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국내 그룹 총수의 주식 자산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일대에서 바라본 서울 강북 도심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무너진 독주체제, 신흥 부호의 등장
지난 7월 16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상위 10위 기업집단 총수의 상장사 보유지분 가치를 계산하면 부동의 1위는 여전히 15조 9936억 원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삼성전자 지분가치(13조 4442억 원)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독주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급부상 때문이다.
서정진 회장은 표면적으로는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35.62%만 직접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서 회장이 96%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가 셀트리온 지분 20.03%를 갖고 있다. 사실상 서 회장이 보유한 셈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가치만으로도 5조 5169억 원에 달하는데,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한 셀트리온 지분까지 합하면 14조 294억 원이 된다. 이건희 회장 지분이 상속·증여 과정에서 분산될 경우 새로운 1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닌 서 회장이 될 수 있다.
3위도 5대 그룹이 아닌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김범수 의장이 직접 보유한 카카오 지분은 14.36%이지만, 100% 지분을 가진 케이큐브홀딩스가 11.42%를 갖고 있다. 사실상 김 의장이 25.78%의 지분을 보유한 셈이다. 가치는 무려 7조 2266억 원에 달한다.
기존 5대그룹 총수일가 가운데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7조 1181억 원으로 4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3조 3476억 원으로 5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SK바이오팜 상장 이후 주가상승으로 3조 622억 원으로 지분가치가 올랐지만 6위에 그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2조 119억 원,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1조 8997억 원으로 방준혁 넷마블 의장(2조 5692억 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2조 3100억 원)에 밀려 9위, 10위로 처졌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는 지분율이 3.72%에 불과한데도 주식가치가 1조 6734억 원으로 LG 구 회장과 엇비슷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1조 337억 원으로 조 단위에 턱걸이했다.
#5대그룹의 반격? 상속과 상장이 변수
5대그룹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이 지주회사 또는 사실상의 지주회사에 몰려 있다. 자회사 기업가치가 높아져도 지주사나 주력기업 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한 주식 자산가치가 획기적으로 불어나기 어렵다. 다만 상속과 증여, 비상장 계열사 상장이 변수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아직 상속이 끝나지 않았다.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 지분이 이재용 부회장에 모두 넘어 간다면 이 부회장 지분가치는 20조 원을 넘게 된다. 신기록이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 지분을 모두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물려받는다면 5조 원대가 된다. 다만 아직 비상장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가치를 감안하면 6조 원대로 올라설 수도 있다.
SK는 SK실트론 상장이 변수다. 최태원 회장이 총수입맞교환(TRS) 형태로 보유한 30.9%의 지분가치는 최소 2조 원, 많게는 3조 원에 달한다는 것이 증권가의 추정이다. 최 회장 지분가치가 지금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 구자경 명예회장의 지분을 상속받고, 양어머니인 김영식 씨·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지분까지 물려받으면 3조 원대로 올라설 수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정기선 사장은 현재 현대중공업지주 지분(5.1%) 가치가 2000억 원 미만이다. 정몽준 고문의 지분(25.8%, 시가 1조 원)을 물려받는다면 조 단위 주식부자가 될 수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 삼형제도 잠재 후보다. 삼형제가 100% 지분을 가진 에이치솔루션은 순자산만 2조 원에 육박한다. 에이치솔루션이 상장하거나, 삼형제 지분을 다른 주력 계열사 지분과 맞교환하고 시가 약 4000억 원 규모인 김 회장의 (주)한화 지분(22.65%)까지 물려받을 경우 맏이인 김동관 부사장은 조 단위 주식 부자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다.
총수는 아니지만 총수 일가 가운데 최고 주식부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다. 삼성전자 지분가치만 3조 원에 달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전 삼성물산 사장은 7000억 원에도 못 미친다.
#바이오·인터넷·엔터 부호의 산실?
바이오와 인터넷 신흥 기업 총수의 경우, 주력사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어 최근 주가상승 흐름이 계속될 경우 자산가치가 더 불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들도 후계구도 변수가 존재한다. 대부분이 50대인 만큼 시급한 현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닥칠 숙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개인회사 지분 상속만으로 주력사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조 단위 주식부자 예비 후보들은 앞으로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기업공개 준비작업에 돌입한 BTS(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 후 추정 시가총액은 3조~5조 원에 달한다. 45.2% 지분을 가진 방시혁 대표가 단숨에 조 단위 주식부자 대열에 오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방준혁 의장이 이끄는 넷마블도 빅히트 지분을 25%나 보유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