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한류스타 김수현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이 드라마의 타이틀롤인 ‘사이코’는 김수현이 아니라 배우 서예지의 몫이다. 사진=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공식 홈페이지
#고정적 성관념을 흔들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대표적 한류스타인 배우 김수현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타이틀롤인 ‘사이코’는 김수현이 아니라 배우 서예지의 몫이다. 안하무인이자 기괴한 사상을 가진 동화 작가 고문영 역을 맡은 서예지는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방송 초반 김수현보다 더 많은 눈도장을 받았다.
같은 시기 방송되는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도 매한가지다. 또 다른 한류스타 지창욱이 주인공으로 나섰지만 그는 편의점주 최대현 역을 맡고 있고, 타이틀롤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정샛별은 배우 김유정이 연기한다.
실제로 두 여배우는 타이틀롤을 맡는 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 속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모로 결핍을 가진 인물이지만 남자주인공에게 기대지 않는다. tvN 관계자는 “한동안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드라마가 기획조차 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할 때 괄목할 만한 변화”라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도 지지하고 공감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그리려는 업계의 시도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요계에도 여성 솔로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여전히 거대 팬덤을 확보한 보이그룹들이 득세하고 있지만, 실력과 건강한 메시지로 무장한 여성 솔로들이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가요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신곡 ‘마리아’를 발표한 걸그룹 마마무 출신 화사의 메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컴백을 앞두고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인트로 영상 ‘노바디 엘스’(Nobody else)를 공개했던 화사의 신곡 ‘마리아’는 ‘널 괴롭히지 마 오 마리아 널 위한 말이야 뭐 하러 아등바등해 이미 아름다운데’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화사가 직접 작사에 참여한 ‘마리아’의 가사에 대해 그는 “‘뭐 하러 아등바등해 이미 아름다운데’가 킬링 파트이자 감상 포인트”라며 “항상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라고 생각하며 가사를 쓴다. 많은 이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노래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화사의 신곡 ‘마리아’는 ‘널 괴롭히지마/오 마리아 널 위한 말이야/뭐 하러 아등바등해/이미 아름다운데’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사진=‘마리아’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Mnet(엠넷) 여성 래퍼 경연 프로그램인 ‘언프리티 랩스타’의 준우승자 출신인 래퍼 나다가 6월 25일 발표한 ‘내 몸’(My body) 역시 눈에 띈다.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취지를 담은 이 곡에서 나다는 ‘누구도 날 끌어내릴 수 없게 누구 아닌 나를 더 사랑할래 이젠 다 쓸 거야 네 몸 아닌 내 몸에’라고 강조한다. 특히 미혼모 돕기에 앞장서 온 그는 ‘넌 애기 만들 줄만 알지 애비 될 줄을 몰라’라는 가사를 통해 일부 책임감 없는 남성들에게 호통을 친다.
방송인 박소현, 김숙, 박나래 등이 진행하는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는 어느덧 200회를 맞았다. 여성 MC들로 구성된 토크 프로그램 중 이례적으로 롱런하는 중이다. 김숙, 박나래가 또 다른 방송인인 송은이, 장도연 등과 호흡을 맞춘 올리브 ‘밥블레스유’도 어느덧 시즌2를 맞았다.
최근 200회를 맞은 ‘비디오스타’를 연출하는 이유정 PD는 “‘비디오스타’를 믿고 찾아와주시는 게스트들과 늘 편안한 분위기로 현장을 이끌어가는 MC들이 큰 원동력”이라며 “보통의 토크쇼들은 MC들이 질의응답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디오스타’ MC들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게스트들과 함께 호흡하며 몸을 사리지 않고 온몸으로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고 전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 캐릭터를 다양하게 변주하고 여성을 콘텐츠에 중심에 두려는 노력 한편에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고문영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문강태(김수현 분)의 벗은 상반신을 보거나 만진 후 “나랑 한번 잘래?”라고 성희롱성 발언을 던진다. 고문영의 거침없는 언행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고문영을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캐릭터로 전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편의점 샛별이’에서는 여고생이 노래방에서 즐기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훑으며 관음증을 자극하고, 오피스텔 성매매 설정을 넣기도 했다. 사진=SBS ‘편의점 샛별이’ 공식 홈페이지
‘편의점 샛별이’에서는 여고생이 노래방에서 즐기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훑으며 관음증을 자극하고, 오피스텔 성매매 설정을 넣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설정과 여고생 샛별이과 성인 남성과 키스하는 장면 역시 도마에 올랐다.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이 안에는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적 판타지가 가득한 셈이다. 결국 뿔난 시청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수천 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여성 뮤지션들의 연대와 협력을 그린 케이블채널 Mnet ‘굿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의 경우 ‘여성 vs 여성’이라는 대결 구도가 아니라 사뭇 다른 음악적 성향을 가진 여성 음악인들이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설정이 호평 받았다. 하지만 성기를 희화화하거나 성행위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노래 가사와 선정적인 안무 등을 포함한 콘텐츠를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방송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적을 받았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성평등이 ‘여성은 수위 높은 표현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만 바꾼 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행태를 보이는 콘텐츠가 적잖다”며 “이런 콘텐츠 역시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