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 그린벨트를 건드리지 않겠다”며 해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진=청와대 제공
그린벨트엔 손을 대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여야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격론이 벌어졌다.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쏟아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그린벨트 해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고 했고,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그린벨트 훼손을 통한 공급 확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친환경 노선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까지 검토하게 된 것은 최근의 부동산 시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월 21일 1993년부터 28년간 서울 강남3구, 강동 소재 18개 아파트 대단지, 비강남 소재 16개 아파트 대단지 등 8만 가구 시세 변화를 분석한 자료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주요 아파트 가격은 82㎡(25평) 기준 8억 4200만 원에서 12억 9200만 원으로 평균 4억 9500만 원(약 53%) 증가했다. 역대 정권 중 가장 큰 상승폭이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장면은 아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택지 공급 부지를 마련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다. 수도권 주택 수요 과다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주택을 지을 부지가 필요하다. 정부 입장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재건축·재개발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택지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느 정부든 간에 주택 수요 과다로 부동산 시장이 이상 과열되는 상황이 오면, 그린벨트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린벨트라 불리는 개발제한구역 표지석. 사진=연합뉴스
개발제한구역, 이른바 그린벨트 제도가 도입된 건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로 도시가 팽창하자 녹지 면적을 보호하려 그린벨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영국의 그린벨트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서울 종로-세종로 사거리 반경 15km 라인을 따라 폭 2~10km 구간이 영구 녹지지대로 지정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도넛 모양의 그린벨트를 조성했다. 그린벨트 역사의 시발점이다. 이듬해인 1972년엔 수도권 그린벨트가 두 배로 확대됐다. 더불어 그린벨트 제도는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1980년대 후반 그린벨트 개발 규제 완화 기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부가 그린벨트 ‘무조건 고수’ 방안을 ‘제한적 활용’ 노선으로 돌리면서부터다. 노태우 정부는 공공 체육공원시설 확충, 1기 신도시 정책 등 주요 사업을 진행하려 그린벨트 지역 개발에 돌입했다. 이 당시 서울 태릉, 상계동, 경기도 과천, 미사리 등 수도권 주요 그린벨트 지역에 체육공공시설이 들어서게 됐다. 노태우 정부가 내놓은 일산, 분당,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 개발 계획은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전제로 했다. 다만 노태우-김영삼 정부 땐 그린벨트 개발 규제 완화 정책이 주를 이뤘을 뿐 직접적인 해제가 이뤄지진 않았다.
그린벨트 해제는 김대중(DJ) 정부 들어 봇물 터지듯 했다. 김대중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인 782㎢ 부지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최대 규모 그린벨트 해제 이면엔 IMF 외환위기라는 국난이 있었다. 대규모 부지에 대한 그린벨트 해제 목적은 외국인 투자와 서민주거안정에 있었다. 금융 위기 극복 활로를 도시 개발을 통해 마련하려던 조치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7월 그린벨트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은 뒤 12월 시화산업단지 부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며 녹지 개발 포문을 열었다.
김대중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에 있어 가장 탄력적인 성향을 보인 정부였다. 먼저 그린벨트 해제와 별개로, 그린벨트 내 근린시설 신축을 허용했다. 그린벨트 지역을 무조건 보존하는 것이 아닌 일부 활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었다. 춘천, 청주, 제주 등 7개 중소도시권역 그린벨트는 전면 해제됐다. 수도권과 부산·대구를 비롯한 7개 대도시 권역 그린벨트 또한 부분 해제됐다.
과감하게 그린벨트를 해제했던 김대중 정부 기조는 노무현 정부로 계승됐다. 노무현 정부가 푼 그린벨트 부지 면적은 654㎢ 규모다. 노무현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의 중심축을 수도권으로 옮겼다. 집값 폭등을 막으려는 일환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서울 송파구와 경기 성남시 일대 부지의 개발제한 딱지를 뗐다. ‘집값 잡기’ 명분으로 수도권 노른자위에 신규 택지 공급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히려 집값은 더 상승했다.
‘최후의 보루’인 그린벨트 부지를 활용하면서까지 실행한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셈이었다. 이는 임기 말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7월 21일 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은 9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이명박(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선 그린벨트 해제 규모가 대폭 줄었다. 이명박 정부가 해제한 그린벨트 부지 규모는 88㎢ 정도다. 서울 강남·강동권 약 5㎢ 규모의 그린벨트 해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 땐 32.8㎢ 규모 부지에 대한 그린벨트 해제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는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민간 기업형 주택, 이른바 ‘뉴스테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3개 지역 약 1.36㎢ 면적 부지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서울 문래, 경기 과천주암, 의왕초평 등이다.
박근혜 정부가 직접 손을 댄 그린벨트 부지 규모는 다른 정부에 비해 적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는 30만㎡ 이하 중·소형 그린벨트 부지는 각 지자체장이 해제할 수 있도록 위임하는 규제 완화 조치를 도입했다.
현 정부에서도 그린벨트 지역에 신도시를 개발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3기 신도시 5개 지역(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부천 대장, 고양 창릉) 택지 개발 예정 지역은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부지다. 복수 부동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3기 신도시가 예정대로 개발될 경우 문재인 정부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면적은 30㎢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향후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상승세를 이어갈 경우 정부가 추가로 그린벨트 지역에 택지를 공급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전망했다. 1977년까지 전국 각지에 걸쳐 5397㎢ 규모로 조성된 그린벨트 면적은 2020년 7월 기준 3837㎢다. 김대중 정부 이후 23년간 해제된 그린벨트 면적은 1560㎢ 규모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