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7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서 인근 길을 지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사진=SBS 뉴스화면 캡처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 씨 측은 고소와 수사상황이 박 전 시장에게 즉각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A 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7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 범행이 담긴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수사팀에도 보안유지를 요청했다”며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그날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상황이 전달됐다”며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증거인멸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전 시장이 성추행 피소 사실을 인지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할 다른 이유는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에 따라 성추행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어떤 경위로 전달됐는지 추측이 쏟아졌다.
박 전 시장이 피소 사실을 알았다면 그 시점은 7월 8일 저녁부터 9일 새벽 사이로 추정된다. 서울시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박 전 시장의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한다고 출입기자단에 공지한 시각은 7월 9일 오전 10시 40분이다. 이어 10시 44분 박 전 시장이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박 전 시장의 딸은 오후 5시 17분에 경찰에 부친 실종신고를 했다. 이후 박 전 시장은 다음날인 10일 오전 0시 1분쯤 서울 북한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에는 경찰과 청와대를 거쳐 본인에게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A 씨는 7월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전 시장에 대한 ‘성폭력특례법’ 위반 혐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어 바로 고소인 조사를 시작해 다음날 오전 2시 30분 고소인 1차 진술조사를 마쳤다.
동시에 경찰청과 청와대에도 이러한 내용이 보고됐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A 씨 고소장을 접수한 지 얼마 안 돼 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을 경찰청에 보고했고, 본청은 같은 날 저녁 청와대에 전달했다. ‘대통령비서실 운영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자치단체장이나 고위 공무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의 형사사건 피소 사실 등 중대한 사안은 청와대 비서실에 보고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경찰과 청와대는 박 전 시장 측에는 전혀 통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측은 박 전 시장이나 서울시에는 알리지 않았고, 박 전 시장 측과 소환일정도 조율한 적 없다고 전했다. 청와대 역시 “관련 내용을 당일 저녁 경찰로부터 보고 받았지만, 박 전 시장에게 통보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A 씨 고소 전부터 박 전 시장 측이 관련 내용을 파악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고소 전 A 씨가 법률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이 이를 인지했다는 것이다. A 씨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에 따르면 A 씨가 김 변호사를 처음 찾아가 1차 상담을 진행한 시점은 5월 12일이었다. 이어 26일 2차 상담을 하며 구체적인 법률 검토에 나서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가 고소 전 미리 파악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당초 서울시 측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이나 피소 사실을 몰랐다. 박 전 시장 잠적 이후 언론 보도를 보고서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 중심에는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섰다. 임순영 젠더특보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7월 8일 오후 3시쯤 청사 집무실을 급히 찾아가 박 전 시장에게 ‘서울시 외부로부터 시장님 관련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수한 게 있느냐’고 물어봤다”고 말했다. 당시는 A 씨가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전이었다. 임 특보는 “당시는 성추행 관련 구체적인 내용이나 피소 사실 등은 전혀 몰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6시간이 지난 같은 날 오후 9시 이후 박 전 시장과 임 특보, 변호사 출신 비서실 직원, 또 다른 비서실 직원 등은 공관에서 3시간 넘게 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시장이 임 특보 등과 심야회의를 한 것은 피소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에 설득력을 준다. 심야회의가 열린 시간은 A 씨가 고소인 1차 진술조사를 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지난해 1월 전국 최초로 서울시에 만들어진 젠더특보는 여성 관련 이슈를 전문적으로 조언하는 자리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불미’ ‘실수’를 언급한 점을 봤을 때 박 전 시장 문제가 성비위였음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시 외부’가 어딘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임 특보는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인권재단, 희망제작소 등뿐만 아니라, 현재 A 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남인순 의원실 보좌관도 역임했다. 이에 이 단체 관계자가 미리 알려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내부에서 유출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임 특보 역시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나 시·당 관계자냐’는 질문에는 “조사를 통해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임순영 특보는 7월 13일 박 전 시장 장례가 끝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 중이다. 7월 16일 서울시에 사의를 표명했는데, 서울시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대기발령 조치를 했다.
임 특보 외에도 박 전 시장 사망 전 접촉한 서울시 전·현직 정무라인 관계자들은 ‘피소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 서울시 역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한석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이 7월 15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한석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앞서 언급한 심야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요청은 받았지만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한석 전 비서실장은 다음날 오전 9시쯤 가회동 공관을 찾아가 박 전 시장과 1시간 10분 동안 독대했다. 고 전 실장이 공관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박 전 시장은 공관을 나섰고, 오후 1시 39분 박 전 시장과 마지막 전화통화를 한 이도 고 전 실장이다.
고 전 실장은 7월 15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뒤 “경찰에 다 얘기했다”면서도 “9일 오전 박 전 시장을 만날 때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9일 오전 처음 인지했고 그 전까지 해당 내용을 보고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박원순계 의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원순계 의원들은 7월 9일 오전 피소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책회의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했다고 전해진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박원순계 의원들은 박 전 시장 사망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