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을 의미하는 레트로 열풍의 중심에는 유재석과 이효리·비로 이뤄진 3인조 혼성그룹 싹쓰리가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가 여름 시즌을 겨냥해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탄생한 이들은 복고주의를 표방하면서 1990년대 혼성 댄스 스타일을 추구해 인기를 얻고 있다.
멤버 3인 모두 각 분야 톱스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인 만큼 그룹 결성부터 활동까지 연일 화제다. 뜨거운 인기에 동참하려는 움직임도 벌어진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그룹이 1990년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를 내놓는가 하면, 인지도를 높이는 방편으로 레트로 열풍을 적극 활용하는 아이돌 그룹도 있다.
멤버 이효리가 가사를 쓰고, 남편인 이상순이 작곡한 싹쓰리의 노래 ‘다시 여기 바닷가’는 7월 18일 출시하자마자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싹’ 쓸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싹쓰리→코요태 ‘90년대 리턴’
싹쓰리가 예상대로 여름 음원시장 강자로 우뚝 섰다. 매주 토요일 저녁 방송하는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그룹 결성부터 노래 선정,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낱낱이 소개하면서 쌓은 팬덤의 힘이다. 싹쓰리가 다시 부른 듀스의 노래 ‘여름 안에서’는 7월 11일 음원 출시 이후 꾸준히 멜론 등 온라인 음원 차트 톱5를 유지하고 있다. 멤버 이효리가 가사를 쓰고, 남편인 이상순이 작곡한 싹쓰리의 또 다른 노래 ‘다시 여기 바닷가’도 18일 출시하자마자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싹’ 쓸었다.
이런 분위기에 탑승하려는 그룹들도 이어진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팀은 신지와 김종민, 빽가로 이뤄진 혼성 3인조 코요태다. 이들은 UP가 1997년 발표한 히트곡 ‘바다’를 리메이크해 19일 내놓았다. UP의 원곡은 발표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 휴가철 단골 리스트로 꼽힐 만큼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코요태는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멤버 빽가가 랩 부분도 다시 써 2020년 버전으로 완성했다.
코요태 역시 1990년대 혼성 댄스그룹을 대표하는 팀이다. 1998년 그룹을 결성하고 올해로 활동한 지 23년째에 접어든 ‘최장수 혼성그룹’이다. 한동안 활동이 주춤했지만 최근 레트로 열풍으로 1990년대 댄스음악이 다시 각광받자, 동시기 활동한 다른 그룹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하는 시도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90년대생’ 가수들의 선택도 ‘1990년대 음악’
1990년대 대중음악은 비단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만 공유하는 추억의 산물이 아니다. 최근 가요계에 데뷔한 신인그룹이 1990년대 히트곡을 리메이크하거나, 아예 레트로 콘셉트의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독창적인 개성을 드러내 주목받기도 한다.
9인조 걸그룹 시크한아이들은 그룹 룰라가 1996년 부른 노래 ‘3!4!’를 리메이크해 20일 발표했다. 데뷔곡으로 1990년대 댄스곡을 선택한 배경을 두고 “친근한 음악으로 대중에 각인되려는 시도”라는 가요계의 해석이 나온다. 데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그룹 멋진녀석들도 8일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리메이크한 음원을 발표했다. 역시 유명한 노래를 다시 불러 팀의 존재를 알리려는 의도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1990년대 히트한 댄스곡은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멜로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경쾌한 가사가 공통점이다. 특히 여름 분위기와도 어울린다”며 “싹쓰리가 만든 레트로 열기가 워낙 막강한 데다, 댄스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여름이라는 계절적인 요인까지 보태져 1990년대 음악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고 밝혔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레트로 열풍에 합류한 ‘90년대생’ 가수들도 있다. 치즈, 스텔라장, 러비, 박문치 등 4명의 인디 여성 뮤지션으로 이뤄진 그룹 치스비치다. 태어나기도 전 유행한 그룹 등을 따라하면서 ‘90년대 걸그룹’을 표방한다.
치즈, 스텔라장, 러비, 박문치 등 4명의 인디 여성 뮤지션으로 이뤄진 그룹 치스비치는 태어나기도 전 유행한 그룹 등을 따라하면서 ‘90년대 걸그룹’을 표방한다. 사진=치스비치 인스타그램
홍대 등 인디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이들은 전부 1990년 이후 태어났지만 추구하는 음악부터 패션 등 비주얼, 뮤직비디오는 20여 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다. 14일 발표한 신곡 ‘무자비’에서도 비슷한 매력을 이어간다. 특히 그룹의 멤버 중 막내인 1996년생 박문치는 싹쓰리가 한창 기획되던 무렵 ‘놀면 뭐하니?’에 작곡가로 동참해 탁월한 실력으로 선배 이효리와 비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덩달아 1990년대 활약한 음악 프로듀서들도 반사이익을 누린다. 가수 이상민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음악 작업보다 예능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지만 1990년대 댄스그룹 열풍을 이끈 제작자이자 프로듀서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이상민은 리더로 참여한 룰라를 비롯해 2인조 컨츄리꼬꼬, 여성 힙합그룹 디바 등을 제작해 댄스음악 열풍을 이끌었다. ‘놀면 뭐하니?’ 제작진이 혼성그룹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가 자문을 구한 인물도 다름 아닌 이상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요계는 물론 방송 제작진들까지도 1990년대 댄스음악 열풍에 기대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KBS는 1981년부터 1998년까지 매주 방송한 대표 음악프로그램 ‘가요톱10’을 재해석해 과거 대중가요를 다시 찾아 즐기는 콘셉트의 프로그램 ‘전국톱10’을 9월 새롭게 선보인다. 레트로 열풍을 넘어 1020세대가 즐기는 복고문화인 ‘뉴트로’까지 아우르겠다는 전략이다. 대중의 열띤 반응을 적극 반영한 기획이지만 한쪽에서는 “가요계를 넘어 방송가까지 비슷한 콘셉트의 음악과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