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박찬구 회장과 박준경 전무는 각각 금호석유화학 지분 6.69%, 7.17%를 보유하고 있다.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의 지분율은 박 회장이나 박 전무보다 높은 10.00%다. 박정구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은 박철완 상무가 현재 금호석유화학의 개인 최대주주인 것이다. 박찬구 회장의 장녀 박주형 금호석유화학 상무의 지분율은 0.98%에 불과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전무가 승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호석유화학 차기 경영권에 재계 시선이 쏠린다. 2019년 12월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나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사진=연합뉴스
1978년생 동갑내기인 박준경 전무와 박철완 상무는 함께 2012년 상무보를 거쳐 2015년 상무에 올랐지만 지난 인사로 전무 직책은 박준경 전무가 먼저 달았다. 2006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박철완 상무가 200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박준경 전무보다 1년 먼저 입사한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모습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이 같은 임원인사 내용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으며 인사 시기도 평소보다 늦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임원인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수준이 아니다보니 최근 수년간 인사와 관련한 내용을 외부에 발표하지 않아왔다”며 “올해 인사가 늦긴 했지만 2019년에도 1분기 말에 인사가 나는 등 매년 인사 시기가 좀 달랐고,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늦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박찬구 회장이 후계자로 장남인 박준경 전무를 염두에 두고 인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같은 시기에 상무가 됐는데 한 명만 전무로 승진시키는 건 뭐가 됐건 이유가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대기업에서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장남과 조카 중 당연히 장남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인사와 경영권 이슈를 결부시키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박찬구 회장과 박준경 전무의 지분을 합치면 박철완 상무의 지분율을 앞선다. 여기에 박주형 상무의 지분까지 더하면 금호석유화학의 향후 후계구도는 박찬구 회장의 뜻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금호석유화학 지분 10.30%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행보다.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 당시 국민연금은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박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한 바 있다. 금호석유화학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 중구 시그니쳐타워. 사진=최준필 기자
앞서 2016년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은 기업가치 훼손 이력과 과도한 겸임을 이유로 박찬구 회장과 김성채 당시 금호석유화학 사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아직까지 이사직을 유지 중인데, 이는 박철완 상무가 박 회장 편을 든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박준경 전무는 2019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라북도 전주시 국민연금 본사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그는 당시 국민연금에 금호피앤비화학의 비스페놀에이(BPA)와 에폭시수지를 통해 수익을 개선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러나 금호피앤비화학의 매출은 2018년 1조 8002억 원에서 2019년 1조 3838억 원으로 줄었고, 영업이익은 2562억 원에서 510억 원으로 하락했다. 금호피앤비화학의 올해 1분기 매출도 3559억 원으로 2019년 1분기 3748억 원에 비해 줄었다.
또 최근에는 박 회장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 펀드 어드바이저스(블랙록)’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각했다. 2017년부터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입을 시작한 블랙록은 2018년 3월 지분율을 8.31%까지 늘렸지만 이후 수차례 지분을 매각해 2020년 6월 기준 블랙록의 지분율은 4.09%다.
박준경 전무와 박철완 상무는 2012년 임원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각각 수지해외영업과 고무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그간 두 부문은 비슷한 성장률을 보였지만 최근 의료용 고무장갑 원료인 NB라텍스가 코로나19 사태에서 금호석유화학 실적을 견인해 박철완 상무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오는 11월부터는 금호석유화학이 추가 증설한 연간 6만 톤(t) 규모의 NB라텍스 생산 설비가 상업가동에 들어간다. 강동진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공중 보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구조적인 수요 개선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 글로벌 1위 프리미엄이 기대된다”며 “금호석유화학은 하반기 추가 증설을 발표하는 등 NB라텍스 글로벌 1위 위치를 공고히 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금호석유화학의 외국인 주주 비율이 30%가 넘는데 이들의 선택도 차기 경영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박찬구 회장은 배당금을 2016년 주당 800원에서 2017년 1000원, 2018년 1350원, 2019년 1500원으로 올리는 등 주주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또 박 회장은 2019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직접 블랙록 관계자를 만나는 등 주주관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없이 박준경 전무와 박철완 상무가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공동경영 체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까지 박철완 상무가 공개적으로 박 회장이나 박 전무와 충돌한 적이 없었고, 한때 금호그룹도 형제가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체제였다.
그러나 재계 다른 관계자는 “두산처럼 공동경영을 하는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공동경영으로 논란을 빚었던 금호석유화학이 다시 공동경영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최근 삼성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언급하는 등 요즘 들어 대기업들이 리더십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공동경영 체제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차기 경영권과 관련해 특별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건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