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국 런던의 존 언더우드는 친구 여섯 명을 자택으로 불러 첫 ‘데스카페’ 모임을 가졌다. 데스카페 홈페이지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비대면 모임을 권장하고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카페에 모여 수다 꽃을 피우는 일은 즐겁다. 예컨대 야구랄지 영화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관한 대화는 어떨까. 2011년 영국 런던에 살던 존 언더우드는 ‘죽음이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애써 외면하는 풍토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 여섯 명을 자택으로 불러 첫 모임을 가졌다. 아울러 스위스 사회학자 버나드 크레타즈가 제창한 ‘카페모르텔(Cafe Mortel)’에서 힌트를 얻어 ‘데스카페’라는 이름도 붙였다. 모임의 취지는 “죽음을 삶의 마지막 단계로 받아들이고, 좋은 마무리를 위한 활동을 하자”는 것이다.
이후 언더우드는 사람들이 모임을 열기 쉽도록, 커뮤니티 ‘데스카페닷컴’을 만들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비영리’ ‘누구나 안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토론으로 유도하지 않기’ ‘맛있는 음료와 디저트 준비하기’ 등의 조건만 갖춘다면 누구든지 데스카페를 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우려를 깨고, 데스카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며,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그리고 현재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관련 모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데스카페 모임에서 차와 디저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먹는 행위는 두려움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세상에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데스카페의 가장 큰 특징은 느슨한 분위기다. 치열한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자리가 아니며, 상담 같은 것 또한 없다. 단지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똑같이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차와 디저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례식에서도 그렇지만, 먹는 행위는 두려움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리지 마일스는 지금까지 35번의 데스카페를 개최했다. 그에게 데스카페의 매력을 묻자 “전문가는 없지만, 대화를 통해 느끼는 점이 많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마일스는 호스피스병동에서 일하고 있는데, 매일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이 끝나면 겸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세상에는 죽음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걸 매번 깨닫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현재의 인생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데스카페에 참가하는 이들은 대부분 초면이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갑작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진 않을까. 마일스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한 것 같다”고 전했다. 보통 서너 명씩 테이블에 나눠서 앉는다. 아무도 대화를 강요하지 않으므로 내성적인 사람도 이야기를 털어놓기 쉽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어느 테이블이든 심오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처음 데스카페를 열었을 때만 해도, 마일스는 “참가자들이 혹여 감정에 북받치지 않을까 싶어 티슈를 몇 통씩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실제로는 웃음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다.
일본 데스카페 참가자의 70%가 20대다. 사진=NNN 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제 모임은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덕분에 거리와 상관없이 참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국 서머싯에서 데스카페를 열어온 니콜 스탠필드도 4월 중순부터 온라인 화상으로 모임을 진행 중이다. 그는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참가자도 있었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대화가 훨씬 실용적으로 바뀐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죽음에 대해 깊이 실감하고 지내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죽음은 우리 일상으로 성큼 들어오게 됐다. 이처럼 죽음을 한층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다보니, 소위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영국의 심리치료사 바스키 리드는 “힘든 시기에 불안과 공포,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말한다. 그는 향후 데스카페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관계성이 깊지 않은 상대이기에 서로 존중하며 ‘내밀한 이야기’를 보다 침착하게 나눌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데스카페 도쿄 모임 로고. 사진=페이스북
일본 역시 온라인으로 모임이 전환됐다. 화상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약 2시간에 걸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줌 인 마이크’를 활용해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언한다. 이번이 세 번째 참여라는 H 씨는 “모임이 끝나면 이상하리만큼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데스카페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자신이 ‘암환자’여서다. 14년 전 H 씨는 유방암이 발병했다. 치료를 통해 회복되는가 싶었지만, 5년 전 “재발했다”는 통보를 들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왜 하느냐’며 걱정을 안기기 일쑤였다. 더욱이 암환자 카페 게시판의 경우 ‘죽음’은 금기의 화제였다. 털어놓지 못하는 만큼 마음의 추가 무거웠다.
반면, 데스카페는 “죽음에 대해 캐주얼하게 말하자”는 것이 콘셉트. 상대방의 죽음에 대한 공포에 공감하면서도 그 의견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다. H 씨는 “말을 함으로써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되어 갔다”고 밝혔다.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의 시간을 소중히 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데스카페는 ‘감사하며 현재를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줬다.
교토여자대학의 요시카와 나오토 박사는 “일본에서도 데스카페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조만간 사망자가 많아지고 출생은 저조해지는 ‘다사(多死)사회’에 진입한다. 박사는 “간호나 장례의 변화, 남겨진 자의 슬픔 케어 같은 과제가 크게 증가하는 동시에 데스카페의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