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자구안 이행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두산중공업의 사업재편 계획이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 발맞춰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연합뉴스
두산그룹은 채권단에 3조 6000억 원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해 3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마련하는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그간 경영난에 빠진 두산건설을 지원한데다, 발전시장 침체와 탈원전·탈석탄 기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며 자금시장 위축으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확산됐다. 결국 두산중공업은 정부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받기로 하면서 자구책을 내놨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 4월 27일 두산그룹 측이 제출한 최종 자구안을 수용했다. 또 지난 5월 29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에 두산중공업 경영정상화 방안을 보고했다. 방안에는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을 목표로 하는 두산중공업 사업구조 개편과 대주주의 유상증자, 주요 계열사와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이 담겼다.
#두산중공업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두산그룹은 연내 1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두산중공업을 지원하고,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계열사 외에도 다수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할 계획이다. 추가 매각 추진 대상으로 거론되는 곳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메카텍, 네오플럭스 등이다.
더불어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발전사업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양 축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으로의 사업 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에서도 가스터빈과 수소액화 플랜트 등 두산중공업이 해오던 신재생 에너지 관련 신사업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또한 지난 6월 11일 그룹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사업재편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사업적 측면에서 중공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갖추는 길은 세계 에너지 시장 트렌드에 맞춰 사업구조를 갖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행스럽게도 임직원들의 오랜 노력 끝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발전용 가스터빈 개발에 성공했다”며 “가스터빈 상용화 등 앞으로도 거쳐야 할 관문이 많지만 하나씩 이뤄내면서 친환경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중공업이 사업재편 계획을 공식화한데다 지난 7월 14일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 발표까지 이어지자 두산그룹 계열사 두산퓨얼셀과 DMI가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16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판 뉴딜 사업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양 축으로 고용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겠다는 것. 70조 원가량이 투입되는 ‘그린뉴딜’의 경우 그린리모델링과 전기차‧수소차 보급, 스마트 에너지 플랫폼 구축 등의 사업이 계획됐다.
발전용 수소연료전지를 주력으로 하는 두산퓨얼셀과 수소드론을 주력으로 하는 DMI는 두산그룹 내 수소사업 관련 계열사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두산퓨얼셀의 주가는 지난 13일 최고가인 4만 1150원으로 마감, 직전 거래일(3만 3700원)보다 22.11% 올랐다. 지난해 10월 18일 상장 당시 주가(5510원)와 비교하면 7.46배나 올랐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리포트를 통해 “지난해 1월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향후 발전용 연료전지 시장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를 거듭할수록 동사의 매출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 시작해도 과실을 얻을지는 미지수
두 계열사가 주목을 받자 시장에서는 두산그룹이 매각 추진 리스트에서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계열사를 제외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두산중공업을 넘어 두산그룹 전체적인 사업재편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앞서 진행해오던 신재생 에너지 사업 비중을 늘려 사업을 재편해 나갈 것”이라며 “그룹 차원의 사업재편 계획은 별도로 없다”고 밝혔다.
다만 두산중공업의 사업구조 개편 계획과 높아진 계열사의 위상이 당장 그룹 정상화의 ‘치트키’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그린뉴딜’ 정책의 수혜를 입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인 추세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 할지라도 두산중공업의 갑작스러운 사업 전환은 쉽지 않다. 현재 두산중공업 매출의 60~70%는 석탄 화력발전 관련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원자력 설비 또한 매출의 10~20%를 차지한다. 정부가 향후 5년을 목표로 재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술이 하루아침에 지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풍력기술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산업표준을 지키고 제품화·보급하는 여러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걸린다”며 “시점이 맞지 않아 두산중공업이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의 수혜를 입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또한 “스스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미래성장 산업과 연계해 사업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면서도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세계적인 원자력 기술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이 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발전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데는 10년에서 20년가량이 걸리는 만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생 에너지 시장이 활성화되기까지 오랜 시간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만큼 두산중공업 현재 상황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교수는 “GM의 경우 흑자인 상태에서 전기차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두산중공업은 원자력을 가져가면서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천천히 늘려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계열사 역시 아직은 큰 성과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의 경우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이미 다수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친환경 에너지로의 기업 전환을 원하는) 채권단과의 협의도 원활히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시장에서 부각된 두 계열사의 주력 사업은 아직 과도기 단계로 규모가 크지 않다”며 “다수 계열사가 제조업 부문에 집중된 만큼 그룹 전체의 사업 재편은 확대해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