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에 ‘펀슈머’ 마케팅이 화제다. ‘MZ세대’ 성향에 맞춘 이색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CU편의점과 대한제분이 손잡고 출시한 ‘곰표 밀맥주’. 사진=BGF리테일 제공
올해 상반기 가장 큰 인기를 끈 맥주 가운데 하나는 편의점 CU가 대한제분과 손잡고 지난 5월 말 출시한 ‘곰표 밀맥주’다. 곰표 밀가루의 백곰 마스코트를 캔에 그려 넣어 복고 느낌을 살린 이 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 10만 개를 완판, 전체 국산 맥주 판매량 10위권에 진입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년 전 출시된 ‘곰표 팝콘’이 함께 인기를 끌며 맥주 매출이 출시 전주 대비 40.7% 상승했다.
곰표 맥주 출시 이후 대한제분의 주가도 상승했다. 지난 6월 8일 13만 4000원대던 주가가 이튿날인 9일 곰표 맥주의 완판 소식이 알려진 직후 17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합작은 단순히 식음료품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협업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분야와도 적극적인 ‘합체’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겨냥한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이른바 ‘푸드 패션’이 눈에 띈다.
농심 너구리는 의류브랜드 TBJ와 협업해 ‘집콕셋뚜’를 내놓았다. 컬래버레이션 제품(1종)과 너구리 안마봉, 텀블러, 너구리라면 등 5만 원 상당의 상품들로 구성됐다. 이 외에 너구리 그림이 그려진 후드티셔츠는 판매 2분 만에 전량 소진, 포켓티셔츠와 볼캡도 빠른 속도로 판매됐다.
오비맥주도 청바지로 유명한 브랜드 게스와 손을 잡았다. 지난 7월 14일 오비맥주의 캐릭터 ‘랄라베어’를 사용한 게스의 티셔츠 4종, 모자 1종이 출시됐다. 랄라베어는 오비맥주가 두산그룹 자회사로 호프집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던 1980년 만들어져 올해로 딱 마흔 살이 됐다. 2030세대보다 나이가 많은 이 캐릭터가 식음료업체의 펀슈머 마케팅과 뉴트로(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말) 감성에 어울리면서 중년 세대엔 향수를, 젊은 세대에는 SNS용 ‘인싸템(외향적인 사람을 뜻하는 인사이더와 아이템을 합친 말)’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자사 제품을 바탕으로 아예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사례도 눈에 띈다. 2D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를 대표 캐릭터로 내세운 독특한 SNS 마케팅으로 1020의 젊은 세대, 특히 덕후(오타쿠)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빙그레의 경우다.
빙그레가 ‘꽃게랑’의 ‘부캐(부캐릭터)’인 ‘꼬뜨-게랑’으로 소비자와 소통에 나섰다. 사진=빙그레 제공
빙그레는 제품을 의인화한 캐릭터를 모아 ‘빙그레 나라’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젊은 세대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현재 빙그레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는 약 14만 1000명으로 식품업계 공식 SNS 1위다. 젊은 세대의 인기를 등에 업은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캐릭터를 활용한 신제품과 굿즈 출시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의 독특한 마케팅과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노린 제품으로는 최근 출시된 농심 켈로그의 ‘첵스 파맛’도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시리얼에서 파맛이 나는 첵스 파맛은 2004년 어린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진행됐던 농심 켈로그의 ‘첵스 초코 대통령 선거 이벤트’에서 짓궂은 어른들이 참가하면서 탄생한 괴작이다. ‘초코 맛을 더 진하게 만들겠다’는 체키와 ‘첵스 초코 안에 파를 넣어주겠다’는 차카 두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어른들이 장난삼아 차카에 몰표를 던진 것이다.
둘 중 우승 후보의 제품을 실제로 출시하겠다고 밝혔던 농심 켈로그는 결국 어른들의 표 대다수를 취소하고 체키의 당선 소식을 알렸으나 네티즌들은 이 해프닝을 두고 ‘부정선거’를 상징하는 밈(meme, SNS에서 특정 콘텐츠를 다양한 모습으로 패러디하며 즐기는 현상)으로 소비해 왔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약 16년간 꾸준히 소비돼 온 결과 농심 켈로그 측이 이 같은 관심을 받아들여 결국 지난 6월 말 첵스 파맛을 한정판으로 출시한 것이다. 가수 태진아가 ‘미안 미안해. 너무 늦게 파맛 출시해서 미안해’라며 노래를 열창하는 유튜브 홍보 영상은 조회 수 200만 회를 앞두고 있다.
식음료품의 경우 1970~1980년대 선보인 제품들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MZ세대라는 새로운 소비층이 몰려오며 젊은 층을 공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두려운 것은 소비자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라며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홍보와 마케팅뿐인데, 신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젊은 마케팅을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같은 이색 마케팅은 MZ세대라는 새로운 소비층을 겨냥해 기성세대와 다른 그들의 독특한 니즈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빙그레는 빙그레 제품을 활용해 만화 캐릭터를 제작했다. 빙그레나라의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사진=빙그레 인스타그램 캡처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최근의 마케팅 트렌드에 대해 MZ세대만의 예측하기 어려운 소비 성향을 그 배경으로 짚었다. 최 위원은 “MZ세대는 어지간한 마케팅에는 주목하지 않는 세대여서 식품업계가 변화하지 않으면 눈길을 끌기 어렵다. 재미를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 ‘괴식’과 같이 이상하고 파괴적인 상상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마케팅이 곧바로 매출 신장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식품업체도 이런 (독특한) 상품으로 매출을 견인한다는 의도보다 새로운 소비자들인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맞춤형 마케팅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