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펀드 사기 의혹 불똥이 한국예탁결제원으로 튀었다.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압수수색을 받은데 이어 금융감독원의 현장조사를 받고 있고, 펀드를 판매한 판매사 등 금융권에서도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사장이 직접 나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옵티머스 펀드 사태로 십자포화를 맞으며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호 사장의 해명이 과한 것은 아니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자를 모집해놓고, 실제로는 비상장사 사모사채 등 부실 채권에 투자하는 ‘사기’를 벌여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맞았다. NH투자증권 등 판매사, 신탁업자인 하나은행, 사무대행사 예탁원 등 펀드와 관계된 모든 회사가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탁원은 펀드가 판매되는 과정에서 일반 사무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5년 전부터 정부가 추진한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 방침에 따라 중소 자산운용사 지원 역할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2017년 옵티머스자산운용을 대신해 주식 발행과 명의개서, 기준가 계산 등을 해줬다. 사실상 단순 사무 작업만 한 셈이다. 펀드 자산을 모두 살펴볼 의무도 없다. 예탁원이 받은 수수료 역시 앞서의 관계사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수탁고의 0.02%)이다.
그런데도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는 이유는 예탁원이 옵티머스운용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있다. ‘펀드 바꿔치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지난 4월 옵티머스운용은 예탁원에 이메일로 공문을 보내면서 아트리파라다이스, 씨피엔에스, 대부디케이에이엠씨 등 부동산, 대부업체 등의 사채 계약서 사본을 첨부하고, 이를 ‘부산광역시매출채11’, ‘한국토지주택매출채113’ 등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종목명을 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의 이명호 예탁원 사장의 비유를 그대로 따르면, 실제 투자한 자산(폭발물)과 펀드명세서에 올라갈 자산(가방)의 이름이 다르다는 걸 옵티머스운용이 이메일을 통해 스스로 공개한 셈이다. 심지어 이메일에 첨부한 사채 계약서는 관련법상 사무관리자에게 보여줄 의무도 없는 자료였다.
그런데도 예탁원은 옵티머스운용의 요청에 따라 펀드명세서에 그대로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고 기재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첨부된 자산 명칭을 제대로 확인했다면 펀드명세서의 종목명도 제대로 기재됐을 것”이라며 “펀드명세서 작성 과정에서 최소한의 확인조차 소홀했다는 게 최근 예탁원 책임론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예탁원 “우리도 속았다”
예탁원은 환매 중단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우리도 속았다’고 주장해왔다. 자신들은 기준가격을 산정하는 사무관리회사일 뿐, 실제 운용 자산과 기준가격 산정에 필요한 자산을 대조해 볼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메일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비난은 거세졌고, 예탁원은 최근 입장문을 내거나 임원들이 직접 공식석상에서 해명하는 등 적극적인 사태 진화에 나섰다.
지금까지 예탁원이 내놓은 해명을 모두 종합해보면, 예탁원은 사전에 옵티머스운용으로부터 운용 전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만 옵티머스운용 책임자가 “사모사채로 보일 수 있지만 담보가 공공기관 매출채권인 복층구조인 만큼, 결과적으로 투자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하게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관계된 회사들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무관리사’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예탁원은 “정확한 명칭은 ‘계산 사무 대행사’”라고 설명했다. 예탁원이 주장하는 계산 사무 대행사는 일종의 하청업체로, 펀드 기준가격을 대신 계산해주는 업무만 한다. 계산된 기준가도 계약자인 옵티머스운용에만 제공하고, 판매사와 신탁사에 직접 내용을 전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예탁원 주장대로라면 현행 제도상 운용사는 언제든지 실제 투자하지 않은 자산을 예탁원에 전달할 수 있고, 예탁원은 이를 걸러낼 수 없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예탁원은 기준가 검증 의무와 그에 따른 책임은 신탁업자인 하나은행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자본시장법 247조를 보면, 신탁회사는 기준가격 산정이 적정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예탁원은 공모펀드든 사모펀드든 신탁사가 기준가 검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적극 해명에도 가라앉지 않는 책임론
이 같은 예탁원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책임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옵티머스운용으로부터 전략 설명을 듣고 확인했다는 앞서의 확인 절차는 2017년 하반기에 이뤄졌다. 그 이후에는 펀드 구조가 비슷해 추가 확인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신탁업자 역시 옵티머스운용이 제공한 기준가를 받아서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자산내역은 제외하고 허위 투자 자산과 실제 투자 자산의 기준가 숫자만 맞추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옵티머스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해 논란의 중심에 선 NH투자증권은 예탁원을 상대로 강도 높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영채 대표 이름으로 해당 펀드 가입 고객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예탁원이 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비상장기업 사모사채를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변경해 펀드명세서에 등록한 사실 등을 확인하게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관련기사 SK바이오팜 날자 옵티머스가…NH투자증권 정영채 “도의·법리 괴리”).
NH투자증권은 예탁원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이번 환매 중단 사태 수습을 위해 김앤장을 법무대리인으로 선임했다. NH투자증권은 예탁원은 물론, 하나은행에도 책임을 묻는 방안도 고심했다. 두 회사가 사무관리회사와 신탁회사로서 감시를 소홀히 한 것이 옵티머스 사태를 만들었다고 보고 법적 책임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NH투자증권은 투자자들에게 선보상을 검토 중인데, 두 회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해 회수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김앤장 측에서 NH투자증권에 하나은행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에는 신중하자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앤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NH투자증권의 화력은 예탁원에 집중될 수 있다. 예탁원은 최근 법무법인 광장에 옵티머스 사태 법무대리를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에선 NH투자증권과 예탁원의 소송전이 임박했다고 보고 있다.
예탁원은 이와 별도로 옵티머스운용으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투자자에게 돌려줄 방침이다. 공모펀드를 관리하는 펀드넷 시스템으로 사모펀드도 점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펀드 사무관리를 아예 맡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탁원 한 관계자는 “예탁원 사무관리사 업무 비중은 시장 전반에서도, 예탁원 내부에서도 크지 않다. 수익을 위한 사업도 아니다”라며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