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공사와 롯데‧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의 면세점 영업 연장에 합의했다. 두 면세점은 올해 9월부터 1개월씩 계약을 갱신하면서, 최대 6개월 동안 연장 영업을 하기로 했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관계자들은 “세부 논의 사항이 남았지만 큰 틀에서 공항공사와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이번 연장 협상은 지난 3월 열린 4기 면세사업 입찰에서 불거진 ‘유찰’ 사태의 연장선에 있다. 인천공항은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면세점의 기존 운영 면세점들의 임대차 계약이 8월 말 종료됨에 따라 올해 초부터 후속사업자 선정을 위해 입찰을 진행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하면서 총 8개 구역 중 2곳(패션·기타 DF7, 주류·담배 DF10)만 후속사업자가 선정됐다. DF3·DF4(주류·담배) 구역은 각각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이 선정됐지만 한 달 뒤 사업권을 포기했다.
유찰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공항 면세점 매출액은 매년 사상 최대치 기록을 갈아 치웠고, 한 번 들어가면 ‘말 그대로’ 현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던 만큼 입찰 때마다 면세업계에선 전쟁이 벌어졌다. 인천공항공사는 2004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연속 흑자를 냈는데, 수익에서 가장 큰 비중(약 65%)을 차지했던 것이 면세점들이 내는 임대료였다. 지난해 면세점들의 평균 임대료는 월 기준 80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면세점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 이용자가 하루 20만 명에서 1000명 수준으로 줄면서 매출 대비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 문을 열수록 손해인 상황까지 몰렸다. 면세업계는 “매출액보다 임대료가 더 높다”며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임대료 정산 방식을 바꿀 경우, 매출이 급감하게 되는 만큼 고정 임대료 방침을 고수했다. 업계는 곧바로 반발했고, 앞서의 유찰과 사업권 반납 사태로 이어졌다.
#‘파국’ 우려 속 급박하게 진행된 협상
임대료를 둘러싼 인천공항공사와 면세업계의 줄다리기가 본격화된 가운데 대책없이 시간만 흘렀다. 정부가 나서 6~8월 임대료를 50% 감면해주기로 했지만 면세점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일부 면세점들은 임대료 추가 인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철수까지 검토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국 재입찰을 공고하더라도 8월 전 사업자 선정이 불가능한 시점이 다가오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인천공항공사가 기존 사업자들에게 연장 운영을 요청했다. 면세점 철수로 공실사태가 벌어지면 주 수익원이 사라지는 만큼 최악의 상황은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임대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면세업계는 인천공항공사의 제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면세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6월부터는 공항공사와 면세업계 실무자들은 수차례 접촉하며 협상을 진행해왔다. 다급해진 인천공항공사가 한 발 물러서서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연장 운영을 제안하는 공문이 발송된 건 지난 6월 8일이다. 이에 대해 면세점들은 연장 기간 동안 임대료를 고정식이 아니라 매출 변동에 따라 임대료를 산정하는 방식인 영업요율 인하를 요구했다. 인천공항공사가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품목별 영업요율과 최소 임대료, 지점별 차등 적용 문제 등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7월 6일 에스엠(SM)면세점이 ‘철수’ 선언을 했다. 김태훈 에스엠면세점 대표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제1터미널 연장 운영과 재입찰을 검토한 결과 인천공항 입·출국객 수와 현 지원 정책으로는 경영악화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도미노 철수 우려가 업계를 덮치기 시작했다. 면세점이 정상 운영됐던 기간이 포함된 1분기에도 대규모 적자가 나온 만큼 올해 전체 적자 규모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 예상되고, 협상까지 지지부진한 만큼 중견 면세점에서 대형 면세점으로 연쇄 철수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뒤집힌 ‘갑과 을’의 입장
그런데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최근 이틀 간격으로 연장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큰 틀에서 인천공항공사가 제시한 연장안을 수용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롯데면세점은 ‘1개월 단위’로 운영기간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을 요구했다. 장기 운영 계약은 힘들고,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달라는 취지다. 신라면세점은 임대료 감면 등 지원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영업요율 인하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신라면세점은 화장품·향수, 주류·담배, 시계, 선글라스 등 인천공항1터미널에서 최다 지점을 운영하고 있어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이 가장 크다.
다만 면세업계에선 이번 합의가 한시적인 봉합에 그칠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롯데와 신라면세점도 답변 회신 기한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출액 연동 임대료를 적용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선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점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대료 50% 감면 조치도 오는 8월이면 종료된다. 퇴로가 열려있는 만큼 두 면세점의 철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천공항공사도 출혈을 각오하고 업계 요구를 받은 만큼 지금의 방안 이상의 임대료 인하 협상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면세업계 다른 관계자는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최악의 상황은 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긴 했지만 롯데와 신라면세점의 부담이 해결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극적 타결에 대해 다른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슈퍼갑’이었던 인천공항공사와 ‘을’에 불과했던 인천공항 면세업계 역학 관계가 이번 사태로 뒤집힌 만큼, 당장 출혈이 불가피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롯데, 신라면세점에게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면세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여전히 ‘갑과 을’의 관계가 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다급한 인천공항공사의 제안을 면세업체들이 ‘느긋하게’ 받아 준 모양새가 됐다”며 “공사는 한 번 내려간 임대료를 짧은 시일 내에 다시 올리긴 어렵다. 과거와 달리 향후 진행될 재입찰에서도 인천공항공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업계 조건을 받아들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