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적자 쿠팡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를 인수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쿠팡 직원들이 서 있는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쿠팡이 싱가포르 OTT업체 ‘훅(hooq)’과 인수·합병(M&A)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훅은 싱가포르텔레콤과 소니픽처스, 워너브러더스가 2015년 설립한 합작회사다. 싱가포르·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인도에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를 제공하던 중 글로벌 OTT 경쟁에 밀려 지난 3월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4월 말 서비스를 중단했다.
쿠팡은 “인수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업계와 외신에서는 이번 M&A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최근 국내 OTT업체를 인수하려고 일부 기업과 접촉한 것으로 안다”며 “대표적인 업체들은 SK텔레콤·KT 등 다 주인이 있어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해외 업체를 사들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이번 인수가 아마존을 모델로 삼아 플랫폼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본다. 아마존은 인터넷 서점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인터넷 종합 쇼핑몰로 성장했고, 물류·페이먼트·클라우드·음악감상·OTT·게임스트리밍 등 사업 분야를 늘리며 플랫폼을 확장했다. 또 2004년 출시한 유료 멤버십이자 구독경제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빠른 배송과 할인 등 혜택을 제공하며 충성 고객을 늘렸다. 쿠팡도 플랫폼에 다양한 서비스를 집어넣어 ‘한국판 아마존’이자 네이버·카카오 같은 종합 IT기업으로 거듭나려 한다는 시나리오다.
#‘로켓’ 브랜드 내세워 다양한 서비스 도입
실제 쿠팡은 빠르게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배달대행 ‘쿠팡이츠’는 물론, 전국에 구축한 물류시스템으로 쿠팡 오픈마켓을 이용하는 입점업체 상품을 로켓배송(주문시 당일·익일 배송)해주고 상품 보관, 고객 응대도 대신해주는 ‘로켓제휴’ 서비스를 최근 선보였다. 기존에는 입점업체들이 쿠팡의 온라인 판매 채널만 이용할 뿐 보관·배송·응대 등은 직접 해야 하는 구조였다.
이 밖에도 휴대폰 판매부터 개통·관리까지 해주는 온라인 휴대폰 대리점 ‘로켓모바일’을 지난 15일 론칭했고, 핀테크 사업을 전담할 쿠팡페이도 오는 8월 출범한다. 이 서비스들은 앞으로 유료멤버십 ‘로켓와우’에서 제공하는 혜택에 담겨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미끼이자 기존 가입자를 묶어주는 자물쇠가 될 전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 한류 열풍에 한국이 음반·웹툰·영화 등 콘텐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OTT 시장도 급성장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며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태국 베트남 등 거대 한류 문화권의 중심으로, 아시아권을 묶는 ‘케이벨트’를 구축하기에 유리한 위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으로 다양한 사업을 연결하고 구독경제로 운영해 영향력을 키우려는 쿠팡 입장에선 한류를 활용할 수 있는 OTT에서 사업 기회를 본 것”이라고 관측했다.
해외 진출용 교두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콘텐츠 사업으로 고객층을 확보한 뒤 쿠팡의 이커머스와 물류시스템을 정착시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것. 서용구 교수는 “한국 문화에 대한 수요는 한국 음식과 의류로 이어진다”며 “콘텐츠사업에서 이커머스로 확장하고 국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로 성공한 노하우를 활용하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OTT는 라이브커머스 창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라이브커머스는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채널로, 비대면 비접촉을 추구하는 언택트 소비가 급증하면서 새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OTT업체와 계약을 맺기보다 직접 인수한 것을 보면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듯하다”고 했다.
쿠팡이 싱가포르 동영상 서비스(OTT) ‘훅’을 인수한 데 대해 성장하는 OTT 시장에 진출해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쿠팡의 물류차량이 서울 중구 의주로의 한 주차장에 진입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생존전략이 재무 더 악화시킬라’ 우려도
일각에선 생존을 위한 투자로 보기도 한다. IT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코로나19 사태로 수혜를 보기도 했지만 확진자가 발생해 일부 사업장이 정지된 경험이 있다. 이커머스 하나만으론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라며 “또 쿠팡의 핵심은 사람이 직접 전달하는 로켓배송이지만 자율주행과 AI, 드론이 대중화하면 누구나 실시간 배송이 가능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승차공유업체 우버도 코로나 사태 이후 음식배달 업체를 인수하며 먹거리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쿠팡도 생존을 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이라며 “동남아처럼 유통 체계가 낙후된 나라에 쿠팡시스템을 전파하는 등 해외 진출도 하나의 생존 방안”이라고 했다.
다만 OTT 사업은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고, 국내외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 만년 적자 쿠팡이 진출하기 좋은 시장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쿠팡의 재무 건전성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OTT업계 관계자는 “미디어·방송 사업은 규제가 많고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 신규 사업자가 자리잡기 어렵다. 자본력 탄탄한 글로벌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양분되는 이유”라며 “국내에서 OTT업체들의 망 이용료 이슈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도 그런 논의가 진행될 테고, 규제가 생기면 수익은 없는데 수수료와 세금만 나가는 등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몸값을 끌어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감지된다. 쿠팡은 지난해 기준 매출 7조 원을 돌파했지만, 영업이익 쪽에선 여전히 7205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물류에 꾸준히 투자하고 진출 사업도 늘리고 있어 지속적인 투자가 불가피하기에 기업공개(IPO·상장)가 시급하다는 점에서 ‘글로벌 기업’ 타이틀을 마련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커머스업계 다른 관계자는 “쿠팡이 상장하려는 곳은 미국시장으로 단순 국내 이커머스만으로는 사업 라인업이 부족할 수 있다”며 “글로벌 포토폴리오를 만들어 ‘아마존 프레임’을 씌우려는 작업”이라고 해석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