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노동자 상생협약식. 사진=김창의 기자
[일요신문] 올해 말로 예고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대량해고 사태를 방지하고 갑질과 폭력으로부터 경비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 관련 단체들이 모였다. 7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과 을지로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김태년 원내대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박홍근 위원장, 국토교통부 박선호 제1차관,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정의헌 대표,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진성원 회장,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황장전 회장 등과 함께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과 권익 보호를 위한 상생협약식을 가졌다.
경비업법에 의하면 아파트 경비원은 경비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할 수 없다. 기존에 하는 택배관리, 주차관리, 분리수거 등의 업무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2018년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의 택배관리, 제초, 분리수거 등을 시킨 경비업체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부터 경비업법 위반으로 경비업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 경비업체는 해당 업무도 경비업무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수원지법 행정3부는 “아파트의 택배관리, 제초, 전지작업 보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업무가 아니다”라며 업체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현행법상 경비원에게는 경비업무만 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 판결이 나오자 경찰청은 아파트 위탁관리 회사들에 경비업법 준수 요청 공문을 보내며 단속을 예고했다. 지난 5월 31일이었던 사전 계도 기간을 올해 12월 31일로 한 차례 연장해 사실상 내년부터는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의 업무 지시는 처벌이 불가피하다. 경비노동자들은 이 같은 단속이 경비노동자의 대량해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경비업무 외의 택배, 주차, 분리수거 등은 아파트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대부분의 아파트가 이들을 경비원의 노동력에 의존한다. 극소수의 고가 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경비원들이 이런 업무를 맡는다. 비용 때문이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내년부터 이들 업무를 대신할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한다면 경비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아파트 현실과 맞지 않는 경비업법 제7조 5항에 대한 개정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천준호 의원은 21일 본지에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고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고 최희석 경비원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비노동자 보호에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천 의원은 민주당에서 경비원 문제를 전담하는 책임의원이다.
이날 천 의원과 을지로위원회가 공동주최한 협약식에서는 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10대 실천과제로 △경비노동자의 업무 범위 현실화 △업무 지시 체계 일원화 △부당 업무 지시에 대한 거부 권한 명확화 △폭언·폭행, 신체적·정신적 고통 유발 행위로부터 보호 △공동주택관리준칙 보완으로 갑질 피해 방지 및 고용안정 △근무 형태 개선 위한 모델 연구 및 적용 컨설팅 △휴게시설 등 근무환경 개선 △지역별 전담 신고센터 설립 및 법률 지원 △입주민 교육 및 인식개선 캠페인 추진 △입주자대표회의 권한 강화 및 책임 명확화가 제시됐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목전에 온 경비원 대량 해고를 막기 위한 입법 추진이다.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경비업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공동주택관리법에 특례 조항을 신설해 경비노동자의 근무 현실을 법률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한 입주민 개인이 직접 경비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해 입주민과 경비노동자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의 고객응대 근로자에 한정된 근로자 보호조치를 경비노동자에게 확대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정책 과제로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에 경비노동자 인권침해를 방지 조항과 고용안정 조항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독소조항이 없는 모범단지를 선정해 보조금 등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입주자대표회의 단체가 제안한 무인택배함 설치 지원도 추진한다. 최근 늘어난 택배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별도 휴게시설이 없는 아파트에는 휴게시설을 설치하거나 개보수를 위한 지원도 나선다. 휴게시간임에도 사실상 경비초소에서 머물러야 했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비노동자를 돕기 위한 신고센터도 설립한다.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전담 권리 구제 신고센터를 모델로 신고센터가 없는 지자체에 신고센터를 설립하고 경비노동자에게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것도 정책과제 중 하나다.
천준호 의원은 “갑질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재와 단속도 필요할 수 있지만, 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경비노동자의 고용과 인권을 주민들 스스로 지켜나가는 공동주택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생협약이 끝이 아니다. 10대 실천과제를 비롯해 제도 개선으로 반드시 이어가도록 하겠다. 이번 상생협약이 전국의 공동주택에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