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은 영화 ‘반도’에서 4년 전 좀비 사태로 가족을 잃고 국제 떠돌이 신세가 된 전직 군인 정석 역으로 분했다. 사진=NEW 제공
“어깨가 무겁진 않아요. 어차피 이제는 운명에 맡길 때라서(웃음). 홍보도 다 끝났으니 이젠 다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다행히 이번엔 경쟁작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이긴 하는데 한편으론 극장가가 너무 침체돼 있으니까 그게 또 걱정이죠. 많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는데, 보러 오시면 또 무사히 보셔야 하니까 걱정이고(웃음). 그래도 극장에서 2차 감염은 아직까지 없다고 하더라고요. 밀폐된 공간인데 왜 없을까 생각해 보니까 아, 아무도 말을 안 해서 그렇구나 싶은 거예요. 극장이 안전한 장소이긴 하네요(웃음).”
#“보편적인 사람을 표현한 캐릭터”
영화 ‘반도’에서 강동원은 ‘부산행’ 사태 직후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매형과 함께 홍콩을 떠도는 전직 군인 정석 역을 맡았다. 전작인 ‘인랑’에 비해 인간미가 더해졌고, 좀 더 ‘보통사람’ 같은 면이 돋보이는 역할이다. 앞서 ‘반도’의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연상호 감독과 강동원은 모두 정석에 대해 “완벽한 히어로가 아닌 시시한 인간, 보편적인 사람을 표현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안티 히어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영웅형 캐릭터와 다른 지점을 보여줘야 했기에 비틀어진 클리셰(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도 눈에 띈다. 여성과 어린 아이들에게 오히려 도움을 받는 성인 남성 정석의 모습이다.
“(총기) 액션을 보면 거의 제 중심적이었지만 카 체이싱 신에선 다른 배우들이 중심이었죠. 그래서 이 장면에서 이 배우가 돋보여야 하면 그럴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려고 했어요. 이레(극중 준이 역)가 운전할 때는 제가 뒤에서 더 막 오두방정을 떨어야 이레가 더 멋있어 보이니까(웃음).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흔히 보통 영화에서처럼 제가 약자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보호도 받으면서 서로 동등하게 싸우는 거였어요. 특히 애들이 어른을 구하는 게 잘 없잖아요? 어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도구 정도로는 많이 쓰이지만. 그런데 이 영화에선 애들과 여성이 주도적으로 싸우니까 그게 참 좋더라고요. 그런 점이 아마 ‘부산행’과 다른 지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강동원은 ‘반도’와 ‘부산행’의 차이점으로 여성과 아이들의 클리셰 타파를 꼽았다. 사진=NEW 제공
#‘우리 삼촌은 전우치다’
“조카가 일곱 살 때 하도 ‘해리 포터’ 타령을 하길래 제가 ‘야, 나도 비슷한 거 찍었어’ 하고 ‘전우치’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웃음). 그런데 얘가 영화를 안 보는 거예요, 계속 시선을 회피하면서…. 해리 포터한테 배신당한 느낌이어서 그런가 했는데 그 다음날 친구들한테 막 자랑했대요. ‘우리 삼촌은 전우치다’ 이러면서(웃음). 조카는 자기가 제 친군 줄 알아요. 저한테 막 ‘야, 뭐 하냐 인마!’ 이러기도 하고. 촬영 현장에서도 저는 이레, 예원이랑 되게 사이좋게 잘 지냈어요. 저희가 수준도 참 잘 맞더라고요.”
나이가 많이 어린 이예원은 몰라도, 10대들 사이에서 강동원은 여전히 ‘핫한’ 인물이다. 지난 6월 모의고사 국어영역 마지막 문제로 나온 ‘전우치’의 대본을 보고,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라 제대로 풀 수 없었다는 학생들의 피해 사례가 빗발치기도 했다. 영화는 몰라도 ‘전우치’에서 나온 흥겨운 궁중악사 신만큼은 알고 있었기에 지문만 보고도 자동적으로 영상을 떠올렸다는 게 학생들의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군도’의 일대일 대결 신에서 강동원이 맡은 조윤에게만 꽃잎을 뿌려주고 하정우가 맡은 도치에게는 뿌려주지 않았다든지, ‘검은 사제들’에서는 강동원이 맡은 최 부제가 향로를 들고 등장하는 신에서 후광이 비쳤다는 것도 이미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다. 강동원 역시 이에 대해 개봉 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찍을 때는 이렇게 소비(?)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마흔을 목전에 둔 강동원은 이제 배우로서 ‘성인 남성의 연기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NEW 제공
“사실 ‘군도’에서 꽃잎 저한테만 뿌려줬다 그거는 제가 진짜 (영화 보면서도) 몰랐어요. 나중에 기자 분이 말해주셔서 저도 ‘엥?’ 하다가, 진짜 그런 게 있었나 싶어서 확인을 해 보려고 아예 감독님께도 여쭤봤거든요. 감독님이 ‘내가 미쳤냐, 그런 짓을 하게?’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군도’나 ‘검은 사제들’ 속 제가 맡은 배역에 비해 정석은 극을 끌고 가면서 남을 받쳐주는 캐릭터에 가까운 것 같아요. 흔히 전문 용어로 ‘야마’가 없다고 하죠(웃음). 임팩트 있는 장면은 없지만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을 하고 제 롤에 대해 이해한 상태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이레와 이정현 선배님이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나올까 하면서. 그 둘을 돋보이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었으니까요.”
2004년 스크린 데뷔한 후 16년간 꾸준히 주연을 맡아왔지만, 강동원의 말에서는 더 이상 배역이나 비중에 대한 욕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배우로서 연기 외의 것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버리게 된 데는 그 스스로 자신을 ‘어른’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로 서른아홉, 마흔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야 이제까지의 회피를 그만두고 정면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이제 정말 완전한 성인 남자가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원래는 그렇게 되기 싫어서 피했던 것 같아요. 그걸 인정해 버리면 책임질 게 너무 많아지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거울만 봐도 ‘아 이거 어른 얼굴인데’ 하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거부하기엔 제가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싶은 거죠(웃음). 얼굴도 점점 성인 남자 얼굴이 돼 가는 느낌이 있어서 이제는 진짜 성인 남자 같은 연기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느끼는 거죠. 정석도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진짜 성인 남자의 느낌. 저도 앞으로 연기 방향에 대해 이래저래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은 연기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있고 그걸 거쳐서 또 제가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