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부터 국내에서 탐정이 등장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도 8월부터 탐정 명칭 합법국 반열에 올라선다. 2월 국회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에서 탐정 명칭 사용금지 조항을 삭제한 이후 유예기간인 6개월이 지난 데 따른 것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탐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지면서 기존 심부름 대행소, 흥신소 등도 탐정사무소로 이름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불법민간조사업체는 4000~5000개, 종사자는 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서울 중구에서 흥신소를 운영하는 장 아무개 씨(48)는 7월 20일 “특별한 제약 조건이 없다면 탐정사무소로 재개업하고 싶다. 실제로 하는 일도 탐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장 씨는 “사람을 찾는 일을 가장 많이 한다. 경찰이 무관심해진 실종 아동 찾기나 이유 없이 연락이 끊긴 가족이나 연인 등을 찾는 사람도 많다. 이 밖에도 민사재판에 쓰일 증거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경찰들도 탐정사무소 개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퇴직한 전직 경찰관 최 아무개 씨(60)는 “정보과에서 주로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는데 퇴직하고 나니 이른바 ‘브로커’ 말고는 할 일이 없더라. 경찰 경력을 살려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환영이다. 이미 경찰 내부에서는 은퇴 후 노후를 준비하겠다며 자격증 취득 준비를 하는 후배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인탐정제도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공인된 탐정이 없다. 탐정을 자처하는 이들 대부분은 ‘PIA’(민간조사)라는 민간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다. 민간조사자는 개인 간 사기 범죄 등 공권력이 크게 투입되지 않는 일에서 경찰의 업무를 보완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문제는 이 업무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민간조사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행위는 불법과 합법의 사이를 넘나든다. 최근 개정된 신용정보법에 따르면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흥신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 가운데 하나가 개인정보 조사인 만큼 이들이 기존 업무를 계속해 나간다면 탐정사무소에서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모임 회원들과 실종자의 부모들이 실종 및 아동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및 민간조사(탐정)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존의 심부름 대행소나 흥신소의 기능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탐정 활동을 허락하고 있는 일부 국가의 사례를 봐도 영화 ‘셜록 홈즈’ 속 홈즈와 같은 업무를 하는 탐정은 많지 않은 까닭이다.
일요신문이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이하라 탐정사무소’에 문의해본 결과, 이들의 주요 업무는 불륜조사, 가출 및 실종자 조사, 결혼 유무 조사, 반려동물 찾기, 도청기 탐색, 전자파 조사, 학교 내 따돌림 문제 해결, 스토커 대책 등으로 국내 흥신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탐정사무소 관계자는 “재판에 필요한 증거물을 찾는 고객도 왕왕 있으며 사례금은 한화 167만 원부터 시작하며 8%의 세금은 별도”라고 밝혔다.
한편 탐정업이 활성화되면 변호사 및 경찰의 업무가 이들에게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싱가포르의 경우 탐정의 업무 범위가 넓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싱가포르에서 탐정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발급한 탐정 면허를 취득해야 하며 이를 위한 훈련 학교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경찰 공식 홈페이지에는 사립 탐정 면허 취득에 대한 정보가 안내되어 있다.
전직 경찰관, 교도소관, 법 집행관 등으로 이뤄진 싱가포르의 한 탐정사무소 관계자는 7월 21일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잠복근무, 필체검증, 기업 회계 검증, 데이터복구(디지털 포렌식) 등의 전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업무는 물론 DNA와 정액 검사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앞둔 의뢰자가 있다면 전직 거짓말탐지기 조사관을 통한 개인 훈련도 가능하다”며 “숙련된 전문가들은 질문의 시점과 모범답안을 알고 있다. 이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명칭 사용만 허가하는 것은 불법 흥신소를 탐정으로 격상시켜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탐정 공인제 도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수 백석대 교수는 “민간조사 관련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그런 불법 활동을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전직 경찰관 최 씨 역시 “탐정사무소 개업도 좋지만 그에 앞서 탐정 업무 범위와 권한을 명확히 정해줘야 한다. 기본법이 부재한 상태에서 탐정 명칭만 쓰게 해주는 것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한데 섞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름 난 전문가들은 그렇게 일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기본적으로는 탐정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장기 미제 사건, 실종 사건 등 경찰 공권력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의 문제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 부분에서 역량 있는 전문가들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다만 과도한 미행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위험 요소는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인탐정법은 2005년 17대 국회에서 정식 발의된 뒤 10여 년 동안 총 7차례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와 발의를 반복하며 표류되어 왔다. 20대 국회에서도 두 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지난 5월 29일자로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아직까지 관련 법안이 제출되지 않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