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 온
바다 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해상풍력이 최근 전 세계 새로운 신성장 동력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에 숙제처럼 남겨진 온실가스 감축과 급변하는 기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과 원자력을 대체할 새로운 재생에너지원 중 하나로 선진국들이 앞다퉈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8.7GW)로 확대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세우고 그중 12GW를 ‘해상풍력’으로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 시대를 맞아 세계가 주목하는 재생에너지 계의 슈퍼 루키가 바로 해상풍력이다. 쉽게 말해 바닷바람이 돈이 되는 동시에 지구를 지키는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40년까지 세계 해상풍력 산업의 누적투자액은 약 1조 달러. 한화 1155조 원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 관련 산업의 동반성장과 함께 인프라 구축으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등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기대효과가 큰 상황이다.
그러나 해상풍력이 들어서려는 곳마다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외면할 수 없다. 과연 지역 주민들의 우려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법을 찾아갈 수 있을까.
전라북도 부안 격포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나이들이 있다. 서해안 한복판에 배를 세우, 그들이 오르는 곳은 100m 높이의 거대한 해상풍력발전기.
장쾌하게 펼쳐지는 바다 위에 20기의 해상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는 이곳은 국내 최대 해상풍력 단지인 ‘서남해 해상풍력단지’다.
부안 격포항에서 18.5km, 고창 구시포항 앞바다 9.6km 지점에 지어진 서남해 해상풍력단지는 지난 2011년부터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해 올 1월부터 상업용 전기를 생산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전력량은 60MW 규모, 연간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며 지금의 실증단계를 거쳐 시범단계와 확산단계까지 거치게 되면 연간 2.5GW(원전 2.5기에 준하는 전력)를 생산하게 된다. 미래에는 전라남북도 170만 가구가 1년간 쓰고도 남을 전기를 생산하게 되는 것.
생산된 전기가 소실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해상변전소를 갖추는가 하면 인근 어민들의 어업영역이 축소되는 부분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방법으로 360도 열화상 카메라와 IP추적 및 경고방송 시스템까지 도입하는 등 첨단기술들을 집약시켜놓았다.
해상풍력은 육상풍력과 달리 거센 바닷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재생에너지다. 그러나 바다 위에 발전단지를 세우다 보니 서남해 해상풍력단지가 지금까지 투자한 사업비는 약 3662억 원에 이른다.
화석연료의 고갈과 지구 온난화의 해답을 재생에너지에서 찾고 있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 왜 정부와 개발사, 기업들은 해상풍력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가 의지해왔던 에너지원과 비교해 생각해보면 한계가 명확해진다. 화력발전소는 뿜어내는 매연과 미세먼지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원자력 발전소는 핵폐기물의 위험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처럼 양날의 검이라는 한계가 있다.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명확한데 40여 년간 지속해온 ‘육상 재생에너지’는 태양열이나 육상풍력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듯 좁은 땅에서 산을 깎거나 자연을 훼손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전자파나 소음 문제로 민원이 많다는 한계도 있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해상풍력 발전량 1위인 영국은 해상풍력만으로 9.7GW를 생산한다. 원전 10기의 설비용량과 맞먹는 양이다.
남동부 해안의 대표적인 휴양도시 브라이턴 지역은 최근 새로운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 2018년 116기의 풍력발전기를 갖춘 400MW급 램피온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다.
낚시용 배를 운영하던 지역 토박이 폴 씨는 해상풍력 투어를 접목해 수입이 늘어났고 손님들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인식까지 개선되어 돌아간다.
영국 북동부 북해 인근 항구도시 험버에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인 혼시1(Hornsea One)이 있다. 174기의 해상풍력발전기가 1.2GW의 전력을 생산하는 이 지역은 한때 철강, 석탄 산업의 중심지이자 물류 허브로 황금기를 누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덴마크의 국영기업이자 세계적인 해상풍력단지 개발사인 오스테드와 손잡고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역경제는 되살아나고 있다.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해상풍력단지를 세우기 위한 논의의 단계에서부터 ‘주민과 기업, 정부’이 세 주체가 투명하게 소통하고 해법을 모색해 나갔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상풍력단지를 유치함으로써 질 좋은 일자리를 지역 주민에게 제공했고 개발사는 지역 주민과 상생하기 위해 매년 발전량의 일부를 지역단체에 기금으로 환원하고 있다.
바람, 물, 여자가 많다는 제주도. 그 중 제주의 바람에서 부가가치를 찾아낸 지역이 있다. 한경면 두모리와 금등리 앞바다 2.7km에 걸쳐 해상풍력기 10대가 30MW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이곳은 2017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업용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탐라해상풍력단지’다.
이곳이 건설되기 전인 11년 전만 해도 지역 주민들은 반대를 외쳤다. 반대의 이유는 다른 지역의 해상풍력단지에서도 계획 단계부터 부딪히는 문제들이다. 풍력기에서 나오는 전자파와 소음에 대한 우려 어족자원의 감소와 어민들의 어업영역 축소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해상풍력발전단지는 해양생태계와 소음 피해에 영향을 미칠까. 제작진이 직접 제주바다에서 행해지는 주기적인 조사작업에 동행해봤다.
2010~2018년 사이 전 세계 해상풍력발전 시장은 30%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30년까지 매년 1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 해상풍력발전의 생산량은 아직 영국의 1% 수준으로 미미하지만 풍력발전기의 핵심인 풍력터빈과 해저케이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제작진이 찾아간 동해의 해저케이블 회사는 대만으로 수출할 5000억 원 규모의 해저케이블을 선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2017년 군산은 지역 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했던 한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도시 전체가 줄도산을 경험하는 침체기에 들어섰다. 80여 개 조선기자재업체들 중 3년을 버텨낸 중소기업은 불과 20여 개. 이들은 요즘 해상풍력산업에서 재도약의 희망을 찾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미 군산에서 탄소섬유라는 자체 기술로 해상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만들고 있는 공장은 일자리창출을 많이 해 지자체에서 표창을 받았을 정도. 오늘도 해상풍력발전기의 날개를 코팅하고 왁싱하는 일꾼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빛난다.
서남해 해상풍력단지에서는 건설 5년간 1만 7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고 제주 해상풍력단지에서는 연간 238억원 가량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해상풍력에 있어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들은 2040년까지 세계 해상풍력 산업이 만들어갈 1조 달러의 거대한 시장에 당당하게 들어서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던 한반도에서 해상풍력으로 마르지 않는 유전을 캐내는 대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