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성폭력 조치 매뉴얼에 따라 피•가해자 분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 교육청 진상 조사 결과 확인됐다. 사진=연합뉴스
전남 영광에 소재한 A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아무개 군(14)이 7월 3일 급성 췌장염으로 숨졌다. 이런 가운데 이 학교에서 동성 학생 간 성추행 사실이 있었음이 7월 28일 교육청 조사 결과 확인됐다. 전남 영광 교육지원청 영광학폭사고처리대책본부(대책본부)는 김 군이 6월 10일부터 17일까지 7일 동안 이 학교 기숙사에서 반복적인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은 김 군의 죽음이 동성 동급생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생긴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리고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했으나 이후 대응이 지나치게 미온했다고도 말했다. 유족 진술에 따르면 6월 19일 처음 피해사실을 알자마자 곧바로 학교에 알렸다. 그러나 학교는 이런저런 이유로 조사 시기를 미뤘다. 개인정보 및 형평성을 이유로 가해자의 정보는 피해자 측에 알리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피해자 정보를 가해자에 알리는 행위도 있었다.
유족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학교는 피해자인 우리에게 가해자에 대한 신상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아들이 지목한 아이들을 가해자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해자들에게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들의 정보가 일부 전해졌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사태 발생시 필수 지침인 비밀유지가 오히려 가해자 편에서 지켜진 셈이다.
김 군의 피해 사실은 옆 반 담임선생님에게까지 알려졌다. 유족은 “피해 사실은 담임선생님에게만 알렸는데, 이후 담임선생님이 아닌 옆 반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옆 반에도 피해 사실이 알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은 더욱 더 등교를 꺼려했고 두려움에 떨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A 학교는 과거에도 유독 학교폭력에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최근 8년 동안 있었던 세 번의 교육청 감사에서 학교폭력 문제 처리에 대한 지적을 연달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 제19조에 의하면,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정정할 경우에는 반드시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정정 대장의 결재 절차에 의해 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영광 교육지원청이 공개한 2009~2014년 감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A 학교는 3학년 학생 2명의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내부결재만 한 뒤 삭제했다. 생활기록부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정정되어야 하는 학교폭력 기록이 관련 증빙자료도 없이 임의적으로 삭제된 것이다.
2017년 이뤄진 감사에서도 어김없이 학교폭력 문제가 지적됐다. 교육지원청 현지처분 내용에 의하면 A 학교는 2014~2017학년도 학폭위 회의록을 작성한 뒤 작성자와 회의자의 서명도 받지 않은 채 회의록을 관리하고 있었다. 자치위원의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등록부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8조에 따르면,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에 대해서는 전자기록생산시스템을 통해 회의록을 생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A 학교에서는 자치위원의 참석 여부와 해당 회의록의 진위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학폭위가 수년 동안 운영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A 학교가 앞장서서 가해자 보호에 힘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A 학교 한 졸업생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왕왕 있었다. 소수 인원이다 보니 친구끼리 불화가 있으면 다른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다. 선후배 사이 문화도 타 학교에 비해 엄격한 편이었다. 그런데 학교는 이런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A 학교는 전남지방경찰청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12일 학폭위를 유보했다.
A 중학교 관계자는 “2014~2017년 감사에서 학폭위 자료 관리 부실로 지적은 받은 바 있다. 감사로 지적을 받은 이후에는 보다 철저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시정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