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 돌모산 고부이씨 재실 ‘원모재’
[부안=일요신문] 매년 중복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복달임 음식을 즐기는 ‘복놀이’ 전통이 조선시대말부터 2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복달임은 초복과 중복, 말복 등 삼복(三伏)에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풍습을 말한다. 복날에 복달임을 위해 가족이나 이웃이 모여 노는 것은 ‘복놀이’라 부른다.
27일 금석문학자인 전북문화재위원회 김진돈 위원에 따르면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 돌모산 마을 고부이씨(古阜李氏) 석호공파(石湖公派) 종중에서 매년 중복에 재실에서 복달임을 장만해 이 마을은 물론 이웃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즐기는 ‘복놀이’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중복인 26일 고부이씨 석호공파의 재실인 ‘원모재’(遠慕齋)에서는 돌모산마을과 이웃 마을 어르신 30여 명이 종중에서 장만한 닭과 오리를 넣고 끓인 백숙, 햇김치, 깻잎김치, 수박, 복숭아 등 복달임 음식을 즐겼다.
고부이씨 종중에서는 중복 전날부터 손님맞이를 위한 재실 대청소와 함께 닭과 오리를 솥에 넣고 갖은 약재와 함께 푸짐한 백숙을 만들어 낸다. 햇김치와 깻잎김치는 필수이고 후식으로 수박과 참외, 복숭아 등 여름 과일도 내놓았다.
이날 복놀이는 고부이씨 석호공파 종중이 재실인 원모재가 세워진 이후부터 매년 중복마다 이웃들과 즐기던 복놀이로 200여년을 훌쩍 넘게 이어져 내려온 종중 전통이다. 재실인 ‘원모재’는 마을 터를 처음 터를 잡은 입향조(入鄕祖)로 효자로 알려진 이승간(李承澗)과 부친인 이철동 등 고부이씨 석호공파의 시제를 지내는 곳.
김진돈 문화재위원은 “재실에서 복놀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한 매우 드문 사례”라며 “물질문명의 시대라 관습도 없어지는 판국인데 재실 복놀이를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신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원모재’ 편액 글씨가 또 다른 볼거리이다. 김 위원은 “재실 중앙에 보니 낯익은 글자가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창암 이삼만의 글자인데 전체적으로 포치가 잘 됐고 더디게 가는 필획 속에 역시 대가의 흔적이 보인다”며 편액 글씨의 주인공 창암을 확인해줬다.
‘원모재’ 창암 이삼만 편액글씨
김 위원은 “‘원모재’(遠慕齋)라 쓰고 손수 인장은 한쪽에 그렸으며 약 40~50대 한참 공부하는 흔적이 보이고 원숙의 단계로 가기 이전의 기초학습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썼던 글씨”라고 분석했다.
또 창암이 정읍 부무실(현 내장면 부전리)에 살면서 석담 암각서와 부무실편액을 남기는데 이때 원래 이름 이규환에서 이삼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시기였고 어느 정도 명필로서 이름이 날리던 시절이어서 당시에 고부이씨들이 창암에게 글씨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창암에 대해 이승간의 후손인 이일구씨는 “우리 재각이 현재보다 아래 쪽에서 아마도 이곳으로 옮긴 지가 200년이 넘었는데 바로 그때 써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그분은 뱀뱅이로 유명한 분이어서 어렸을 때 정월 뱀날이 되면 ‘이삼만(李三晩)’ 또는 백사(白巳) 흑사(黑巳) 황사(黃巳)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였다”고 회고했다.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內寥里) 돌모산은 전체 100여 가구 가운데 80가구가 고부이씨(古阜李氏) 석호공파(石湖公派)이다. 입향조는 이승간(李承澗)이며 마을에는 이승간과 그의 아들 광춘의 효자정문인 세효문(世孝門)이 있다.
이승간은 집에 불이나 어머니를 구하려 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불 속에서 나올 수 없자 어머니를 보호하고자 꼭 감싸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아들 광춘이 마침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이 광경을 보고 다시 불 속에 뛰어들어 아버지를 구하고 할머니를 구했다는 효행이 전한다.
김진돈 문화재위원은 “물질만능과 개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마을의 미풍양속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앞으로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자기반성과 함께 여유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성용 호남본부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