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촬영한 청주시 운천 주공아파트 전경. 남윤모 기자
[청주=일요신문] 지난해 재건축 정비구역 해제와 재건축 추진 문제로 찬반 갈등이 불거져 온 충북 청주시 운천동 주공아파트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은 지난 2018년 10월 29일 청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재건축 반대 추진위원회가 시공사 선정에 대해 법률적 요건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공사 선정을 보류해 달라는 반대 기자회견을 열며 시작됐다.
이에 대해 조합장인 백승호씨가 시공회사 선정과 범죄예방 업체 선정에 대한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반대 추진위 측과 갈등이 심화됐다. 당시 반대 추진위는 조합장에 대한 법적인 조치까지 암시했다.
이후 반대 추진위 측은 시청 정문에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으며, 같은 해 12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 1071명 중 25%인 290명의 사인을 받아 청주시에 해제 동의서를 접수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과 반대하는 추진위 측이 팽팽하게 맞서 찬반 투표까지 진행한 끝에 반대 의견이 25%를 넘자 청주시 도시계획 심의위원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정비구역 해제로 통과됐다.
그러나 재건축이 무산된 뒤 조합 측에서 재건축 반대 의사를 철회하는 조합원들이 있어 현재 정비구역 해제와 존치를 놓고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재건축을 추진하던 조합원들은 현 조합장을 다시 추대해 시공회사로 선정된 두산건설 측과 진행을 하고 있다.
이같은 방식의 기자회견을 포함한 찬반 양측의 갈등이 정비구역 해제가 결정된 지난해 9월까지 이어지면서 정작 주민들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아파트 보수 및 정비는 등한시했다는 목소리도 불거져 나온다.
청주 운천동 주공아파트는 전국적인 아파트 건립 열풍이 불던 1986년 11월 준공된 아파트로, 청주지역에서도 34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다. 33개동 5층 아파트 1200세대와 상가건물 1동 27세대 등 총 1227세대로, 재건축 시도는 10년 전인 2016년부터 진행되면서 지난해 재건축 찬반 논란이 정점에 올랐다.
절차 및 소소한 법 위반, 또는 시공사 선정을 둘러싸고 법리에 대한 양측의 논쟁 및 법리에 따른 송사로 인해 청주시청 정문과 기자회견장이 공론의 장으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휘말린 청주시, 건설 및 건축 관계자, 언론인들도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함몰돼 건축 반대와 재건축 추진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아파트 안전문제는 뒷전으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2016년 6월 21일 첫 발걸음을 내디딘 운천 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2018년 12월 24일 사업시행인가가 떨어지면서 재건축에 대한 사업 기득권 다툼이 벌어져 같은 해 말부터 재건축 찬반 양론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결국 이듬해 9월 11일 열린 청주시 도시계획 심의위원회에서 우암동 재건축과 운천 주공아파트 재건축 정비구역 해제 등 동시 안건으로 올라온 2건이 모두 최종 심의에서 부결돼 운천 주공아파트 재건축은 요원해졌다. 이에 재건축 조합은 청주시를 상대로 ‘정비구역해제 집행정지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 1월 9일 1차 심리에 이어 다음달 13일 2차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운천 주공아파트는 안전 문제 D등급(건물철거)을 받아 위험군으로 지목됐음에도 이와는 무관한 법리 및 절차 문제에 대한 논쟁만이 진행됐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일부 고령세대 입주자들의 반대 입장을 극대화시켜 재건축 정비구역 해제가 됐지만, 정작 아파트 건물의 안전에 대한 계획은 현재까지 전무한 상태다.
앞서 재건축 정비조합은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운천 주공아파트는 1986년 11월 준공돼 현재 34년이 경과된 건물로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실제 청주시 관리 아래 진행된 지난 2015년 안전진단에서 이 아파트 101동, 117동, 122동, 124동, 125동, 127동 등 6개동 180세대를 진단했다. 당시 국토교통부의 안전진단기준, 한국시설안전공단의 안전진단기준 매뉴얼에 따라 9월 23일부터 11월 17일까지 약 3달간에 걸쳐 주거환경, 건축마감 및 설바노후도, 구조안전성, 비용 분석 등 4개 분야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이 진행됐다.
평가 결과 주거환경 평가에서 성능점수 51.16점을 받아 재건축에 해당하는 D등급으로 판정됐다. 건축마감 및 설비노후도에서도 성능점수 31.56점을 받아 D등급, 구조안전성은 성능점수 74점을 받아 C등급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운천 주공아파트는 안전진단 종합평가에서 54.76점을 받아 D등급으로 판정, 조건부 재건축이 허가됐다.
