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둘러싼 논란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박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 당시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SNS 떠돌던 ‘박원순 고소장’ 실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직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받은글’ 형태로 돌아다닌 ‘박원순 고소장’이었다(관련기사 “죄송하다” 고 박원순 시장 피소부터 주검 발견까지 ‘긴박했던 3일’).
‘박원순 고소장’이라고 알려졌지만 고소장 형태는 아니다. 또한 내용 중 ‘본인은 2015년 7월 13일부터 2020년 7월 16일까지 서울특별시장 비서실의 비서로 근무하였고’라는 부분에선 날짜도 잘못됐다. 고소 시점이 7월 8일인데 이미 그 전에 비서 근무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 관심이 집중된 까닭은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라 누군가 마음대로 지어낸 글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A 씨의 피해사실과도 큰 줄기는 일치했다.
결국 SNS를 통해 떠돈 ‘박원순 고소장’의 실체가 드러났다. 실제 고소장은 아니지만 피해자 A 씨 측이 작성한 글은 맞다. 고소장에 적시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미리 작성한 ‘1차 진술서’였던 것이다. A 씨의 모친은 평소 친분이 있던 교회 목사에게 ‘1차 진술서’를 전달하며 기도를 부탁했다. 진술서를 준 까닭은 딸이 당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기도해주길 바라서라고 알려졌다. 목사는 또 다른 교회 관계자에게 이 글을 전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A 씨 측은 7월 13일 해당 문건의 외부 무단 유출의 책임을 물어 교회 목사 등 2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A 씨 측이 해당 교회 목사가 유출했다고 파악한 단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의 글에서는 ‘2015년 7월 13일부터 2020년 7월 16일까지’라는 서울시장 비서 근무 기간이 잘못 기재돼 있다. 이는 1차 진술서 작성 당시 발생한 오타로 그 부분이 그대로 유출된 터라 유출 경로가 바로 교회 목사로 지목됐다.
진술서 내용이 유출되면서 피해자 A 씨는 피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2차 피해를 입게 됐다. 이런 까닭에 유출자에 대한 고소가 이뤄진 것이다. 반면 고 박원순 시장 역시 관련 내용이 유출되면서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에는 피의사실 공표도 엄단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사망한 터라 사자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일부 고 박원순 시장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사자명예훼손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은 물론이고 사실을 적시해도 성립하지만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할 때만 성립하고 사실을 적시한 때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만약 박 전 시장 측에서 진술서 유출과 관련 사자명예훼손죄로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그 내용이 허위임을 주장하고 입증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자명예훼손 소송은 오히려 피해자 A 씨 측이 더 원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사자명예훼손은 허위 사실 적시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관련 소송이 진행되면 ‘박원순 고소장’이라 불리는 글의 진위를 파악하는 수사가 필요하다. 사자명예훼손 소송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된 고 박원순 시장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실종된 박 전 시장 수색 작업 당시 언론 브리핑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박원순 휴대전화 비밀번호 논란
당초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수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박 전 시장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는 아이폰 XS 기종으로 비밀번호를 모르면 내부 자료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이 단 며칠 만인 7월 22일 풀어냈다. 피해자인 전 비서 A 씨가 비밀번호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가족도 모르는 고인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어떻게 비서였던 A 씨가 알고 있었는지를 두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바로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 주장이 이어졌다.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박 전 시장이 A 씨에게 보낸 메시지와 사진 등은 가장 유력한 증거인데 A 씨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면 자작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시장님 아이폰 비번을 피해자가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성희롱성 메시지와 사진 등을 보냈다는 휴대전화가 고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인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박 전 시장은 평소 3대의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시신과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는 유일하게 업무용으로, 나머지 2대가 개인용이었다. A 씨에게 성희롱성 문자와 사진을 전송했다면 개인용 휴대전화로 보냈을 가능성이 더 크다.
A 씨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까닭 역시 업무용 휴대전화이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비서실에서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업무용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수사는 박 전 시장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박 전 시장이 어떻게 A 씨의 고소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도 관련 영장이 추가로 필요하다. 강제추행 혐의 관련 수사에 대해서는 이미 경찰이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압수수색 필요성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또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 역시 유족 대리인과 서울시 측의 참여 하에 이뤄진다.
서울시에서는 올해 4월에도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4·15 총선 전날 밤에 발생한 이 성폭행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까닭은 바로 서울시의 대응 과정의 문제점들 때문이다. 서울시청 청사 전경. 사진=일요신문DB
#‘서울시청 4월 성폭행 사건’의 중요성
서울시에서는 지난 4월에도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4·15 총선 전날 밤에 발생한 이 성폭행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까닭은 서울시의 대응 과정 문제점들 때문이다.
문제의 사건도 박 전 시장의 비서실과 연관돼 있다. 비서실 남자 직원이 동료들과의 술자리 이후 술에 취한 여성 동료 공무원을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 공무원은 곧바로 가해 남성 공무원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그런데 서울시의 대응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서울시 역시 해당 사건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지만 가해 남성 공무원에 대한 인사 조치를 미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시장 비서실이 개입한 의혹까지 불거졌다.
4월 14일 사건이 발생해 이튿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에 대한 통상적인 인사조치인 대기발령이 아닌 타부서로의 전보 조치가 이뤄졌다. 결국 사건 발생 9일 뒤인 4월 23일에야 대기발령이 떨어졌다. 그날은 해당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날이다. 인사조치를 미루다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뒤늦게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서울시 공무원노조가 당시 서울시가 직원들의 입단속을 지시하는 등 함구령을 내렸다고 주장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서울시는 “대기발령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 개시 통보 있어야 하는데 그 통보가 빨리 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실제 경찰이 서울시에 수사 개시를 통보한 것은 4월 24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서울시는 이때에도 이미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TV조선은 서울시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관련 보도 이틀 전인 4월 21일 가해자로 지목된 비서실 직원을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했고 상사인 고한석 비서실장에게도 관련 내용이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한편 당시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공무원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런 까닭에 서울시는 이번 박 전 시장 강제추행 사건 처리 과정에서 4월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도 거세 비판을 받고 있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4월 이후엔 박 전 시장 성추행 건도 내부에 꽤 알려져 있던 상태였다. 때문에 4월 성폭행 사건을 조사할 경우 박 전 시장에게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이 사건을 조사도, 징계도 없이 묻으려 했을 가능성이 아주 커 보인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성추행 방조범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처벌하는 것이 목표이며 피고소인(박 전 시장)이 사망했더라도 방조한 사람에 대한 수사와 법적 처벌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피해자 A 씨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2일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는 이 사안에서 책임의 주체이지, 조사의 주체일 수 없다”며 “A 씨가 4년 넘는 시간 동안 약 20명의 전·현직 비서관에게 성고충을 말하며 전보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가 기억하는 것만 하더라도 부서 이동 전 17명, 또 부서 이동 뒤 3명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또 이들 중에는 피해자보다 높은 직급,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인사 담당자’도 포함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서울시는 침묵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시장을 정점으로 하는 서울시의 업무체계가 그동안 이들을 침묵하도록 만든 위력적 구조”라고도 지적했고, 김 변호사는 “성추행 방조범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처벌하는 것이 목표이며 피고소인(박 전 시장)이 사망했더라도 방조한 사람에 대한 수사와 법적 처벌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