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세 정상이 북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납치된 ‘발칙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 영화 ‘강철비2:정상회담’이 베일을 벗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전작 ‘강철비’와 같은 배우, 같은 감독으로 이뤄졌지만 각자 전혀 다른 연기와 연출을 한다는 점에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정우성, 곽도원에게는 전작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했고 양우석 감독에게는 이 같은 캐릭터들을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굴릴 것인지에 우려가 모인 탓이다. 다만 스포일러를 피해 단 한 마디로 영화를 정리해 설명할 수 있다면, ‘이 같은 우려는 버려두고 극장을 찾아도 무방하다’는 것을 들고 싶다.
남한과 북한, 미국의 정상회담 중 북한 내 군부 세력의 쿠데타로 세 정상이 납치당한다는 기본 골조에서 쌓아올려진 이야기는 그 흐름과 캐릭터의 면면,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굳이 꼬장꼬장하게 흠 잡을 곳이 없다. 초반 30여 분까지는 근현대사 수업을 받고 있다는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중반부부터 몰아지는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과 연출은 그 단점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는다.
전작에서 전직 북한 정찰총국 요원으로 분했던 정우성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한경재 대통령 역을 맡았다. 반대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 역이었던 곽도원은 이번엔 북한의 호위총국장 박진우로 분한다. 서로의 입장도, 캐릭터도 뒤바뀌었지만 전작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 변신으로 관객을 안심시킨다.
‘강철비2: 정상회담’은 전작의 주연 배우를 그대로 기용하되, 캐릭터를 완전히 바꾸는 모험을 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번 작품에 새롭게 영입(?)된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사 역의 유연석 역시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제까지 남한 관객들의 뇌리에 스테레오 타입으로 박혀 있는 북한의 장군님이 아닌, 길쭉한 키와 엘리트적인 면모를 드러내지만 그 위화감은 초반 등장 몇 분 안에 사그라진다.
한국의 한 대통령과 미국의 스무트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분)과 감금당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깨알 같은 개그 신을 선사하며 묻히지 않는 존재감도 빛난다. 이 세 명이 등장할 때마다 배우들의 뒤로 실제 인물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배우들의 모습에 현실과 견줄 만큼의 리얼리티가 살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세 정상들이 납치된 뒤에도 이어지는 만담 장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수함 속의 긴장감 속에서도 관객들의 웃음을 계속해서 유쾌하게 이끌어 낸다.
여기에 더해 세 주연 배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가 있다. 잠수함 전투의 북한 최고 전략가이자 북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 역의 신정근이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는 초반부 30여 분이 지나고 나면 스크린 속 세계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저에서 벌어지는 제3차 세계대전의 전초전과도 같은 이 영화의 액션 신을 신정근이 견인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극중 가장 인상적이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재차 관람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를 단 한 명만 꼽자면 그에게 몰표가 가지 않을까.
중반부부터 극중 태풍처럼 몰아치는 ‘잠수함 액션’ 속, 북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 장기석 역의 신정근의 존재감이 눈에 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세 명의 각국 정상과 북한 쿠데타의 핵심 박진우가 중심인물이긴 하지만, 장기석까지 합세하면서 각자의 지향점을 명확히 나누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냉전시대와 마찬가지로 2021년에도 여전히 강대국들 사이 ‘새우 등’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럼에도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의 대통령과 국가의 정체성과 인민을 위한 기로에 선 북한의 젊은 국무위원장. 정치의 본질은 ‘쇼 비즈니스’라 여기며 남북한은 그 발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사업가 출신의 미국 대통령과 북미 평화협정에 반대하고 혈맹 중국과의 동맹을 이어가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호위총국장.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진정으로 조국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군인까지 제각각이 지향하는 애국과 위국의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면서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은 이야기를 채워내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연출에 대해 양우석 감독은 “제 숙명처럼 최선을 다해 한국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다”고 설명했다. 23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강철비2: 정상회담’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양 감독은 “30년 전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한반도만 유일하게 냉전으로 남아있다”라며 “한반도가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네 가지라 생각한다. 전쟁, 협상을 통한 비핵화, 아니면 북한 체제의 붕괴 혹은 대한민국의 핵무장”이라고 짚었다.
23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강철비2: 정상회담’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양우석 감독은 영화에 대해 “숙명처럼 만들었다”고 평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면서 “사실 ‘강철비1’과 ‘강철비2’를 보여드린 건 이 네 가지 길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전쟁과 상호 핵무장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평화체제로 가야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라며 “9.11 사태 때 미국이 가장 후회했던 건 ‘우리가 왜 그런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았던가’라고 한다“며 ”제 숙명처럼 최선을 다해 한국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어떤 정치적인 시각보단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남북미 정상회담 중 쿠데타로 세 국가의 수장들이 북한 핵잠수함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양우석 감독이 스토리 작가로 참여한 웹툰 ‘정상회담: 스틸레인3’를 원작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결코 넘치게 하진 않는다. 자꾸만 실존인물이 뒤에 겹쳐 보이는 한 대통령(정우성 분), 조 북한 국무위원장(유연석 분), 스무트 미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 분)에 더해 어디서 정말 북한 주민들을 모셔와 촬영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 면면에 주목.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 29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