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펀은 중고차 매매 관련 투자에 특화된 P2P 업체였다. 사진=넥펀 홈페이지
넥펀은 주로 중고차 매매상사가 중고차를 매입할 때 자금을 빌려주고 판매 수익을 나눠 갖는 데 집중해왔다. 넥펀의 대출 잔액은 251억 원 정도로 P2P 업계 20위권에 해당한다. 한 P2P 업계 전문가는 “넥펀은 업계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아왔다. 연체율도 약 5년 동안 0%였다. 중고차 관련 앱인 카포라 출시도 예고하는 등 전도유망한 업체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좋은 이미지였던 넥펀은 업력이 높은 매매상사 위주로 돈을 내준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넥펀 관련 매매상사에서 일하던 A 씨는 알려진 것과는 다른 얘기를 털어놨다. 넥펀과 매매상사는 대주(돈을 빌려주는 측)와 차주(돈을 빌리는 측) 관계가 아니라 사실상 한 몸으로 움직였다는 얘기다.
A 씨는 “넥펀이 만든 매매상사가 여러 개였다. 초기에는 4개에서 최근 7~8개까지 늘어났다고 알고 있다. 이들 매매상사는 같은 사무장을 썼고, 업체 소속 딜러가 넥펀에 매입 자금을 요청하면 돈을 내주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넥펀이 만든 매매상사가 내건 조건은 신규 딜러나 자본금 없는 딜러에게 더 유리했다. 사무실이나 주차장 운용비용 등 고정비는 최소로 받고 중고차 매입 자금도 100% 융통해줬다. 대신 매입 자금의 이자를 높게 받는 구조였다. 당장 고정비를 낼 돈이 부족한 딜러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고 말했다.
잘나가던 넥펀에 문제가 발생한 건 7월 9일부터다. 7월 9일 넥펀은 갑작스럽게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날 넥펀은 수사를 받고 있어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넥펀 측은 “넥펀의 주주는 더 이상 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영업 중단을 결정했으며, 직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수사 중인 사건이 어떻게 종료될지 알 수 없어 투자자금 반환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넥펀이 신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기존 투자자의 원리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데 쓰는 방식으로 돌려막기를 한 혐의를 포착했다. 넥펀은 왜 투자금 돌려막기까지 하게 된 걸까. 그 배경에 ‘먹튀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일요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넥펀 관련 매매상사에서 일했던 딜러 B 씨는 4월에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는 “4월 넥펀에 난리가 났다. 여러 매매상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곽 아무개 씨가 운영하던 K 업체가 소위 먹튀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산 준중형차가 많은 다른 넥펀 소속 매매상사와 달리 K 업체는 고급 수입차 위주로 매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곽 씨가 4월 초 특정일을 기점으로 갖고 있던 모든 차를 떨이 가격으로 넘긴 뒤 잠적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넥펀이 매매상사를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상사 대표를 딜러로 임명해 놓은 셈이다. 차를 살 때 돈을 내주고 팔 때 입금 받는 구조였는데 대표가 차를 모두 팔고 사라져 버리니 당장 잡을 방법이 없었다. 넥펀과 상사 대표는 단순한 채무관계이기 때문이다”라며 “중고차 업계에서도 이런 구조로 만들어진 곳이 없고 당연히 이렇게 ‘먹튀’할 수 있는 곳도 없다. 특이한 구조다 보니 업계에서도 꽤 큰 화제가 된 사건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넥펀이 손해 본 금액은 추산이 어렵다. 다만 당시 업계에서는 40억 원에서 50억 원 정도를 넥펀 피해액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곽 씨는 해외 출국해 행적이 묘연한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넥펀의 한 해 영업이익은 약 1억 원이었다. 그런데 수십억 원이 한 번에 날아가다 보니 딜러들도 더 이상 신규 차량 매입 금액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걱정해 그만 두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한다. 4월 중순 이원근 넥펀 대표와 경영진이 소속 매매상사 딜러들을 한데 모아놓고 “걱정하지 말라”, “신규 차량 매입 자금은 원활히 지급될 것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넥펀은 최근까지도 ‘먹튀’ 사건을 겪었던 K 매매상사 이름으로 투자를 받아 왔다. 사진=넥펀 홈페이지
넥펀은 이후 몇 가지 조치를 취한다. 신규차량 금액 지원을 100%에서 90% 정도로 낮추고 매입할 때 차량 정보와 판매가 등을 보고 받기로 했다. 하지만 매입금액 100% 지원은 딜러 계약서에 있는 사안인 만큼 조정이 불가능했고 관련 보고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넥펀에서 매입 시 보고 받는 주체는 이원근 대표 동생인 이 아무개 씨가 맡았다.
내부적으로 이런 조치를 취한 넥펀은 외부 투자 유치에 더욱 열을 올렸다. 기존 이율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투자금을 받았다. 또한 넥펀은 문제가 터졌던 K 매매상사 이름으로도 최근까지 투자를 받아 왔다. 돌려막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약 2개월이 지나고 넥펀은 경찰 압수수색으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A 씨는 “4월 곽 씨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넥펀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아니겠나. 혹은 누군가 넥펀과 곽 씨 사이를 의심해 신고했을 수도 있다”며 “압수수색 이후 넥펀 관련 매매상사 사무장 등 직원들이 월급도 못 받고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7월 중순 넥펀 매매상사가 있는 강남구 자동차 매매단지 사무실에 이원근 대표가 상주하면서 사무장 일까지 직접 처리했다는 얘기가 있다. 딜러들은 매입 차량 대출금 이자는 쌓여 가는데 경찰 수사 때문에 차를 팔 수도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넥펀 피해자들은 현재 신세계, 네이버 등 대기업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월 신세계 SSG페이가 제공하는 유료 금융멤버십인 SFC(SSG Finanace Club)에 넥펀이 입점됐고 신세계는 넥펀에 투자하면 상품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네이버도 넥펀 광고를 게시하면서 업체에 투자하면 네이버페이 포인트와 투자 지원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들 플랫폼에 집행한 리워드 비용은 모두 넥펀 측에서 부담했다고 알려졌다.
넥펀 피해자 단체방에서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광고한 상품이라 믿고 투자했는데 사기 업체였다니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신세계나 네이버는 “단순 광고였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이원근 넥펀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압수수색 이후 직원들은 넥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