실제 56점 이상은 A~C등급으로 유지보수, 31~55점은 D등급으로 조건부 재건축, 30점 이하면 E등급으로 재건축으로 분류된다. 조건부 재건축은 공동주택의 노후, 불량건축물에 해당해 재건축이 가능하나 붕괴. 도괴의 우려 등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서 시장·군수가 주택시장. 지역여건 등을 고려해 재건축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안전진단 이후 운천 주공아파트 정비는 5년간 중단돼 있는 상태로, 본지가 확인 한 결과 진단 전보다 더 심각한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국토부는 2018년 3월 5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제 12조 5항에 따라 재건축사업과 안전진단의 실시방법등을 규정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객관적인 검토를 통해 재건축 여부를 판정하고.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지진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안전 평가비중을 강화해 국민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이유다.
법 개정에 따라 주거환경은 가중치 40%에서 15%로, 건축마감 및 설비노후 도는 30%에서 25%로 대신 구조안전성은 20%에서 50%로 대폭 강화했다. 지진에 대응하기 위한 건물의 구조 안전성을 대폭 강화해 건물로 인한 주민들의 안전성을 크게 강조했다.
한편 재건축 정비조합이 안전검사 결과를 토대로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면, 안전검사에서 117동 등 5개동 건물에서 내력비 1.0 이하로 내진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정됐으며 일부 아파트 5층 옥상과 벽에서 진행되고 있는 콘크리트 중성화(탄산화)가 시작되고 있어 철근이 부식되고 팽창압이 발생된다고 진단했다.
이 팽창압이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서면 균열이 발생되고, 균열부로 물과 이산화탄소가 침투해 건물의 열화(노후)가 급격하게 진행돼 건물의 위험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 아파트의 외부벽체 및 슬래브의 경우 도장 박리, 빅락, 누수, 부분적인 파손 등의 결함이 안전검사에서 확인됐다는 것이다.
손으로 긁어 모은 산화된 옥상 콘크리트. 남윤모 기자
특히 옥상의 방수용 몰탈은 33개동 모두 깨져 있었으며 시멘트 노화가 진행된 그 틈새로 풀들이 뿌리깊게 박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상태로, 옥상의 콘크리트 중성화(탄산화)는 방수층이 이미 파괴돼 아파트 곳곳에서 누수가 많아 이로 인한 누전까지 발생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름에 비가 오면 일부 옥상의 배수구가 막혀 빗물이 방지턱을 넘어 건물로 흘러내리면서 누전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 겨울이면 넘쳐난 옥상의 물이 외벽을 타고 고드름이 돼 안전을 위해 이를 제거하는 작업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입주자 대표회의 관계자는 “지금은 본안소송 준비 중이고, 정비구역 해제가 시의 행정절차상 문제가 있어 위법하니 조합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며 “재건축 찬성 추진위 측이 신 조합장을 이유 없이 내리고 대의원 총회를 열어 백 전 조합장을 다시 추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쟁송 중에 있는 직무 정지된 백 전 조합장이 활동을 하면 (시공회사인) 두산건설에서 내려온 비용을 쓰게 되고 매몰비가 발생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현재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시에서 재건축 조합이 최근 제출한 조합설립 인가 변경 신청을 반려했고 법원이 본안소송에서 조합 측의 의견을 인용해 현재 조합은 살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에 백 전 조합장이 다시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며 “돈이 없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재건축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 아파트 입주자는 안전에 대한 질문에서 “장기수선 충당금이 너무 적어 시행을 못하고 있으며 그래도 올 방수를 해서 사는 게 재건축해서 집을 뺏기는 것보다는 낫다”며 “전기줄이나 복잡한 선들은 현재 업체들과 협의해 정리 중”이라고 답했다.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34년 된 노후 건물이라 옥상은 시멘트 노화로 방수 부분이 부실해졌으며 11월 20일이 지나야 방수 공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각 아파트 배선 관리는 업체를 불러 진행하려 하고 있으며 옥상의 방수 및 아파트 안전에 대해서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운천 주공아파트가) 2015년 안전진단에서 D등급으로 평가됐다면 5년이 지난 현재는 안전이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최근 강화된 안전 진단 법률에 따라 지진에 강한 아파트는 아닐 것”이라는 사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강화된 ‘공동주택관리법 제 33조 1항 안전점검’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기능유지와 안전성 확보로 입주자등을 재해 및 재난 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 31조’에 따른 지침에서 정하는 안전점검의 실시방법 및 절차 등에 따라 안전점검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2항은 이에 대한 관리 주체가 이 사실을 지체없이 시장·군수에게 통보하고 해당 건축물의 이용 제한 및 보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운천 주공아파트를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해당 아파트의 안전이 취약하다는 공통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윤모 충청본부 기자 ilyo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