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오는 7월 말께 제7차 제재심을 열고 한화생명 종합검사결과에 따른 제재건을 심의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은 이미 징계 수위를 담은 사전 통지문을 한화생명에 전달한 상태다.
제재심은 금감원 검사국과 제재 대상자가 각자 의견을 내는 대심제로 진행된다. 금감원과 한화생명은 면세점과 63빌딩을 관리하는 63시티 사옥 수수료 지급과 관련한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대주주거래제한 위반으로 제재가 예고된 한화생명과 금융감독원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감원은 한화생명과 두 계열사와의 계약이 한화생명에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법 제111조(대주주와의 거래제한 등)에 따르면 보험사는 보험사의 대주주에게 부동산 등 유·무형의 자산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정상 가격을 벗어난 가격으로 매매·교환할 수 없다. 고객의 보험료로 조성된 한화생명의 자산이 그룹 계열사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것은 명백한 보험업법 위반이라는 논리를 펼 것으로 보인다.
한화생명은 금감원이 지난해 4년여 만에 실시한 종합검사의 첫 검사 대상 보험사로 선정돼 5월부터 7월까지 검사를 받았다. 연금 가입자에게 불명확한 약관을 이유로 덜 지급한 연금을 즉시 지급하라는 권고를 거부해 금감원과 갈등을 빚은 상태에서 검사를 받으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통상 종합검사 관련 징계는 1년 이내로 이뤄지지만 한화생명이 제재 수위를 낮추기 위해 전방위 노력에 나선 데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제재심 일정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하지만 종합검사의 일환으로 실시한 경영실태평가(RAAS) 결과를 공개하면서 한화생명을 압박했다. 대주주 및 계열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입찰 또는 계약 기준을 변경하는 등 부실한 내부 통제에 따른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집중 지적한 것.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경영유의사항 4건, 개선사항 6건 등 총 10건의 행정지도 사항을 담은 결과를 한화생명에 통보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대주주 및 계열사와 총 2조 5878억 원 규모의 거래를 했으며 거래금액은 매년 증가했다.
특히 한화생명은 2016년 12월 회사 전산망 해킹 등을 방지하기 위한 33억 원 규모의 망분리 정보기술(IT) 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과거 프로젝트 경험에 관한 기준을 입찰 참가 조건과 기술 평가 배점에서 삭제 또는 완화해 사업 경험이 부족한 한화에스앤씨가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했다. 계약 당시 한화에스앤씨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부사장,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삼형제가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였다.
한화생명은 또 최대주주인 한화건설과 장교빌딩 개·보수공사 계약, 연수원 신축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내규에 업체 선정 기준, 공사 이행보증 수단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장교빌딩 개·보수공사 입찰 참가 업체를 선정할 때는 회사채 ‘A-’ 등급 이상을 기준으로 운영했으나, 한화건설의 신용등급이 ‘BBB+’ 등급으로 하락한 이후 2016년 7월 연수원 신축공사 입찰 참가 업체를 선정할 때는 회사채 신용등급기준을 삭제했다.
한화건설은 한화생명 주식 25.0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화그룹은 한화생명을 통해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임준선 기자
사안 자체는 중대해 보이지만, 쟁점은 오히려 금감원이 제도와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종합검사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야 할 일을 왜 금융당국이 나서냐”는 불만이 나왔었다. 대기업 내부거래나 브랜드 수수료 적정성 등은 금감원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보험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만큼 감독 근거가 있다”고 맞섰다.
한화생명 측 역시 유사한 논리를 앞세워 금감원의 공세를 적극 방어하겠다는 태세다. 게다가 흥국화재가 비슷한 이유로 금감원 제재를 받았다가 소송을 벌여 승소한 사례가 나오면서 전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태광그룹 계열인 흥국화재가 태광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정보기술(IT) 회사 티시스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며 단가적용률을 두 차례 인상한 것을 대주주 부당지원으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흥국화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3월 1심 재판부는 사실상 흥국화재의 손을 들어줬다. 컴퓨터·네트워크·인적자원 등 자산의 이전 없이 순수하게 정보시스템의 유지와 보수 등을 대가로 대금을 지급한 이 사건 용역 거래는 보험업법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기관경고가 확정될 경우 한화생명은 1년간 신규 인허가나 대주주 변경승인을 받을 수 없다. 대주주 결격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차례 이상 기관경고가 누적되면 영업정지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한화생명은 2017년 이른바 자살보험금 사태로 이미 한 차례 기관경고를 받은 상태다.
이 때문에 한화생명은 내부거래에 관해 금감원이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점과 흥국화재 사례를 방패삼아 적극적인 방어에 나설 전망이다. 다만 소송까지 가는 극단적 대립보다는 제재수위를 낮추는 것이 목표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대주주와 관련한 사안이니 설령 작은 일이라도 예민해지는데 오너십에 관한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일이니 총력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다만 오히려 오너가 걸린 문제이니 소송까지 가는 등 시끄러워지는 것보다는 경징계 수준에서 합의를 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