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6부는 7월 10일 파기환송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 혐의로 징역 15년에 벌금 180억 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또 추징금 35억 원을 명령했다. 재판 거부 전 공판 출석 당시의 박 전 대통령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공이 검찰에서 청와대로 넘어갈까
관건은 재항고 여부다. 일주일 이내에 재항고가 이뤄지면 다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반면 재항고가 이뤄지지 않아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로 형이 확정된다면 본격적인 ‘사면 정국’이 시작된다.
사실상 재판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측에서 재항고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공소를 유지하고 있는 특검과 검찰이 재항고를 할 가능성은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 특검과 검찰이 주장한 혐의는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대법원이 오히려 국고손실죄를 더 폭넓게 인정했다”라며 “다만 2심 판결보다 10년 낮은 형이 나온 데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특검이 재항고할 수도 있지만 형량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재판이라 재항고의 실익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재항고 여부는) 특검팀이 판단하는데 아마 양형부당으로라도 대법원 확정이 날 때까지 가지 않겠나 싶다”면서 “워낙 정치적 사건이라 대법원 확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박 전 대통령 재판의 공소 유지는 특검과 검찰이 함께하고 있다. 윤 총장은 현직 검찰총장이자 특검수사 당시 수사팀장이다. 만약 특검과 검찰이 재항고하지 않으면 박 전 대통령의 형이 확정돼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권 발동이 가능해진다.
홍문종 친박신당 대표. 사진=일요신문DB
지난 1월 당시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현재 친박신당 대표)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때 강 수석은 사면은 형이 확정되지 않아 불가능하고 형집행정지는 검찰의 몫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가 자연스레 공을 검찰로 넘긴 셈이다.
#이미 사면 정국 시작
반면 재항고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사면 정국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파기환송심 판결까지 11개월여가 소요됐다. 그러나 재항고가 이뤄질 경우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에서 더 이상 다툴 여지 없이 확정 판결만 남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면 정국이 시작될 경우 정치권에서 상당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불씨는 5월 21일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자신의 퇴임 간담회에서 지폈다. 당시 문 전 의장이 “과감히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을 해야 할 적기다.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형이 확정돼 사면 정국이 시작될 경우 문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를 두고는 예상이 엇갈린다. 문 전 의장은 “그 판단은 대통령 고유 권한인데 문 대통령 성격 상 아마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재판이 끝나면 문 대통령도 문 전 의장 말씀대로 사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후보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등 경험에 의하면 임기 말에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는 분들에 대해서는 사면을 한다. 선진국도 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도 스스로 해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자신의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과감히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을 해야 할 적기다.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 야당은 ‘통합’을 언급했다. 조해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시점에 누군가는 결단해서 꺼내야 한다”고 말했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마다 예외 없이 불행해지는 ‘대통령의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사면에 대한 반대 입장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반성 없는 사면은 국민통합이 아닌 국론분열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안민석 의원 역시 “코로나로 국민들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치권이 뜬금없는 사면 논란을 지피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갈등을 촉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잇단 선거 등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다. 미래통합당 몇몇 의원들이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사면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 차원에서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한 방송에서 “김 비대위원장이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여기에 대해 입장 표명을 강하게 하는 걸 본 적 없다”며 “어떤 입장 표명을 하더라도 논쟁이 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에 굳이 거론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미래통합당의 관계에도 변화가 많았다. 지난 총선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는 옥중서신을 공개했다. 그렇지만 유 변호사가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공천 과정에서 배제되자, 박 전 대통령은 다시 유 변호사와의 접견을 통해 “나라를 위해서 통합의 메시지를 낸 것이 무위로 돌아간 것 같다”며 “두 번 칼질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으로 인해 2021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의 재·보궐 선거가 사실상 대선 전초전으로 커졌다. 최근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차기 대선급으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게다가 이후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어진다.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이 굳건한 터라 선거 국면에 돌입하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