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KBO 리그에서 18년 만에 단일리그 2할대 승률 팀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한때 9위 SK 와이번스와 게임차를 2경기까지 좁히면서 탈꼴찌를 노리기도 했다. 한화가 잘해서가 아니라 SK가 함께 못해서였다. 7월 초까지만 해도 KBO 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승률 2할대 팀을 2팀 배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후 희비가 엇갈렸다. SK가 조금씩 승수를 늘려가는 사이 한화는 다시 연패에 빠졌다. 격차는 더 벌어졌다. SK 역시 8위 롯데 자이언츠에 10경기 차가량 뒤져 있지만, 한화는 그보다 한참 더 뒤로 처졌다.
그 탓에 다른 8개 구단은 ‘역대급’ 승리 인플레이션 효과를 누리고 있다. 5강권 팀은 물론이고, 7위 KT 위즈와 8위 롯데까지 승률 5할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치열한 5강 경쟁 중인 LG 트윈스는 고비가 닥칠 때마다 한화를 만나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은 급기야 7월 초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리그에 함께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2할대 승률팀은 얼마나 드물었나
KBO 리그 역사에서 한 팀이 2할대 이하 승률을 기록한 적은 4번밖에 없었다.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승률 0.188로 유일무이한 1할대 승률 기록을 남겼다. 80경기 체제에서 15승 65패. 역대 최저 승률이자 앞으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수치로 여겨진다.
4년 뒤인 1986년엔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가 승률 0.290으로 역대 두 번째 2할대 이하 승률 오명을 썼다. 빙그레도 창단 첫 시즌이었다. 전기리그 12승 42패, 후기리그 19승 1무 34패로 전체 31승 1무 76패를 기록했다. 순위는 물론 7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그래도 승률에 비해 경기력은 좋은 편이었다. ‘이기는 요령’이 부족해 29번이나 1점 차 패배를 당한 게 아쉬움이었다. 후기리그에선 청보 핀토스를 제치고 6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이후 13년간 전 구단이 3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지만, 양대리그(매직리그, 드림리그) 체제였던 1999년 해체 직전의 쌍방울 레이더스가 또 한 번 2할대 승률로 참담한 시즌을 보냈다. 그해 쌍방울의 승률은 고작 0.224. 매직리그 최하위였다. 반면 드림리그 꼴찌인 해태 타이거즈의 승률은 0.465로 무려 2할 4푼이나 높았다. 양대리그 전력 불균형 논란이 불거진 계기가 됐다.
심지어 쌍방울은 132경기 체제에서 97패(28승 7무)를 당해 아직까지 KBO 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패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주전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다 팔아넘기고 사실상 백기를 든 채 간신히 치러낸 시즌이었다.
이 기록에 타이를 이룬 팀은 3년 뒤인 2002년 롯데다. 롯데는 133경기 체제에서 35승 97패 1무(승률 0.265)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현재까지 마지막이자 21세기 유일한 2할대 승률로 남아 있다. 8개 구단 체제였던 당시 7위 한화(0.461)와도 격차가 컸다. 올해의 한화가 그렇듯, 2002년엔 롯데로 인해 ‘승리 인플레’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화는 올해 쌍방울과 롯데가 남긴 97패 기록마저 갈아치울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 144경기 체제에서 기록한 86패가 구단 역사상 최다패였지만, 승률은 0.403으로 올해보다 높았다. 하지만 67경기에서 50패를 당한 페이스라면, 산술적으로 107패까지 할 수 있다. 창단 최저 승률(0.290)과 최다패 기록을 모두 새로 쓰는, 처참한 시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중도 퇴진한 뒤 일찌감치 리빌딩 모드로 돌입했다 해도, 이 정도 부진은 ‘프로’로서 너무 뼈아프다.
한화는 김응용 김성근 등 명장의 영입, 이용규 정근우 등 대형 FA 영입에도 암흑기 탈출에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예상보다 길어지는 한화의 암흑기
한화의 ‘암흑기’는 예상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은 단 한 번. 한용덕 감독 부임 첫 해인 2018년 정규시즌 3위에 오른 게 유일하다. 당시 한화는 모처럼 경험하는 가을잔치에 크게 감격했지만,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오히려 그때의 빛 때문에 지금의 그림자가 더 짙어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때는 한화도 당연한 듯 가을 무대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전신인 빙그레 시절에는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한 리그 최강 팀 중 하나로 군림했다. 빙그레는 창단 3년 만인 1988년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92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 가운데 세 번이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히곤 했지만, 1999년에는 마침내 우승의 한도 풀었다.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이 버틴 마운드에 장종훈, 강석천, 송지만, 제이 데비이스가 포진한 타선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4승 1패로 롯데를 꺾고 창단 1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때만 해도 한화가 그후 20년 가까이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2002년과 200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꾸준히 강팀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했다. 2005~2007년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섰고, 특히 2006년에는 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2007년 두산과 플레이오프 이후 한화의 포스트시즌 역사는 11년간 멈췄다.
