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건 삼성동 학동사거리 인근에 있는 삼성월드타워 아파트다. 11층 규모로 46가구가 살고 있는 ‘나홀로 아파트’다. 이 거래가 이뤄진 사실은 지난 7월 중순에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거래가 이뤄진 날은 지난 6월 19일.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인 ‘6·1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가 통째로 팔리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매입했다가 논란 끝에 재매각을 추진 중인 삼성월드타워 전경. 사진=연합뉴스
아파트는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사모펀드가 매입했다. 회사는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분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두고 자산운용업계에선 참신한 발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지스자산운용처럼 노후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해 개발이익을 내는 일은 부동산개발업에 가까운 만큼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다. 그동안 사모펀드들은 상업용 빌딩이나 오피스에 투자해 임대수익을 배분하는 상품들을 주로 내놨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수요가 쏠리는 강남 한복판에 사실상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셈이라 적지 않은 차익이 예상됐다. 아파트 소유주도 다수가 아닌 개인이라 조합 결성 등의 절차가 필요 없어 사업 속도도 빠르다. 이 때문에 ‘상품 가치’가 상당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부동산 규제 회피’ 논란에 법무부 장관까지 등판
그러나 정부가 강남과 다주택자, 법인을 겨냥해 잇따라 부동산 정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사모펀드의 ‘이례적 거래’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큰손’ 개인이 투자 목적으로 여러 채의 주택을 사들이거나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모펀드를 활용해 부동산 규제를 회피하는 일종의 변칙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등판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추 장관은 지난 7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남 한복판에서 금융과 부동산의 로맨스가 일어나고야 말았다”며 “금융과 부동산 분리를 지금 한다 해도 한 발 늦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는 지난 7월 22일 검찰에 부동산 불법 거래행위를 단속, 수사하고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하라는 내용의 수사 지시를 내려보냈다. 1순위 단속 타깃은 기획부동산과 부동산 전문 사모펀드가 포함된 ‘금융투기자본’이었다. 이지스자산운용을 겨냥한 조치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다음날 사업을 철회하고 아파트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면서 상황은 일단락 되는 듯 보이지만, 자산운용업계에선 아직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번 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 만큼 비난의 수위가 과하다는 지적부터 나온다. 이지스자산운용의 펀드는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이라, 개인이 부동산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했다는 지적 자체가 잘못됐다는 취지다.
또 해외에선 부동산을 직접 개발해 투자 비용을 낮추고 이익을 늘리는 리츠 사업부터 사모펀드의 주거용 아파트 매입이 활성화돼 있다는 점도 비난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이와 관련,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부동산 이슈가 민감하게 거론되는 상황에서 큰손들의 전유물로 통하는 사모펀드가 투자 수단으로 나타나자 눈엣가시가 된 것”이라며 “투자 대상이 집이라는 이유로 기관투자자들마저 투기자본으로 몰려 불법이 아닌데도 압박을 받는 건 시장은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의 최종 수익자가 외국계 기관투자자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투기’에 가깝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부동산 업계는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 급증이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펀드의 주요 가입자이자 최종 수익자인 엔젤로고든은 그동안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아파트 매입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항변해온 이지스자산운용이 사업 철회를 결정한 배경에는 이 외국계 기관투자자의 존재가 부담이 된 점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에 초과대출을 했던 새마을금고에도 불똥이 튀었다. 사진=새마을금고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 초과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와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400억 원을 들여 아파트를 매입했는데, 이 가운데 270억 원을 새마을금고 7곳에서 받은 대출로 대금을 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아파트 값의 40%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 기준대로라면 이지스자산운용은 100억 원가량을 초과해 대출받은 것이다.
새마을금고는 통상 시중은행이나 2금융권보다 금리가 더 높다. 다만 새마을금고의 규제는 다른 금융권보다 느슨한 편이다. 상호금융기관으로, 금융당국이 아닌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기관들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대출 규정 위반으로 제재를 받으면 임원에게 직격탄이 떨어지는 만큼 내부통제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관계자는 “새마을금고의 대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금리가 높아도 공동대출 부문에선 인기가 높다”며 “이지스자산운용도 이를 겨냥해 의도적으로 새마을금고를 선택한 게 아니냐 지적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주택담보대출이 아니라 리모델링 공사비를 포함한 전체 사업비 800억 원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내부 검토를 통해 초과대출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마을금고중앙회 한 관계자는 “대출을 내준 새마을금고 7곳은 사모펀드가 세입자를 전부 내보내고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택이 아니라 토지를 구입한 것으로 보고 토지 담보 비율(60~70% 수준)을 적용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러나 이번 거래는 아파트를 사들여 개발 후에 시장에 내놓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주택 구입으로 LTV가 적용됐어야 맞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