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대표직 조기 사퇴 vs 당권 완주 프레임.’
박원순 사망이 바꾼 민주당 8·29 전대의 핵심 변수는 이 의원의 7개월 임기를 둘러싼 논란이다. 애초 민주당 대표직 임기는 이낙연 대세론에 묻히면서 후발 주자의 공세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나 박원순 사망이 모든 것을 바꿨다. 부산시장 하나에 그쳤던 내년 재보선에 대권 급행열차인 서울시장까지 포함되면서다.
서울과 부산은 차기 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제21대 총선 기준 서울(846만 명)과 부산(295만 명)의 유권자는 1141만 명에 달한다. 전국 유권자 수(4396만 명)의 26% 수준이다. 4·7 재보선이 사실상 20대 대선의 예비고사로 격상한 셈인데, 이는 당 대표 자리를 공석으로 놔두는 게 적절하느냐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낙연 의원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늦어도 내년 3월경 당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장 등의 공천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입장에도 시선이 모아졌다. 민주당 당헌(제96조 2항)에 ‘소속 공직자의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이 실시될 경우 해당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구·경북(TK) 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가 (오는 2022년 대선과) 연동된다”며 “당헌·당규만 고집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돼 버렸다”고 치고 나갔다. 김 전 의원의 이 발언은 당 내부에서 ‘박 전 시장은 무공천 사유인 부정부패가 아니지 않느냐’라는 기류와 맞물리는 모습이다.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 것도 ‘공천 현실론’에 한몫하고 있다. 진성준 의원을 비롯한 박원순계 의원들은 줄곧 “박 전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 성추문 의혹이 당헌상 ‘중대한 잘못에 해당하느냐’라는 해석 논란으로 이슈가 옮겨간 것이다. 민주당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에도 ‘미투(나도 당했다) 파문’으로 사퇴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뒤를 이어 양승조 현 지사를 공천했다. 김 전 의원도 이 같은 당헌의 허점을 고리로 ‘공천 불가피론’의 애드벌룬을 연일 띄우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 의원의 대응 전략이다. 박원순 조문 정국에서 이 의원은 연일 ‘뒷북’, ‘뜸들이기’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다. 앞서 언급했듯 7개월짜리 당 대표 논란도 재점화됐다. 그러자 이 의원 측은 ‘당 대표직 사퇴→선거대책위원장’ 카드를 꺼냈다. 한 측근은 “만약 대선 출마를 위해 당 대표직을 사퇴하더라도 선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고 밝혔다.
내년 3월 민주당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대선 전초전인 4·7 재보선은 ‘이낙연 선거’로 치르겠다는 의도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박원순 유고 변수에 대해 “이낙연 대세론을 흔들 만한 정도는 아니다”라며 “민심은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 아니냐. 민심의 격차가 워낙 커서 당심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대낙으로 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궁지에 몰린 이 의원은 연일 ‘대선주자급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낙연 공세를 앞세운 김 전 의원이 사안마다 발 빠른 대응에 나서면서 차별화를 꾀했다면, 이 의원은 이번 전대를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삼았다. 이 의원이 당권 경쟁을 재개한 7월 14일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 “세종시에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것이 빨리 시작돼야 한다”며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에 군불을 지핀 것이 대표적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표 재미’를 본 대선 전략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수도 이전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사전 작업의 일환이다.
노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은 논거 중 하나는 ‘청와대와 국회가 수도 서울에 있다→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에 해당한다’였다. 사안마다 간을 본다는 지적을 받은 이 의원이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건든 것은 민주당 8·29 전대를 대선 검증의 시험대로 삼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차기 당권에 승부수를 던진 김 전 의원과는 달리, 이 의원이 포스트 문재인에 방점을 찍으면서 ‘높은 체급’을 전대 이슈로 끌고 들어왔다는 얘기다. 현재 NY(이낙연) 시프트의 핵심은 ‘선대위원장 카드+대선 검증’이다. 이 의원이 국회의사당의 세종 이전 발언 날 혁신경제연속세미나와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도입토론회 등에 잇따라 참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선주자급 행보에도 불구하고 뒷북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이 의원은 7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언급,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며 “피해 고소인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며 “관련된 모든 기관과 개인이 진상 규명에 협력해야 한다. 민주당도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날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이라고 한 입장과는 백팔십도 다른 태도다. 다만 당 내부에선 “이해찬 대표가 오전에 공개 사과를 통해 당 대응 기조를 정리하자, 마냥 따라가기만 한다”는 불신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 의원이 ‘플러스알파(+α)’ 전략을 꺼낼지도 관심사다. 변수는 서울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군과의 ‘전략적 연대’ 여부다. 민주당의 4·7 재보선 공천 관리는 차기 당 대표가 맡는다. 이낙연·김부겸 모두 광역자치단체장과 합종연횡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보선이 20대 대선을 1년 남짓 남기고 치러지는 만큼, 이들의 ‘짝짓기 퍼즐’은 사실상 당 내부 권력구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는 4선의 우상호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재선의 박주민 의원 등이 꼽힌다. 내각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청와대 인사로는 최근 임명된 임종석 통일외교안보 특보 등이 거론된다. 부산시장 후보군에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과 김해영 전 의원 등이 포함됐다. 박원순 유고가 돌출 변수인 만큼, 이 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군 간 합종연횡은 얼개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거론되는 재보선 후보군 중 친문(친문재인)계 후보는 임종석 특보와 박주민 의원 정도에 불과하다. 여권 내부 권력구도에 따라 NY와 비문(비문재인)계가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문 분화에 따라 이 의원과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인 우상호·우원식 의원 등이 합종연횡을 꾀하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86그룹 내 강경파 사이에선 “이 의원의 한계가 명확하다”며 평가 절하하는 기류도 엿보인다.
친문계와 결이 다른 추미애·박영선 장관 등도 NY 대세론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만에 하나 NY계와 이들이 손을 맞잡는다면, 김 전 의원은 자연스럽게 친노(친노무현)·친문계를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캠프에 친노 인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원조 친노인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김 전 의원 후원회장을 맡았다. 유인태 전 의원은 캠프 상임고문직을 수락했다. 캠프 총괄본부장은 2002년 노무현 대선캠프의 조직특보였던 강영추 전 한국관광공사 감사다.
이들을 잇는 연결고리는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합당 거부 때 ‘꼬마 민주당’에 남았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다. 범주류인 정세균 국무총리의 ‘김부겸 지원설’도 나온 만큼, 김 전 의원이 친문계인 박주민 의원과 전면적 결합을 꾀할 가능성도 있다.
변수는 ‘문심(문 대통령의 의중)’이다. 친문 직계가 문심에 따라 ‘이낙연과 김부겸’ 중 하나의 카드를 선택하고 차기 서울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결정해야만 차기 당권의 이합집산의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의 시간이냐, 김부겸의 시간이냐’의 마지막 변수도 친문계 손에 달린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