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7월 1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입장 발표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유력한 당권주자이자 대선 후보인 이낙연 의원(NY)의 대세론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고하다는 게 민주당 내부 관계자들 전언이다. 대권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계파를 떠나 상당수 의원들이 이낙연 캠프에 합류할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이미 공공연히 ‘NY계’를 자처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8월 전당대회, 포스트 문재인 결정 등을 앞두고 ‘어낙(어차피 이낙연)’이란 말은 이제 유행어처럼 자주 들린다.
여기엔 말 못할 사정이 담겨져 있다. 이 의원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고민이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6월 초 사석에서 “확실한 차기 주자가 끝까지 완주를 하면 다행이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 의원이) 무너지면 그땐 어쩔 것이냐”면서 “당내에서 치열하게 경선을 벌이지 않으면 막상 본선에서 어려워질 수 있다. 이 의원과 경쟁할 만한 후보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16일 대법원 선고에 이 지사 측은 물론 여권 전체가 반색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지사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 판결 후 이 지사는 판결 직후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 정의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명 지사의 정치적 운명이 달려 있었던 이번 선고로 여권은 들썩거리는 모양새다. 차기 구도가 이낙연 독주체제에서 ‘이낙연-이재명’ 2강으로 재편될 가능성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하는 차기주자 선호도 결과에 따르면 이낙연 의원 지지율은 올해 4월 40.2%를 기록한 후 34.3%(5월) 30.8%(6월)를 기록했다.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2위 이재명 지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이 지사는 14.4%(4월) 14.2%(5월) 15.6%(6월)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하지만 이 지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법적 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이낙연 의원과의 지지율 차이는 좁혀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대법원 선고가 나온 직후 민주당 의원들에게 ‘차기주자 이재명’의 미래에 대해 물어봤더니 모두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의원에게로 급격하게 쏠렸던 힘의 무게추가 어느 정도 평평해질 것이란 예상이었다. 친문계로 꼽히는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재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왠지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선고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 상대방 공격에 방어할 명분도 확보했다. 지금까지 이 지사 지지율 상승을 막고 있던 리스크가 사라졌으니 이젠 이낙연 의원을 위협할 정도로 오를 것으로 본다. 이번 사건을 비롯해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사가 얼마나 치열하게 검증을 받았나. 매를 일찍 맞은 셈인데, 장기적으로 보면 잘된 일이다. 당내 세력이 약점으로 꼽히지만 지지율만 올라가면 큰 문제가 안 될 것으로 본다. 이낙연 의원에게 사람이 몰렸던 것 역시 지지율 때문 아니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재명 지사가 이낙연 의원과는 달리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을 받는다. 이 지사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그동안 여권 일각에선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의원을 두고 ‘호남 필패론’이 회자돼왔다. 영남권 후보가 출마해야 표 확장성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여기에 이 지사는 인구 1370만 명가량에 달하는 경기도의 수장이다. 19대 대선 때 경기도 유권자 수는 서울보다 200만 명가량 많은 1020만 명가량이었다.
민주당 한 전직 의원은 “영남권 후보에 수도권 단체장,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비슷한 조건 아니냐. 당시 MB는 박근혜 후보에 비해 당내 세력은 약했지만 수도권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지지자들은 열정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근혜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모두 정치적 분수령 때마다 충성심 높은 지지자들이 큰 힘이 됐다. 반면, 이낙연 의원에겐 그런 부분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 지사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지사는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도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무난하게 당대표직에 오를 것으로 보였던 이낙연 의원에 대한 견제 심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반이낙연 세력들이 이 지사를 구심점으로 뭉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이 지사 지지층들이 전략적으로 김부겸 전 의원 지지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대법원 선고 후 이 의원과 김 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환영의 뜻을 밝힌 것을 놓고도 전당대회에서 이 지사 지지층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이 지사가 넘어야 할 관문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정치적 면죄부다. 이 지사는 여권 주류이자 최다 계파인 친문과 껄끄러운 관계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경선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인 이후부터다. 친문 진영에선 여전히 ‘이재명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 지사로선 차기에 도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친문계와의 관계회복이 급선무인 셈이다.
‘포스트 문재인’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문계도 마냥 이 지사를 배제한 채 차기 전략을 짜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이낙연에서 선택지가 넓어졌다”며 이 지사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이낙연 이재명 모두 우리가 원했던 후보는 아니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는 얘기”라면서 “결국 지지율 싸움이 될 것이다. 특정 시점에서 지지율이 높은 후보에게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친문 진영이 이낙연 이재명이 아닌 제3의 후보를 내세울 수도 있다고 보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대선이 가까울수록 친문계가 분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란 데에 무게가 실린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주요 후보 밑으로 이합집산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핵심 친문으로 통하는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낙연 이재명 중 한 명을 택해야 한다면 친문은 쪼개질 수밖에 없다”면서 “친문 중에서도 당권파는 이재명에, 부엉이 모임으로 대변되는 원조 친문들은 이낙연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