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통해 ‘국내에서 엄하게 처벌하면 된다’는 사법 주권적 가치를 언급한 부분을 높게 봐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대법원 양형위원회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통한 양형 기준 강화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손 씨가 여죄 부분으로 기소될 경우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손 씨의 남은 범죄 혐의를 알면서도 미국에 송환하기 위해 여죄를 수사하지 않는 검찰과 경찰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법무부는 법원의 판단을 계기로, ‘단심제’인 범죄인 인도 사건 결정을 ‘재심제’로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7월 6일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 거부 판결이 나온 뒤 법조계가 시끄럽다. 법원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되어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는 손정우.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즉각 반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법원에서 거부되자 법무부는 즉각 반발했다. 판결 3일 뒤인 7월 9일 보도자료를 내고 향후 고등법원 결정 불복절차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무부는 “이번 서울고법 결정에 대해 아동음란물 범행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예방이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게 받아들인다”며 절차 보완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단심제로 진행되는 범죄인 인도법 시스템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범죄인인도 심사절차가 단심제로 운영되는 것은 법치국가 원리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 시 범죄인인도법에 불복절차를 도입하는 법안을 ‘21대 국회 중점 추진법안’ 중의 하나로 보고하는 등 개정을 준비해 왔다”고 덧붙였다.
비판이 법원을 향하는 부분을 감안한 결정이기도 했다. 실제 분노한 시민들은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규탄 집회를 갖기도 했다. 모임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등은 7월 7일과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정우의 송환 불허 판결로 사법 정의가 죽었다”고 비판했다. 손 씨의 미국 인도를 불허한 강영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7월 21일 기준 51만 명을 돌파했고, 강 부장판사의 연관검색어에 강 부장판사의 집을 검색하는 키워드가 등장할 정도였다.
#법조계 “무조건 나쁘게 보지 말아야”
이런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도, 법조계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얘기한다. 특히 비판의 대상이, 검찰이나 경찰이어야 하는데 법원이 ‘사법주권’을 지키려는 총대를 멘 것이라는 옹호도 나온다.
먼저 손 씨 사건부터 파악해보자. 손 씨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판매·배포 등)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유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은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 사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3000여 건을 웰컴투비디오 사이트에 올려 회원 4000여 명에게서 4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받고 판매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비트코인’을 받은 부분(자금세탁)에 대해 여죄가 있음에도 수사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손 씨를 송환해 달라. 우리가 처벌하겠다”고 요청했고, 법무부 등은 ‘여죄 수사’ 대신 ‘송환’을 선택했다. 그리고 1년 6월의 형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기서 손 씨 아버지가 ‘꼼수’를 부렸다. 손 씨 여죄 부분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며 ‘아들을 국내에서 처벌해 달라’고 한 것이다.
미국 송환 불허가 결정된 범죄인 인도심사 세 번째 심문을 참관한 뒤 법정을 나오고 있는 손 씨 아버지. 사진=연합뉴스
검찰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는 부분이다. ‘송환’ 업무를 담당했던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손 씨에 대해서는 수년 전부터 미국 측과 소통이 있었고, 애초 국내 수사 자체도 미국 측에서 ‘처벌해 달라’며 자료를 넘겨준 부분을 토대로 이뤄졌던 것”이라며 “자금은닉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려면 할 수 있는데 미국이 손 씨를 넘겨달라고 하자 손을 놓고 아예 수사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경찰과 검찰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판결문을 보고 검찰과 경찰이 손 놓고 있던 ‘사법주권’을 법원이 지켜줘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고법 형사20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판결문의 3분의 1 가까이를 ‘사법주권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또 재판에서도 이런 부분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강영수 부장판사는 “법정형이 더 높은 미국으로 보내 정의를 실현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를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범죄인을 더 엄중히 처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이 범죄인 인도 제도의 취지가 아니”라며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로서 주도적으로 형사 처벌할 것을 부탁했다.
또 “대한민국에서 이뤄질 수사 및 재판 과정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피해 예방을 위한 적절한 입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새로운 형사사법 패러다임이 정립되기를 희망한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의 노력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민 법감정과 괴리 있지만…”
‘국민 법감정’과 괴리가 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손 씨는 한국에서 홈페이지를 운영했다. 미국에서 이뤄진 범죄가 아니라 한국에서 발생한 범죄”라며 “이는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망쳐 온 피의자를 송환하는 사건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급적 우리 국민은 우리 사법 시스템 안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는 설명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 역시 “그동안 아동성범죄에 대한 낮은 양형이 문제였던 것을 손봐야 하는데, 오히려 그걸 손보는 계기로 삼자는 결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을 높이고 있지 않았나.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는 이해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을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에게는 법원이 최대 13년의 징역형까지 선고하는 등 높은 기준의 양형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경찰에서 손 씨의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높아질 양형을 적용하고, 추가적인 여죄를 찾아내면 징역 5~10년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앞선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내 양형이 약하다고 외국에 보내는 걸 쉽게 허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국의 사법적 판단을 우선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홍콩도 사법주권을 지키기 위해 중국의 국가보안법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저항하지 않았나. 이제부터 경찰과 검찰이 손 씨 여죄를 확실하게 수사하고, 법원이 새로운 양형안으로 중형을 선고하는 게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