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문체부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심사위원회가 제출한 9명의 후보자를 공개했다. 9명 모두 현직 출판사 대표다. 문체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공적심사를 거쳐 최종 후보를 결정해 행정안전부(행안부)에 제출한다. 그런데 후보자 공개 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출판노조·의장 박주용)가 일부 후보자들의 포상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매년 10월 11일 ‘책의 날’을 맞아 출판문화발전 유공자에게 포상을 지급해왔다.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의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연합뉴스
#‘구름빵 사건’ 한솔교육 법적으로는 승소했다지만…
변 아무개 한솔교육 대표는 교육출판 기업을 운영하며 한글교육 저변 확대와 출판산업 부흥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포상 후보자에 올랐다.
한솔교육은 일명 ‘구름빵 사건’으로 유명한 출판사다. 한솔교육이 2004년 출간한 동화책 ‘구름빵’은 2010년 애니메이션화 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전체 수익 수십억 원 중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 씨의 몫은 2000만 원도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솔교육에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매절계약을 맺은 탓이다. 백 작가는 한솔교육과 계약이 불공정 계약이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원작자의 동의 없이 저작물을 수정하지 못하는 ‘동일성 유지권’도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대법원은 부당한 계약이 아니라며 한솔교육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으로는 한솔교육이 승리했지만 문학계에서는 여전히 한솔교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솔교육 관계자는 “승소로 종결됐지만 업계 발전을 위해 작가와 원만한 합의를 보고자 노력하는 중”이라며 “합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수익금의 공익 사용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솔교육이 2004년 출간한 동화책 ‘구름빵’은 2010년 애니메이션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4년에는 강원도 춘천시에서 구름빵 캐릭터가 새겨진 버스(사진)가 운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받은 수익은 전체 수익 수십억 원 중 20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판결 후인 7월 1일 문체부는 “저작권 양도계약 시 예측하지 못한 수익의 현저한 불균형이 발생하면 저작자가 일정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름빵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인정하지만 향후 이 같은 계약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와중에 구름빵 사건 당사자가 정부 포상 후보자에 오른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
출판노조 관계자는 “판결과 관계없이 도덕적 문제에서 생각해보면 이상문학상 사태로 이어지는 신인 작가들에 대한 갑질 같은 것”이라며 “당시 백 작가가 신인작가라는 약점을 이용해 계약서 수정 요구를 묵살했고, 백 작가의 의견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란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가 지난 1월 수상자들에게 ‘수상작 저작권을 3년 동안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요구했고, 이에 수상자로 선정된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수상을 거부한 일을 말한다. 이후 문학사상사는 “수상자에게 요구되는 조건을 삭제 또는 수정하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수상작과 수상집은 결국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고, 판결도 승소했기에 무조건 한솔교육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라면서도 “상생 차원에서 작가의 권리를 인정하는 계약을 새로 맺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고, 어쨌든 문학계에서 큰 논란을 야기한 출판사와 대표가 정부 포상을 받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한솔교육에 논란이 있는 건 알지만 다른 공적들을 인정해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저작자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도입 검토는) 사업적으로 거둔 수익과 작가가 받은 수익의 격차가 심해 제도 개선을 위해 보완해주자는 의미”라며 “공적심사 때 이를 감안해서 심사할 것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걸러내기 위해 공개 검증도 거치고 있다”고 전했다.
#한울엠플러스는 노동환경 저해 논란
김 아무개 한울엠플러스 대표는 약 40년간 3000여 종의 전문학술 출판물을 출간하고 출판단체 경영을 통해 출판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포상 후보자에 올랐다. 하지만 출판노조는 “(한울엠플러스는) 14분의 1 연봉 지급과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도 공휴일 출근과 야간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무리한 근무환경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일반 직장인은 연봉의 12분의 1을 월급으로 받지만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시켜 연봉의 13분의 1을 월급으로 받는 경우를 13분의 1 연봉이라고 한다. 출판노조에 따르면 한울엠플러스는 퇴직금뿐 아니라 상여금까지 연봉에 포함시켜 연봉의 14분의 1을 월급으로 지급했다.
한울엠플러스 관계자는 “퇴직금을 합쳐서 연봉계약을 했다면 당연히 불법이지만 우리는 은행 퇴직연금에 가입해 매년 꼬박꼬박 납입하고 있으며 퇴직연금을 급여에서 차감한 적이 없다”며 “직원이 퇴직했을 때 퇴직연금을 찾아가게끔 하고 있으며 상여금의 경우에는 주는 방식이 회사마다 다르고, 유연근무제를 통해 하루 8시간 근로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출판노조 관계자는 “복수의 퇴사자에게 이야기를 들었고, 피해자가 있는데 급여에서 차감한 적이 없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계약서를 갖고 있는 사람을 확보했으며 조만간 계약서를 공개해 구체적으로 반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변 대표와 김 대표를 포상 후보자로 추천한 대한출판문화협회 심사위원회는 출판단체 소속 인사, 평론가,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노동문제 등에 대해서는 명백히 고소·고발이 진행 중인 게 아니면 걸러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서류를 보고 어떤 책들을 출판했는지 위주로 판단하다 보니 내부 문제를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2018년에도 포상 후보자에 올랐고, 변 대표 역시 2019년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들은 당시 문체부 심사에서 탈락했다. 출판업계 다른 관계자는 “추천을 하기 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모두 동의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정량적인 부분만 살피다보니 후보군이 매년 정해져 있고, 업계가 좁아 일종의 카르텔도 형성돼 있다”며 “출판한 서적 수, 매출 등 정량적인 부분을 주요 포상 기준으로 삼은 채 노동환경이나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8월 초에 공적심사를 하는데 논란이 되는 부분을 감안해서 심사할 것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부 단체에서 꼭 포상을 줘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심사에서 탈락해도 다음 해 후보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검토 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