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디널스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기 시작하자마자 너무 놀라서 옆에 있던 코치들한테 ‘저 투수가 누구고, 몇 살이며, 어느 나라에서 온 거야?’라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 투수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의 피칭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문제되는 게 없었다. 그는 뛰어난 피칭 감각을 갖고 있는 투수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그의 보직은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한다. 사진=이영미 기자
발델리 감독은 김광현의 장점으로 “팔의 힘이 좋았고, 홈플레이트 안과 밖, 원하는 곳에 자신의 공을 꽂아 넣었다”면서 “선발투수답게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면서 높은 회전수로 선수들을 상대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2, 3월 스프링캠프 내내 세인트루이스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김광현의 보직이 선발일지 불펜일지 궁금증을 가졌다. 김광현도 이런 기자들의 관심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관련 질문이 나오면 “어떤 보직이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루틴이 익숙한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팀 상황에 따라 불펜을 맡는다고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김광현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고 불펜에 이름을 올렸다. 불펜 투수라고 해도 어느 위치에서 공을 던질지 궁금했는데 지난 2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시범경기를 통해 의문이 풀렸다. 팀이 6-3으로 앞선 9회초 김광현이 등판했고, 그는 1이닝 동안 16개의 공을 던지며 3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고 시범경기 첫 세이브를 올렸다.
KBO 리그 시절 김광현은 불펜과 거리가 멀었다. 마무리 경험은 2010년과 2018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전부였다. 루틴을 생명처럼 여기는 투수가 14년 동안 이어진 야구 패턴을 내려놓고 마무리 투수로 새로운 무대에 나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김광현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의 측근에 의하면 김광현이 바로 현실을 수긍했고 말 그대로 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
그동안 야구장에서 훈련을 마치면 주로 게임에 몰두하며 여가 시간을 보냈다는 김광현은 시즌 개막이 카운트에 들어가면서 게임도 줄이고 주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광현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 진출이 성사됐고,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늦춰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SK 와이번스 시절 인연을 맺은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의 말처럼 마무리 투수로 가장 자신 있는 공만 던진다면 김광현은 충분히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계산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