가정한 경제상황이 언제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전제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식 기본소득제도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빵 먹을 자유’를 언급하며 기본소득에 대해 검토 작업을 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거대 담론이 아닌 국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피부에 와닿는 얘기에 천착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선 전일제보육제 아이디어를 냈고, 심각한 청년 실업을 겨냥해 대학 학제 개편도 꺼냈다. 비대위 산하에 저출생·경제혁신 특별위원회 등을 만들어 정책 경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정책 개발만이 살길이다. 깜짝 놀랄 만하게 정책 개발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실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통합당 한 재선 의원은 “성의 없이 가볍게 내던지는 한마디 같은데 의외로 묵직함이 느껴진다는 것이 김종인식 화법이다. ‘40대 대선 후보’ ‘백종원은 어떠냐’ 등은 다소 엉뚱한 것 같지만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메시지를 통해 국민 안방 안으로 통합당이 달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김종인식 메시지 정치는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차근차근 다져가는 수비력
통합당은 내부도 차근차근 다지고 있다. 태풍이 불어와도 무너지지 않을 진지를 구축하고 우수한 인재를 끌어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
통합당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당 재정을 합리화하고 조직 역량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국회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옮겼던 중앙당사를 2년 만에 다시 국회 바로 앞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앞서 통합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08년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양빌딩에 중앙당사를 뒀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른정당 분당과 대선 참패 등을 거치며 곳간 사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고, 2018년 현재의 영등포동 우성빌딩으로 당사를 옮겼다.
통합당은 이번 기회에 당사를 임대가 아닌 직접 매입하는 방안으로 검토 중이다. 늦어도 두세 달 안에는 당사 이전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이 지난 2017년 은행에서 당사 매입자금을 빌려 국회 앞 10층짜리 건물로 이전한 사례도 통합당의 당사 매입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앙당사 매입에 필요한 자금 획득을 위해 전국 각 지구당 당사에 대한 자산 구조조정 작업도 시작됐다. 통합당은 전국 시도당사로 쓰고 있는 건물에 대한 상징성이나 이용도를 정밀 평가, 이들 자산 매각도 고려중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시도당 당사에 대한 자산 평가도 필요하다. 우선 광주전남 당사 매각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곳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시위대의 목표가 된 곳이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에게 우리가 다가서기 위해서 이런 당사를 계속 갖고 있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합당은 새로 임명된 김수민 홍보본부장을 중심으로 당명·당색 개정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 사이에는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어서 새로운 당명으로 통합당이 조만간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 당사 입주와 당명 변경 발표가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4·15 총선 과정에서 막말이 터져 나오면서 표를 잃어버렸던 전례를 거울삼아 통합당은 내부 기강을 다잡는 작업에도 종전과 다른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당무감사 및 윤리 기능을 외부에 확실히 맡기기로 한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당무감사위원장에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를, 윤리위원장에는 40대의 김관하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양희 교수는 한국인 첫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으로 활동했으며, 박정희 정권 당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야당의 40대 기수였던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의 딸이기도 하다.
김관하 윤리위원장은 법무법인 이제 소속이다. 막말이나 비위 의혹, 정치적 스캔들에 대한 징계를 담당한다. 40대가 들어온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7월 8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여전히 빈타 허덕이는 공격력
7월 8일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그동안의 ‘합심 단결’ 분위기가 상당 부분 사라진 장면이 연출됐다. 통합당의 공격력 부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 것.
이날 통합당 원내 지도부는 국회부의장을 뽑고 이를 통해 국회 정보위를 구성,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가겠다는 동의를 의원들에게 얻어낼 예정이었다. 초반에는 온건협상론 발언이 나오면서 뭔가 다른 결론이 나오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 정도 선에서 물러나려고, 이러려고, 우리가 그동안 싸워왔느냐”는 강경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상임위원장을 내준 채 국회부의장만 뽑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대세가 돼버렸다.
김태흠 의원은 “국회부의장을 안 뽑아도 국가정보원장 인사청문회를 열 수 있다. 상임위원장은 안 하면서 국회부의장을 뽑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발끈했다. 그는 또 국회부의장을 뽑고 정보위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낸 주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민주당이 차지한 법사위원장을 돌려놓지 않으면 야당 몫 국회부의장을 추천하지 않겠다’는 그동안 원칙이 다시 나왔다. 결국 주 원내대표가 이러한 총의를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하나마나한 수준’에서 의총이 결론지어졌다.
야당 몫 국회부의장 내정자인 정진석 의원은 의총장을 떠나면서 “부의장을 추천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SNS에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라는 글까지 올렸다. 당내 강경 분위기를 읽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통합당 내부에서는 무조건 뻗치기가 공격 포인트를 과연 얼마나 얻고 있는지, 다음 공격 전술은 뭔지 점검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통합당 한 3선 의원의 하소연이다.
“3선 의원들 15명이 당내에 있다. 상임위원장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무작정 안 들어간다고 해서 무슨 효과가 있나. 다음 공격전술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 하는 식의 마냥 버티기 말고는 없다. 이제는 민주당도 일부 양보할 마음이 있으니 최대한 많은 상임위원장을 받아 인사청문회도 하면서 법무부 장관의 월권, 부동산 가격 폭등, 각종 펀드 의혹 등에 대해 독하게 따져 물어야 되는 것 아닌가. 무작정 강경 투쟁만 하자는 목소리에 지도부가 휩쓸려가는 것도 큰 문제다. 이래서야 무슨 수로 거대 여당은 물론, 여당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청와대를 공격할 건가.”
홍준표 윤상현 무소속 의원 등 공격수 보강에 대한 논의도 없다. 들어오면 더 시끄러워질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관련기사 전투력은 탐나는데 분란 우려가…무소속 4인방 통합당 복당 딜레마). 통합당 한 초선의원은 “총공격에 나서야 하는데 우리끼리 다투고 있다. 의견이 분분할 때는 지도부가 의견을 들고 나와 밀어붙이고 결론을 내줘야하는데 번번이 의총에다 안건을 붙이니 집안싸움만 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