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신현준이 촉발
원로 배우 이순재 매니저의 폭로를 두고 “이순재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지만 연예계의 갑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사진=SBS 제공
결국 “억울하다”며 기자회견을 여는 것까지 고려했던 이순재가 사과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물론 이순재 부부가 80대 고령으로 일상적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순재가 아닌 그의 아내가 A 씨에게 불필요한 일을 시켰으며, 고용 형태의 문제도 이순재가 아닌 소속사 측에 제기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순재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다. 그렇지만 연예계의 갑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7월 초에는 배우 신현준과 과거 13년 동안 일했다는 매니저 B 씨가 문제를 제기했다. 평소 신현준이 욕설을 하며 업무를 재촉했다는 주장에 이어 10년 전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했다며 고발장까지 접수했다. 신현준 측이 이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신현준은 출연 중이던 KBS 2TV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참여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적잖은 방송 관계자들은 “또 다른 갑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실제로 스타의 갑질에 피해 입은 매니저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내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계속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함구하는 것일 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갑질을 하는 스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한류 스타 C의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부와 명예를 누린 C는 매니저들에게 자주 손찌검을 했다. 하지만 C의 폭행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것에 대해 한 매니지먼트 대표는 “C는 때린 후 현금이나 카드를 주며 마음껏 쇼핑을 하도록 했다. 일종의 위로금”이라며 “폭행 후에는 뒤끝이 없으며, 경제적으로 이를 보상해주기 때문에 C 주변에서는 ‘한번 맞고 시원하게 푸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확실한 맷값을 준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스타 D는 촬영장에 항상 그를 위한 ‘술방’을 만들어 놓길 요구했다. 촬영을 마친 뒤에는 이곳으로 동료 배우를 비롯해 스태프를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가욋돈까지 써가며 D의 술시중을 들었던 셈이다. 게다가 D는 개인적인 활동 때도 소속사 법인카드를 사용했다. D의 매출은 상당히 높지만 소속사와 수익 배분 비율이 D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어 소속사는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한다.
D의 측근은 “D는 평소에는 신사적이지만 술만 마시면 버릇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술을 마신 후 D에게 손찌검을 당했다는 경우도 적잖다”며 “소속사는 D의 개인사에도 일일이 불려 다닐 정도로 곤욕을 치렀지만 D가 구설에 오르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기 때문 다들 쉬쉬하며 D의 비위를 맞추곤 했다”고 전했다.
#왜 갑질을 참아 넘기나
취재 과정에서 몇몇은 “갑질 안 하는 스타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만큼 스타의 갑질이 일상화됐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관행’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스타의 갑질을 많은 이들이 묵인하는 것일까. 일단 그들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톱스타의 경우 요즘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1억 원을 호가하고, 장편 상업 영화의 경우 편당 10억 원에 수익 지분까지 챙긴다.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할 경우 20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다는 의미다. 만약 스타와 소속사가 8:2 계약을 맺었다고 하면, 회사의 몫이 4억 원이다. 이 중 매니저 월급을 포함한 회사 유지비로 1년에 2억 원 정도를 쓴다고 해도 순수익이 2억 원 정도 남는다.
취재 과정에서 몇몇은 “갑질 안 하는 스타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만큼 스타의 갑질이 일상화됐다는 주장이다. 일종의 ‘관행’이라는 의미다. 사진은 톱스타와 매니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톱스타’의 한 장면이다. 사진=영화 ‘톱스타’ 홍보 스틸 컷
익명을 요구한 매니지먼트 대표는 “톱스타를 보유하면 인지도와 매출도 높기 때문에 회사 가치가 크게 상승한다. 요즘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이런 알짜 매니지먼트를 100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인수하는 것도 스타 파워 덕분”이라며 “그러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스타들의 웬만한 갑질은 조용히 감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들과 얽힌 이해 관계자들이 많은 것도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다. 요즘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의 편당 제작비는 100억 원이 넘는다. 자칫 주연 배우가 대형 스캔들에 휩싸이면 출연작을 대중에게 공개조차 못하게 된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사와 제작사,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전가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스타를 보호하려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런 분위기 탓에 갑질을 폭로하는 이들은 업무 경험이 짧은 매니저(이순재 사례)거나, 업계를 떠난 매니저(신현준 사례)인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중견 매니지먼트 대표는 “갑투를 하려면 업계를 떠날 결심을 해야”한다고 토로했다. 갑투를 통해 해당 연예인의 잘잘못을 가릴 수는 있지만, 이를 고백한 이들은 더 이상 연예계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어 “엔터테인먼트 바닥에 비밀은 없다. 언론 보도 때만 신분을 감출 뿐,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지 모두가 안다. 과연 일선 매니지먼트 회사나 스타들이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한 매니저와 일하려 할까”라고 되물으며 “결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계속 일하기 위하려면 스타의 갑질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도 일종의 관행처럼 학습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