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6·17 부동산 정책 후속 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10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건설업계 건의’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협회는 “이번에 정부가 편성한 3차 추경에 경기부양 및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SOC(사회간접자본) 분야가 소외돼 있어 아쉽다”며 내년도 SOC 예산을 30조 원 이상으로 편성해줄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각종 도시·개발 규제를 혁파해 재개발·재건축을 전반적으로 허용하고 도시재생 사업을 민간 제안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개선도 촉구했다.
협회가 직접 나서 업계의 어려움을 호소한 배경엔 정부의 ‘한국판 뉴딜’ 계획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했다.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160조 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임에도 건설 부문의 경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 건설업계는 건축물 그린 리모델링, SOC 디지털화 등이 사업에 포함됐지만 대형 SOC 사업은 제외되면서 업계 수혜가 미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설업계는 지난 4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조 9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 규모의 건설투자가 감소할 것이라고 관측한 바 있다.
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과 7‧10 부동산 대책 등 연이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드라이브 또한 업계의 어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업계는 올해 국내 건설 수주가 전년(166조 원) 대비 6.1% 감소한 155조 90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반기에는 부동산 규제를 피하기 위한 민간주택 수주가 발생해 전년 동기 대비 3.1%가량 감소했으나, 하반기에는 코로나19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오는 8월부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는 탓에 감소폭이 8.4%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자, 올해 상반기 명동 자금시장에서는 일부 건설사의 위기설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GS건설과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대형 건설사들의 회사채 흥행이 실패하면서 중견 건설사의 자금 조달 능력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형 건설사들은 신규 회사채 발행이 아니더라도 보유 현금을 활용하거나 대형 사업을 맡아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충분히 일으킬 수 있는 반면, 재무상황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중견 건설사는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경기가 어려워지면 금융권에서는 건설업을 위험업종으로 분류한다. 건설회사는 직접 보유한 자산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회사의 안정성이 중요한 회사채의 특성상, 중견 이하 건설사의 경우 쉽사리 발행에 나서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래 가치에 중점을 두는 PF 대출의 경우에도 회사보다는 사업 자체에 비중을 두는데, 사업성이 확실한 프로젝트의 경우 대부분 대형 건설사가 맡기 때문에 중견‧중소 건설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수그룹 계열사인 이수건설은 매각설의 단골 손님이다. 사진=이수건설 홈페이지
지난해 재개발건축‧재건축 시장에 재등장한 삼성물산의 존재도 중견 건설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삼성물산은 올해 상반기 1조 500억 원 규모의 도시정비사업을 수주해 현대건설(3조 4000억 원)과 롯데건설(1조 6000억 원)에 이어 업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대형 건설사들이 ‘메머드급’ 재건축뿐만 아니라 수도권 소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과 지역의 도시정비 사업 등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삼성물산의 부재로 재건축 시장은 춘추전국시대였으나, 올해 상반기 삼성물산에서 40%가량의 정비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전해진다”며 “삼성물산의 재등장이 실적 하락세에 빠진 주요 건설사들의 위기를 재촉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주고는 업계 3위에 불과하지만 사업을 수주한 비중으로 따졌을 때 존재감이 크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위기설의 대상으로 거론된 중견 건설사는 반도건설과 이수건설이다. 반도건설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구축해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나서면서 화두에 올랐다. 현금 확보 능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도건설은 지난 1월 한진칼 지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한 이후 꾸준한 추가 매입을 통해 지분율을 19%대까지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계열사를 통한 자금 동원력이 뛰어난 반도건설이 3자 연합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지난 4월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한 주식담보 대출이 거절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계열사 자금 차입에 따른 재무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와 관련 반도건설 관계자는 “반도건설의 부채비율은 두자릿수로 낮다”며 “한진칼 주식담보대출이 안되는 것은 반도건설의 신용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담보물건인 한진칼의 신용도가 낮아서 그런 것”이라고 전했다.
이수그룹 계열사인 이수건설의 경우 매각설의 단골이다. 이수건설의 어려움이 모회사 이수화학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219억 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던 이수건설은 지난해 순이익 34억 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현금흐름은 2017년 마이너스(-) 66억 원에서 2018년 -197억 원, 2019년 -263억 원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게다가 이수건설의 지분 75.2%를 보유 중인 이수화학의 상황도 좋지 않다. 이수화학의 당기순손실은 2017년 9억 원에서 2018년 16억 원, 2019년 18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수화학은 2018년 12월 사옥 매각을 통해 이수건설에 대해 600억 원 규모의 출자를 단행했다. 이수화학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수건설에 지원한 자금은 1760억 원 규모다.
이수화학은 이수건설이 2009년 워크아웃을 개시하자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이수건설은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2011년 워크아웃을 졸업했으나 아직까지 재무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이수화학 관계자는 “매각설에 대해서는 이미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매각을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대형사인 포스코건설도 위기설을 피해가지 못했다. 다만 반도건설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현금을 확보한 포스코건설은 파크원과 관련된 손실 우려가 지나치게 확대된 것이 위기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명동 자금시장 관계자는 포스코건설에 대해 “서울 여의도에 시공 중인 파크원 건물이 임차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근 을지로 부근의 회사들도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이전하는 곳이 많은데, 파크원의 경우 임대료도 높은 데다 덩치가 큰 탓에 포스코건설이 떠안을 손실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포스코건설은 2016년 여의도 파크원 개발사업의 시공을 맡으며 ‘책임준공 미이행 시 채무인수 및 책임임차’를 약속했다. 7월 중 준공이 예정돼 있지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경우 계약에 따라 3년간 월 40억 원씩 총 1440억 원의 임대료를 포스코건설이 떠안아야 한다. 2007년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으며 시작된 여의도 파크원 개발사업은 시행사 Y22 PFI(프로젝트파이낸싱인베스트먼트)와 토지 소유주 통일교재단 간 법적분쟁 등으로 5년가량 중단됐으며, 이 과정에서 포스코건설로 시공사가 변경됐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