2008년엔 정규시즌 5위로 아쉽게 포스트시즌행 티켓을 놓쳤지만, 2009년엔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면서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2009~2014년 6년간 다섯 번이나 꼴찌에 머물렀다. 8개 구단 체제였던 2011년 LG와 공동 6위에 오른 게 그 기간 최고 성적이다. 리그 최강 에이스인 류현진의 존재도 소용이 없었다. 2013년엔 9개 구단으로 팀이 하나 더 늘었는데도 여전히 순위표 가장 마지막 자리에 있었다. 2015년엔 10개 구단 중 6위로 올라서면서 마침내 암흑기 탈출을 눈앞에 둔 듯했지만, 2016년 7위와 2017년 8위로 다시 한 계단씩 내려갔다.
그 사이 한화의 감독은 계속 바뀌었다. 감독과 감독대행을 합하면 무려 7명이나 된다. 2명의 감독은 중도 퇴진했다. 마지막 포스트시즌을 함께한 김인식 감독이 2009시즌을 끝으로 물러난 뒤 한대화 감독, 한용덕 감독대행, 김응용 감독, 김성근 감독, 이상군 감독대행이 차례로 감독석을 거쳤다. 김성근 감독이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시기에는 김광수 감독대행도 지휘봉을 잡았다.
그후 한용덕 감독이 정식 사령탑으로 부임한 2018년 마침내 묵은 한을 풀고 가을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첫 관문인 준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조기 탈락했다. 2019년엔 다시 10개 구단 중 9위로 수직 하락했고, 올해는 끝내 한용덕 감독마저 시즌 도중 물러난 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포스트시즌을 다시 경험한 뒤 팀이 나아지기는커녕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모양새다. 2군 사령탑이던 최원호 감독대행이 난파하던 한화를 맡아 남은 시즌을 지휘하고 있다.
#한화보다 먼저 10년 터널을 거친 LG
한화 이전엔 LG가 있었다. LG는 한화와 마찬가지로 10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역대 최장 기간 타이 기록이다.
LG는 1990년대 ‘신바람 야구’를 펼치며 이름을 날리던 팀이다.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997년과 1998년에는 2년 연속 준우승을 했다. 2002년에도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그러나 이후 오랜 시간 암흑기를 거쳤다. 2003년 곧바로 6위까지 떨어지면서 3년 연속 여섯 번째 자리에 머물렀다. 2007년 잠시 포스트시즌 문턱인 5위까지 반등했지만, 이듬해인 2008년엔 급기야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그 후에도 LG의 성적은 8개 팀 가운데 7위-6위-6위(공동)-7위였다. LG 사령탑도 계속 교체됐다. 이광환-이순철-양승호(대행)-김재박-박종훈 감독까지 5명이 차례로 지휘봉을 잡았다가 물러났다.
LG가 마침내 포스트시즌 탈락의 굴레에서 탈출한 것은 2013년이다. 2012년 LG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기태 감독이 이듬해 LG를 정규시즌 2위로 이끌었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패하면서 최종 순위는 3위가 됐지만, 10년간 가을야구 경험을 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는 충분히 감격할 만한 결과였다. LG는 2014년에도 4위에 올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롯데의 암흑기는 전화번호를 연상케 하는 ‘8888577’로 유명하다. 롯데의 2000년대 초중반 팀 순위를 표현한 숫자들이다. 롯데 역시 1999년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팀이다. 1997년과 1998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도 1999년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 부산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반짝이었다. 롯데는 2001~2004년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러 역대 최장 기간 연속 꼴찌 기록을 남겼다. 2005년 5위까지 올라섰지만, 2006년과 2007년 다시 7위로 내려앉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독 교체 역시 수순이었다. 김명성-우용득-백인천-김용철(대행)-양상문-강병철 감독이 차례로 거쳐 갔다. 그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롯데의 7년 순위는 어느덧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불명예스러운 ‘전화번호’는 2008년에야 멈췄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뒤다. 8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롯데는 이후 5년 연속 가을잔치에 진출했다. 2012~2016년 다시 4년 연속 가을야구를 건너뛰는 아픔을 맛봤지만, 2017년 정규시즌 3위로 올라서면서 제2의 암흑기를 차단했다.
#암흑기에 빠진 팀들 공통점
암흑기에 빠진 팀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화, LG, 롯데처럼 감독이 자주 바뀐다. 구단은 하루 빨리 성적을 끌어올리길 바라면서 새 감독을 영입한다. 하지만 이미 망가져 있는 팀을 재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감독들의 압박감은 커지고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구단과 팬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새 감독도 ‘실패’ 낙인이 찍히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악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외부에서 ‘우승 청부사’로 알려진 명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한화는 암흑기에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 1·2위 감독인 김응용 감독과 김성근 감독을 차례로 영입했다. LG 역시 현대에서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김재박 감독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았다. 오히려 베테랑 감독 3명의 승승장구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다.
공격적인 외부 선수 영입도 오랜 기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한 팀들의 고육지책 가운데 하나다. 한화는 2010년대 중반 프리에이전트(FA)를 대거 영입하고 특급 외국인 선수에게 엄청난 몸값을 쏟아 부었다. 롯데와 LG도 암흑기 시절 선수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투자 효과도 크게 보지 못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