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최근 정치권 인사를 잇달아 영입하는 배경으로 플랫폼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 사진=박정훈 기자
쿠팡은 최근 추경민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대관 역할을 할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추 부사장은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서울시에서 정무보좌관·기획보좌관을 거쳐 정무수석으로 승진했고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캠프에도 합류한 바 있다. 이밖에도 쿠팡은 지난 4·15 총선 직후 미래통합당의 추경호 의원 보좌관과 김종선 의원 보좌관 등 보좌관 5명을 영입하고 최근 일간지 법조 담당 출신 기자를 홍보팀에 채용하는 등 대관·홍보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쿠팡의 행보는 정부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내년 상반기 제정을 목표로 배달의민족(배민)·쿠팡·네이버 등 온라인 플랫폼 업체를 규제하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 온라인쇼핑몰의 납품업체 대상 과다 수수료 책정, 판매가격 간섭, 판촉비용 전가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심사 지침을 마련하고 적발·제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나섰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통신판매중개업자 중 매출액 1000억 원 이상인 업체를 대규모 유통업자에 포함하는 내용의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송갑석 의원도 지난 13일 과다한 수수료와 광고비를 요구하거나 판매업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온라인플랫폼 통신판매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쿠팡이 정치·언론계 인사를 끌어 모으는 이유는 각종 ‘갑질’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정치권과 타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은 그간 여러 이유로 공정위 신고 목록에 올랐다. 지난해 크린랲·LG생활건강·위메프·배민이 대규모 유통업법,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쿠팡을 공정위에 신고했고,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도 ‘짝퉁 시계’를 판매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일부 소상공인들이 쿠팡을 상대로 불공정 약관조항에 대해 공정위에 약관 심사를 청구했고 집단소송도 준비 중이다.
사건을 의뢰받은 김용범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아이템위너 정책을 통해 최저가 제품을 대표 상품으로 노출함으로써 같은 제품을 파는 업체들간 가격경쟁을 유도했다”며 “특히 직구업체(병행수입업체)들도 공식수입업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직구업체가 최대 매출처가 되는 등 불합리한 상황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아이템위너는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 중 하나를 대표로 선정해 검색 최상단에 올리고 해당 업체는 물론 다른 업체 상품에 달린 댓글·상품평 등을 공유토록 하는 쿠팡의 검색노출 시스템이다.
김 변호사는 “쿠팡은 불공정 약관을 근거로 납품업자가 제공한 상표·텍스트·이미지 등 모든 콘텐츠 저작권을 쿠팡에 양도할 것을 요구하며 저작권을 강탈했고, 쿠팡과 납품업체 간 상품공급계약으로 인한 모든 손해를 소상공인에게 전가시켰다”며 “현재 17개 피해업체가 원고로 참여해 있지만 더 많은 피해업체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에 1차 소송 이후에도 참여업체를 더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킴스는 8월 중 약관규제법 및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법 위반 혐의로 쿠팡에 집단소송을 제기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맨(배송직원)과 라이더들의 처우 및 고용 이슈, 코로나19 당시 허술한 방역 체계 등 쿠팡과 관련해 이슈가 너무 많다”며 “최근 인사 영입은 10월 국감을 대비해 정치권 인사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이 작년 적자 규모를 줄인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수익성을 높인 것도 있겠지만 입점업체를 상대로 납품단가를 더 저렴하게 조정했기 때문이란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쿠팡이 대관업무를 강화하는 이유로 정부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회원들이 2019년 3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70% 비정규직 쿠팡맨의 정규직화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일요신문DB
물류사업 확대 차원에서도 정치권과 소통은 필수다. 쿠팡은 자사 상품만 로켓배송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입점업체 상품도 배송해주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자사 오픈마켓을 이용하는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상품 보관과 로켓배송, 고객 응대까지 대신 해주는 ‘로켓제휴’ 서비스를 최근 출시한 것이 그 예다. 그간 입점업체들은 쿠팡의 온라인 판매 채널만 이용할 수 있었다.
업계에선 쿠팡이 앞으로 로켓제휴 서비스를 확대하는 동시에 전기·수소차를 활용해 택배업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3자 물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경유화물차량이 배번호판(택배용 노란 번호판)을 받으려면 시설·장비·영업점 등 일정 기준 이상을 갖춰야 하는데, 전기화물차(파란 번호판)는 별도 택배용 번호판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시설 기준 등을 충족하지 않아도 된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노란 번호판을 발급받으려면 대리점 개설 등 인프라를 갖춰야 하고 규제도 까다로운 반면 전기차는 발급 기준이 약하다”며 “로켓배송 구조 내에서 차를 늘리려다 보니 전기차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쿠팡은 친환경차 확대에 힘쓰는 대구에서 지난해부터 전기트럭을 투입해 시범용으로 로켓배송을 하고 있다.
문제는 로켓제휴다. 쿠팡은 현재 유상운송을 위한 영업용 노란 번호판이 아닌 일반 번호판을 단 화물차로 로켓배송을 한다. 택배업체들이 2015년 영업신고 및 택배면허 없이 배송한다며 쿠팡을 고소했으나 당시 법원은 쿠팡이 직매입한 자사 물건을 배송해주는 건 유상운송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쿠팡 손을 들어줬다. 로켓배송에 대해 자사 물건을 고객에게 해주면 합법, 타사에서 배송료를 받고 해주면 불법이 되는 셈이다.
쿠팡은 입점업체들 제품을 직매입해 창고에 쌓아두고, 배송비는 별도로 받지 않는 대신 수수료를 더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로켓제휴를 서비스한다. 택배면허는 없지만 직매입하는 구조를 통해 법망에서 벗어나 사실상 택배업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쿠팡은 2018년 물류 자회사 쿠팡 로지스틱스로 택배업면허를 획득했으나 로켓배송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1년 만에 반납했다. 친환경차든 로켓제휴든 현재 방식으로 3자 물류사업에 나설 경우 편법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정부의 규제와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언론계 인사들을 영입해 미리 손을 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커머스업계 다른 관계자는 “쿠팡이 수익성을 높여 적자를 줄이려면 친환경차를 도입해 자사 물류만 하는 게 아니라 경쟁사들이나 소비자 물건까지 배송할 수 있는 형식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로켓제휴 서비스 등 정책적 부분에서 쿠팡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쿠팡은 “인재 영입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 충원 차원”이라며 “로켓제휴도 영세 상인들이 하기 어려운 물품 보관과 배송, 고객 응대를 대신 해주는 데 따라 수수료율을 높인 것일 뿐 배송비 차원이 아니기에 택배업이라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입점업체들의 불공정 약관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해당 상품에 대한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제공하는 판매 방식으로, 소비자에겐 상품 거래 조건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상품 이미지 제공이 어려운 영세한 셀러들에겐 누구나 참여해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오킴스의 주장은 병행수입(직구) 상품에 대한 원활한 판매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