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검찰 항소 이유의 불명확성을 문제 삼아 은수미 성남시장의 시장직을 사실상 유지해주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사진=박은숙 기자
#두 혐의 구분부터 논란 시작
통상 항소나 상고처럼 상급심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하는 경우 검찰과 피고인 측은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무죄 판결이 났을 경우 검찰은 유죄로 해달라고 한다거나, 유죄가 나왔을 경우에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7월 9일 대법원(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라며 2심을 파기 환송했다. 은수미 시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 2016년 6월부터 1년 동안 개인적인 정치 활동을 위해 이동할 때마다 성남지역 기업으로부터 모두 95차례 차량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다. 성남지역 조직폭력배 출신이 운영하는 회사로부터 렌트 차량과 운전기사를 무상으로 받은 부분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봤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검찰은 혐의를 구체적으로 구분했다. 은 시장이 지원받은 차량 및 서비스에 대해 정치자금법 45조1항(해당 법에 규정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 수수)과 2항(법인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위반을 적용했다.
그리고 1심 재판부는 이 가운데 정치자금법 45조 1항만 유죄를 인정,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 45조 2항의 경우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은 시장이 법인으로부터 받는다는 점을 알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지만 2심은 1심처럼 45조 1항만 유죄로 인정하고 양형을 올려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결국 대법원 판단까지 받게 됐고, 대법원은 이 과정에서 ‘항소 과정 중 절차적 흠결’을 문제 삼았다. “양형에 관해 검사의 적법한 항소 이유 주장이 없었음에도 2심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검사는 항소장 내지 항소이유서에 1심 판결 가운데 유죄 부분에 대한 양형부당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았다. 검사는 양형과 관련해 ‘제2항 위반의 점이 유죄로 인정된다면 1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취지로만 주장했는데, 이는 1심 판결 가운데 유죄 부분에 대한 양형이 부당하다는 점에 대한 적법한 항소 이유로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벌금 90만 원)대로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논란을 우려한 대법원은 은수미 시장 판결 선고와 동시에 이런 판결 취지를 담은 2008년(알선수재·뇌물공여)과 2017년(공동상해) 판례를 제시했다. 두 판례는 ‘양형부당 이유를 명확하게 적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건은 ‘양형부당을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았으므로 1심 판결의 양형(벌금 90만 원) 이상으로 2심 재판부가 선고하면 안 됐다’는 설명이기도 했다.
검찰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대법원이 검찰과 2심 재판부가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지만, 이는 통상 이뤄지는 관례였다는 설명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검찰 불만 부글부글
검찰은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대법원이 검찰과 2심 재판부가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지만, 이는 통상 이뤄지는 관례였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혐의 전부가 유죄가 났을 경우에는 항소 이유서에 양형부당을 명시하는 게 맞지만, 유죄와 무죄가 섞여 있을 경우에는 무죄 부분에 대해서 항소를 하면서 ‘무죄가 유죄가 된다면 양형이 약하다’고 포괄적으로 적기도 한다”고 했다. 수사팀 관계자 역시 “무죄 부분에 대한 항소 과정은 ‘유죄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당연히 양형이 올라갈 것을 고려해 적시하지 않은 것이며 이는 관행”이라고 언급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한 발 더 나아가 법원의 정치화도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정치인이 기업으로부터 차량 서비스를 받고도 ‘몰랐다’고 하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사건인데,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생명을 연장해주는 봐주기 판결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에서는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하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그럼에도 내부에서는 하필 정치인 사건에 왜 형식적인 실수를 잡아냈는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그래도 명시했어야”
법원에서는 “검찰이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하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하필 정치인 사건에 왜 형식적인 실수를 잡아냈는지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관례와도 같았던 일을 이제야 문제 삼은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곧바로 판결문을 정독했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항소를 하면서 ‘만약(무죄가 또 날 경우)을 대비해 장치(양형부당 언급)를 하지 않은 것은 맞다’”면서도 “관행이라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정 사건에 대해서 이를 지적하며 파기 환송한 것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관행이었던 부분에 대해서 검찰도 그렇고, 법원도 그렇고 제대로 짚고 넘어간 적이 없는 것 같다”며 “특히 이 사건은 혐의가 나뉘었고 유무죄도 나뉜 사건이어서, 검찰 입장에서 다소 자의적으로 대법원이 해석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대법원이 이런 형식을 문제 삼는 판결을 정치적인 사건에 선별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