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사팀 입장에서 이동재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간 공모 의혹에 대해 보도했지만,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 측은 오히려 ‘녹취록 공개’ 카드를 꺼내들며 반박에 나섰다. KBS는 “확정적으로 보도했다”며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한 검사장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KBS 오보의 검찰 취재원을 공개하라”며 KBS에 대한 법적 대응을 계속할 것을 시사했다. 이 돌발별수는 검찰 간 검언유착 의혹까지 촉발시키며 논란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수사팀은 정중동하며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소환조사 및 구속영장 청구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법조계는 한 검사장의 구속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이 전 기자와 달리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고, 공모 관계에 대해서도 입증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등을 역임하면서 법원에 휘두른 ‘칼’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리고 한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윤석열 검찰총장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추론이다.
7월 17일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휴대폰 교체 등 증거 인멸이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할 당시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사진=연합뉴스
#핵심 증거 녹취록에 구속되자 ‘반발’하며 공개
7월 17일 저녁. 법조계 예상과 달리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증거 인멸. 채널A 자체 조사 과정에서 알려졌듯 이 전 기자가 휴대전화 교체 등 증거를 인멸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김 부장판사는 “피의자와 관련자들은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하여 수사를 방해하였고, 향후 계속적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도 높다”고 설명했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나눈 대화 부분도 언급했다. 김 부장판사는 “취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장 발부 때까지만 해도 검찰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KBS 오보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KBS는 ‘유시민-총선 관련 대화가 스모킹건’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이동재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부산에서 만나 나눈 대화를 다루며 “이 전 기자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등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련 취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한 검사장은 돕겠다는 의미의 말과 함께 독려성 언급도 했다”고 보도했다.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는데, 곧바로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한 검사장은 “오보”라며 KBS를 향한 법적 대응을 시사했고, KBS 측이 곧바로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한 검사장은 “취재원이 누구인지 공개하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 전 기자 측도 변호인을 통해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며 KBS와 검찰을 압박하는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동훈 검사장도 대응에 나섰다. 검찰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한 검사장은 검찰 소환조사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적극적으로 대비했다. 한 검사장이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던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실제 이 전 기자 측이 공개한 녹취록은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다. 2월 13일 부산고검 차장검사실에서 이 전 기자와 또 다른 채널A 백 아무개 기자는 한동훈 검사장과 20여 분 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한 검사장은 ‘협조’라고 볼 만한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 전 기자가 신라젠 관련 질문을 하자 한 검사장은 “다중 피해 사건이라 빨리 수사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특히 유시민 이사장 강연료 의혹을 언급하는 이 전 기자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관심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편지를 썼다는 이 전 기자의 말에는 “그건 해볼 만하다. 그러다 한 건 걸리면 된다”고 답한 게 해석의 여지가 있는 거의 유일한 발언이었다.
핵심 증거 중 일부의 전문이 언론에 공개되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도 급히 해명에 나섰다. “해당 일자 녹취록 전문은 맞지만, 일부 축약되거나 취재 계획에 동조하는 취지의 언급이 누락됐다”며 증거에 대한 평가가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입장을 냈다. 아울러 “범죄 혐의 유무는 특정 녹취록이 아니라 지금까지 확보됐거나 앞으로 수집될 다양한 자료로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구속영장 가늠질 하는 수사팀, 맞서는 한동훈
수사팀은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제1부는 7월 21일 한 검사장을 소환했다. 소환조사에서 해당 일자 녹취록 등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환조사까지 마친 검찰은 곧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적국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정보에 밝은 법조인은 “수사팀 일선보다 부장검사 이상급 간부들이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영장의 필요성을 자꾸 지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선택했을 때부터 영장을 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검사장도 대응에 나섰다. 검찰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한 검사장은 검찰 소환조사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적극적으로 대비했다.
하지만 이 전 기자가 구속됐을 때와 달리, 수사팀도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으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특히 검찰이 핵심 증거라고 내밀었던 녹취록 전문이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게 공공연히 알려지자 한 검사장에 대한 영장을 강행했다가 기각될 경우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윤석열 총장을 겨냥해 핵심 측근인 한 검사장을 강도 높게 수사 중이라는 것을 검찰 내부 구성원들 모두가 알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기각될 경우 수사팀이 ‘내부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동훈 검사장이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윤석열 총장과 함께 점심 식사를 위해 대검찰청 별관으로 향하는 모습. 왼쪽 세 번째가 한 검사장이다. 사진=박정훈 기자
물론 모두 유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대표 측에 ‘한 검사장’이라며 들려준 녹취 파일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는 한, 한 검사장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는 게 한계라는 얘기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남은 수사를 통해 공모 관계가 얼마나 드러나느냐에 따라 수사의 성패도 갈릴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대표 측에게 들려준 녹취 파일 속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검사장이 아니라는 게 입증이 되어야 끝이 나는 사건”이라며 “둘 다 진술로만 ‘아니’라고 해도 실체는 입증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 검사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수사하면서 150여 명의 판사들을 피의자나 참고인으로 소환해 망신을 줬던 것이 자신에게 독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요즘 법원에서 ‘한 검사장에게 우리가 당한 것을 똑같이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판단은 영장전담재판부의 몫이겠지만, 법원 내에서 과도한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이 많고 그 분노가 한동훈 검사장에게 향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사안을 한 발자국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다. 관련 보고를 받지 않고 있는 윤 총장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결국 수사심의위를 거쳐 한 검사장 영장 발부 여부가 나온 뒤에야 윤 총장이 어떤 발언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