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월 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국무총리, 문 대통령, 노영민 비서실장. 사진=청와대 제공
정세균 총리는 7월 8일 “각 부처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서 고위공직자 주택보유 실태를 조속히 파악하고, 다주택자의 경우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같은 날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논란이 됐던 서울 반포 소재 아파트를 팔 것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문제로 인해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진화에 나선 셈이다.
그 불똥은 관가로 튀었다. 정 총리가 언급한 고위공직자는 2급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부처만 1000명이 넘는다. 장·차관과 공공기관 등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총리실은 다주택자 현황 파악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이행 여부까지 챙긴다는 방침이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일단 전수조사가 끝나야 후속 조치 등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은 정 총리 발언이 비록 권고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띤 지시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중앙부처 2급 공무원은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의견엔 무조건 동의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집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는 게 납득이 잘 안 된다. 공무원에겐 재산권도 없느냐”라고 되물었다.
공공기관의 고위 임원 역시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그는 “물론 투기를 위해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비율이 얼마나 될 진 모르겠다”면서 “개인적 처지 등 여러 이유로 인해 부득이하게 집을 두 채 갖고 있는 공무원들도 많다. 이런 것까지 죄인 취급을 하면서 일괄적으로 팔라고 하니 불만이 새어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일요신문이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공무원들 대부분은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인사 상 불이익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한 중앙부처 사무관(5급)은 “고위공직자는 아니지만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공직사회라는 게 그렇지 않느냐. 정부 방침이 내려오면 일단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다주택자들이 좋은 등급을 받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서기관(4급)도 “부처 간에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상자인 2급 이상뿐 아니라 그 밑에 다주택자 직원들도 매각에 대한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밝히긴 어렵지만 한 부처의 경우 차관이 직접 다주택자 리스트를 만들어 매각 여부를 챙기는 것으로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청와대를 향한 불만도 들렸다. 중앙부처의 또 다른 2급 공무원은 “솔직히 노영민 실장도 떠밀리다시피 해서 판 것 아니냐. 그리고 다주택을 갖고 있는 수석비서관들이나 장·차관들이 아직 많다. 그들부터 먼저 모범을 보였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정책 혼선에 따른 여론 악화를 공무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다”고 했다.
앞서의 중앙부처 서기관은 “나도 지금 집 두 채를 갖고 있다. 아내가 지방에 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으면 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교육, 맞벌이 등 참작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땐 매각 대상자에서 빼주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서기관은 “솔직히 내 주변에서는 ‘차라리 인사고과를 낮게 받는 게 낫다’며 버티겠다고 하는 직원들이 많다. 지금이야 워낙 정부 입장이 강경해 바싹 엎드리고는 있지만 과연 강제로 팔게 하겠느냐”라면서 “2급 이상 중에선 퇴직이 얼마 안 남은 분들이 제법 있는데, 과연 부동산을 팔고 조직에 남을지 아니면 조직을 떠날지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