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물을 마시며 고심에 빠진 김종인 비대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의 ‘마지막 승부’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7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 ‘자아비판’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탄생을 도운 일, 문재인 정부 탄생의 길을 열어준 일에 대해 늘 국민 여러분께 사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3월 발간한 회고록에서도 “어쩌면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라고 적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선거를 지휘,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만든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잘못 봤다고 털어놓으면서, 그로 인한 나라의 혼란을 국민들에 사과하고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직접 나서 나라를 바로잡을 인물을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내년 재보선을 김 위원장의 마지막 정치 승부수로 삼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내년 재보선은 김 위원장 개인적 승부수이기도 하지만 보수정당의 정통을 이어온 미래통합당 존폐 기로이기도 하다. 전국 선거에서 이미 4연패한 통합당이 내년 재보선마저 밀릴 경우 2022년 대선은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위기감을 당 안팎에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나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고가 알려진 직후인 7월 10일 당 정강정책개정 세미나에서 그는 내년 재보선을 사실상 대선 전초전으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시장 보궐선거나 부산시장 보궐선거나 경우에 따라 또 다른 선거를 전제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선거를 해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통합당 “승기 잡았다”
7월 17일 기준 서울과 부산, 두 곳의 보궐선거는 확정됐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자진 사퇴했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역시 전직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서울시장 자리가 비었다.
1995년 민선 1기 이후 서울과 부산 두 곳 동시 보궐선거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4·15 총선을 기준 서울(846만 5000여 명)과 부산(295만 7000여 명) 유권자를 합치면 1140만 명에 이른다.
7월 13일 서울시청에서 엄수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결식. 사진=서울시
통합당은 수도와 제2도시에서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보궐선거를 있게 만든 원인제공자 측, 즉 여당에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합당은 “내년 보궐선거에 여당이 공천자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당 소속 공직자의 부정부패 등 중대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한 민주당의 당헌·당규를 들이밀며 통합당은 민주당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통합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공천을 안 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성추행의 경우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당헌을 자체 해석해 후보를 공천할 수도 있고, 지난 총선에서 그러했듯 시민 후보 추대와 같은 곁길 공천을 통해 여당 후보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통합당은 공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당 후보의 정당성에 미리부터 흠집을 내놓는다는 계산이다. 통합당 한 초선의원은 “정치도 상식선상에서 하는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한결같이 성추문에 휩싸였다. 공당이라면 구태여 당헌·당규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부끄러워서라도 공천을 안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물론 진보적인 여성계 인사들을 만나도 이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통합당의 유불리를 떠나 정치 도의상 여당은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당에 대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초반 승기는 일단 잡았다는 판단이 통합당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성추행 폭로가 나온 직후인 13∼15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전국 유권자 15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35.4%, 통합당 31.1%, 정의당 5.8%, 국민의당 5.0%, 열린민주당 4.7%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4.3%포인트(p) 내렸고, 통합당 지지도는 1.4%p 오른 가운데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4.3%p 오차범위 안에 들어왔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진 것은 통합당 창당 이후 처음이라고 리얼미터는 설명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기가 이끌어왔는데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문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긍정평가)는 전주보다 4.6%p 하락한 44.1%를 기록, 지난해 10월 2주차(41.4%)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당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한창이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역시 전주보다 5.2%p 오른 51.7%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부정평가 수치 역시 조국 사태가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11월 1주차(52.2%) 이후 가장 높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통합당, 선수 부족은 어쩌나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을 통합당에 유리하도록 바로잡는 기반공사는 끝났는데, 문제는 ‘선수’다. 선거에서 상대를 제압할 후보자가 마땅찮은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직접 나서 철통 보안을 유지하면서 선수 물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퇴근 후에 측근에게 일정을 잘 알려주지도 않고, 수행도 잘 시키지 않은 채 선수 물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 사정에 밝은 주호영 원내대표에 후보 물색을 요청해놨다는 말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한 측근 의원은 “여러 사람을 따라다니게 만들지 않는다. 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정책 보강 작업과 인재 구하기를 위해 뛰어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측근에게도 전혀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정책은 상대의 카드를 다 읽고 난 뒤 우리 카드를 내보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인물도 최대치의 궁금증을 만든 뒤에 신데렐라를 내세워 컨벤션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부산은 통합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라 후보 물색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울은 격전이 예상되는 만큼 김 위원장은 서울시장 후보 물색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젊은 후보가 가장 우선적 기준이며, 대선 전초전인지라 대선 후보급을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를 찾는다면 경선이 아니라 단독 후보 공천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현직이 모두 성추행 여파로 떠났다는 점에서 여성 후보가 적격이라는 의견도 있다. 2011년 박원순 시장에 패한 바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이나 이혜훈 전 의원이 거론된다. 전희경 전 의원과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도 이름이 올라와있다.
통합당 한 3선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은 젊고 참신하고 경제를 잘 아는 정치 초년생 후보를 찾겠지만 이는 이상적 모델이며, 정치판을 잘 아는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장은 공식 선거비용만 40억 원에 육박한다. 후보가 막대한 선거비용을 동원할 능력이 어느 정도 돼야 하는데 정치신인은 도전이 불가능하다. 기성 정치인이 도전하는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 통합당이 승기를 잡은 만큼 정책에 승부를 잘 건다면 기존 정치인을 내세워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고, 김 위원장도 현실론에 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실론이 힘을 얻는다면 안철수 카드가 급부상할 수 있다. 보궐선거에서 대선 전초전을 확실히 닦아놔야 하는 통합당 입장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모셔와’ 서울부터 붙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일단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서울시장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의당 의원들과 통합당 지도부의 소통 수준도 꽤 높은 상태다. 서로 의견을 구하면서 결정도 내릴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통합당 한 핵심 관계자는 “정치는 바로 앞부터 보는 것”이라며 “전혀 안 보이는 2022년보다 어렴풋이 보이는 내년 4월을 안 대표가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합당이 신데렐라를 찾기 힘들다면 안 대표와 통합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도 있다. 국민의당과는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