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오현철)가 지난 5월 말 엘리엇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전해졌다. 검찰이 2016년 3월 금융당국 요청을 받아 수사에 착수한 지 4년 만이다. 검찰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주식 대량 보유 보고 의무’ 위반 혐의로 수사했지만 이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근 지분 대량보유 보고 의무 위반 혐의를 받는 엘리엇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엘리엇, 이틀 만에 지분 5% 넘기고 영향력 행사
앞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주식 대량공시 의무인 ‘5%룰’을 위반했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자본시장법상 5% 이상의 상장사 지분을 보유했거나 보유 이후 1%포인트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주주는 5일 안에 보유 현황을 의무적으로 상세하게 보고 및 공시해야 한다.
당시 엘리엇은 2015년 6월 2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4.95%를 사들였다. 그런데 같은 달 4일 돌연 지분이 7.12%로 늘었다며 다시 공시했다. 불과 이틀 만에 6188억 원어치의 지분 2.17%를 더 확보한 셈이다. 엘리엇은 이날 지분 공시와 함께 주식 취득 목적을 ‘경영 참가’로 바꾸고 삼성을 상대로 본격적인 공격에 나섰다. 이 시점부터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지나치게 불리하다며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연금에 합병을 반대하라는 서한을 보내거나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 소송에 배임 의혹까지 제기했다.
증권업계는 엘리엇이 이틀 만에 지분을 대폭 늘린 것을 두고 지분 ‘파킹 거래’를 의심했다. 파킹 거래는 다른 증권사 명의로 주식을 산 뒤 추후 한꺼번에 주식을 넘겨받는 것을 말한다. 사실 확인에 나선 금융당국도 엘리엇이 파생상품의 일종인 총수익스와프(TRS)를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메릴린치 등 외국계 증권사가 엘리엇과 TRS를 맺고 미리 삼성물산 지분을 산 뒤, 이를 6월 2~4일 이틀간 넘긴 것으로 봤다. 사실상 삼성물산 지분을 대량 보유한 건 엘리엇이고 이를 고의적으로 누락해 공시 의무를 피했다는 얘기다.
TRS는 증권사가 주식 등을 대신 사고, 투자자가 이익과 손실만 책임지는 상품이다. 주식 소유권은 증권사가 갖고 있지만 계약 이후 가격 변동에 따른 이익, 손실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실질적 소유자는 투자자인 셈이다.
#검찰 수사 비협조에 ISD 중재 소송 제기 초강수까지
검찰은 2016년 금융당국으로부터 의뢰를 받자마자 수사에 착수했으나 무혐의 결론을 내린 최근까지도 어려움을 겪었다. 엘리엇은 물론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모두 해외에 있었고, 관계자들 모두 소환 조사를 거부했다. TRS 관련 주문과 계약 역시 모두 홍콩에서 진행된 만큼 증거 확보도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엘리엇 관련자가 처음 소환된 것은 수사 착수 2년 뒤인 2018년이다. 당시 엘리엇은 조사 과정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동시에 한국 대행사를 통해 “합법적 거래였다”면서도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나오자 검찰 내사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 직후 엘리엇은 초강수를 던졌다. 예고했던 대로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개입했다며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이용해 중재 소송을 냈다.
검찰은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를 활용해 홍콩 금융당국과도 업무 협조에 나섰다. IOSCO는 전 세계 금융감독기구가 참여하는 국제기준제정기구다. 다만 결과적으로 혐의 입증에는 실패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TRS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당시 정황을 볼 때 사전에 엘리엇과 증권사가 지분을 넘겨받는 계약을 하고 고의로 공시 의무를 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 계약 내용이 확인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며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면 계약서 등 결정적 증거 확보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삼성 합병 이후 현대차그룹도 정조준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연기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무혐의 처분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엘리엇이 무혐의 처분을 받자마자 ‘나비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받아온 불법, 편법 투자 의혹에서 벗어난 만큼 당장 우리나라 정부와 진행 중인 ISD 중재 소송에서 엘리엇이 압박의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국정농단 사태’와 ‘삼성 뇌물’ 등의 혐의를 근거로 “삼성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7억 700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며 ISD에 중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검찰에 또 다른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ISD 중재 소송에서의 엘리엇 주장과 이 부회장 경영 승계 의혹 관련 검찰 수사팀의 입장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지점들이 있다. 앞서 이 부회장 구속심사 및 수사심의위 개최 당시 재계 일각에서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 엘리엇이 제기한 중재 소송의 정당성과 입지를 강화할 근거를 주게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해당 ISD 중재 소송에 약 8000억 원이 걸려있다”며 “경제위기와 국부 유출 등을 앞세워 삼성 관련 검찰 수사에 비판 목소리를 내는 쪽에 무기가 하나 더 생긴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엘리엇 무혐의 결론이 ISD 소송에 별다른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쟁점이 엘리엇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삼성 합병에 개입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인 만큼 큰 영향은 없다는 게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공개로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 다만 관련해 입장을 낸다거나 별도의 조치를 해야 할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결과가 ‘5%룰’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돼,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다툼 등 민감한 현안을 가지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자본에 공격 받을 여지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엘리엇처럼 기업 지분을 5% 미만으로 보유했다가 기업 분쟁이 심화되면 TRS 등을 활용해 숨겨 놓은 지분으로 갑자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선 방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이라는 특유의 문화가 있는 국내 기업들은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 승계 문제에서 약점이 노출되기 쉽다. 엘리엇이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핵심 계열사 지분을 사들였던 이유가 이 때문”이라며 “미리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기업 주식을 사고 실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내거나 고액 배당을 요구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