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번 시즌 첫 60경기에서 59개의 다른 선발 라인업으로 임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은 개막 첫 60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총 59개의 선발 라인업을 사용했다. 동일한 타순으로 경기에 나선 건 6월 16일과 1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이 현재까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첫 37경기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라인업을 제출한 적이 없고, 6월 17일 이후 치른 경기에서도 매번 라인업이 바뀌었다.
타순은 물론이고, 선수들의 수비 위치도 자주 바뀐다. 내야와 외야 모두 멀티 포지션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더 변화무쌍한 라인업 구성이 가능해졌다. 허 감독은 “나 역시 일주일 정도 라인업을 고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막상 타순을 짜다 보면 매일 바뀌더라.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고정 라인업이 생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여러 타순을 실험하는 건 후반기 레이스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대비책이다. 올해는 유독 돌발 변수가 많은 시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막이 한 달 넘게 밀리면서 더블헤더, 서스펜디드게임, 월요일 경기 등이 도입됐다. 올스타 브레이크도 없이 쉴 틈 없는 일정 속에 144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허 감독은 “팀별 80경기가 지날 무렵부터는 체력 싸움이 될 것이다. 그때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하면 늦는다. 지금부터 미리 여러 선수를 점검하고 작전을 시험해 익숙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개막 닷새 만에 구자욱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나흘 뒤에는 외국인 타자 타일러 살라디노가 허벅지 통증으로 1군에서 빠졌다. 며칠 뒤에는 이성규가 옆구리 통증으로 2군에 갔고, 이원석도 수비 도중 타구에 손을 맞아 자리를 비웠다. 내야수 박계범과 포수 강민호는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개막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선수 9명 가운데 계속 1군을 지킨 타자는 김상수뿐이다.
허 감독은 내부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1군에서 거의 뛰지 않았던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선수 기용 폭이 넓어지자 선수 한두 명이 빠져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전력분석팀장 출신답게 매 경기 데이터에 기반한 라인업을 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삼성은 대타 타율도 리그 평균을 훌쩍 넘는다.
허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상대 선발투수다. 일례로 지난 7월 7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발이 빠르지 않고 출루율도 낮은 최영진을 2번에 배치하면서 “왼손투수 상대 타율이 우리 팀에서 가장 높다. 상대 선발투수에게 초반부터 압박을 가하기 위해 전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최영진은 이날 멀티히트와 멀티득점으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허 감독은 “좋은 페이스는 영원하지 않고, 팀 분위기도 언젠가는 떨어진다. 항상 경계해야 그때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야구 해설위원은 “개막 후 두 달이 흐른 뒤에도 선발 라인업이 지속적으로 바뀐다는 건 감독이 선수들을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는 의미”라고 호평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