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재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김민형 씨. 사진=유튜브 채널 ‘개성 아낙’ 갈무리
재월북한 탈북민은 24세 김민형 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유튜브 채널 ‘개성 아낙’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탈북 스토리를 풀어놓았던 인물이다. 유튜브 채널 ‘개성 아낙’은 개성이 고향인 탈북민 김진아 씨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재월북한 김민형 씨는 6월 22일 업로드된 영상에서 2017년 자신이 탈북했던 이유를 밝혔다. 김 씨는 “개성공단이 깨지면서(폐쇄되면서) 살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관련기사 첨단 경계장비가 되레 구멍? 연이은 군 경계태세 해이 논란).
김 씨는 “백마산 자락에서 바라본 김포의 모습이 멋졌다”면서 “집과 아파트가 올라가 있는 여기(한국)가 너무 궁금했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이렇게 (북한에서) 죽는 것보다 한번 가보고 죽자’고 생각했다면서 “북한에서 이렇게 살 바에 내가 궁금한 걸 한번 체험해보자, 다녀오겠다. 이런 생각으로 (한국에) 가게 됐다”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발언은 “다녀오겠다”는 대목이다.
김 씨는 “귀 양쪽이 잘 들리지 않았던 걸 한국에 와서 고쳤다”고 했다. 김 씨는 “두 귀가 안 들렸었는데 지금은 잘 들린다”면서 “한국에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귀를 고쳤을 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귀를 고쳤다는 사실을) 어머니나 형제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한 탈북민은 “다녀오겠다는 발언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보통 탈북을 하면 완전히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지 다녀오겠다는 마음을 먹진 않는다”고 했다. 이 탈북민은 “어머니나 형제들에게 귀를 고쳤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발언에서도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을 당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김 씨의 유튜브 방송이 업로드된 날은 6월 22일이다. 열흘 전인 6월 12일 김 씨는 주거지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방송분 업로드 하루 전인 21일엔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피해 여성 남자친구로부터 신고를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병원에서 증거물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7월 4일 국과수는 피해 여성 몸에서 피의자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과수의 분석 결과가 나온 지 보름 만에 김 씨는 월북을 행동으로 옮겼다.
‘개성 아낙’ 김진아 씨가 7월 19일 오전 1시 1분 경찰에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김민형 씨는 “달러를 가지고 북한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면서 교동도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교동도로 향한 날은 7월 17일이다. 다음 날인 7월 18일 오전 2시 20분쯤 김 씨는 택시를 타고 인천 강화군 월곶리 연미정으로 이동했다.
김 씨는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 철책선을 통과했고, 이어 헤엄을 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씨는 월북한 뒤 며칠이 지나 북한 당국에 자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 자수 이후 김정은은 북한 비상방역체제를 최고 단계로 격상했다.
재월북한 김민형 씨의 이동경로로 알려진 강화 연미정 인근 배수로. 사진=연합뉴스
북한 복수 소식통은 김 씨 월북을 계기로 북한이 내부적인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한국에 돌릴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재월북한 김 씨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묻혀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김 씨가 머무르던 김포 지역은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만약 김 씨가 코로나19 확진 가능성을 인지했다면 재월북 결심을 무르거나 늦췄을 것”이라면서 “(김 씨 월북은) 자신을 둘러싼 신변 변화에 따른 결정이며 코로나19 확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 지도부가 김 씨 월북을 계기로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코로나19 확진자를 보고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럴 경우 코로나19 책임을 한국 측에 돌리면서 추후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심산”이라고 했다.
김 씨 월북 직후 북한 지도부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개성시 코로나19 실태를 긴급점검했다. 7월 30일 조선중앙통신은 “최룡해가 개성시 비상방역사업 정형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최룡해는 긴급점검 과정에서 “당과 국가의 조치에 의해 개성 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 의약품 등 물자보장 사업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데 맞게 소독과 검역을 방역학적 요구대로 엄격히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는 7월 27일 “월북한 사람이 코로나19 의심 환자인지에 대한 부분은 우리 쪽 자료론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같은 날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이 한국에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넘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관련해 “재입북한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하고 그 사람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게 먼저”라고 답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김 씨의 월북은 한국과 북한 양측의 경계태세 틈을 비집었다는 점에서도 파장을 낳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한국 군·경은 김 씨 월북 과정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면서 “김 씨를 잡아내지 못한 건 북한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전문가는 “김 씨의 탈북과 재월북은 남과 북의 경계태세 전반에 걸쳐 허점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짚었다. 그는 “김 씨는 3년 사이 제 집 드나들 듯이 남과 북을 오갔다”면서 “마치 영화 ‘풍산개’의 실사 버전 같다”고 덧붙였다.
북한 소식통과 탈북민 사이에선 재월북한 김 씨에게 대공 용의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전직 대북 공작업무 관계자는 “유튜브에 나온 김 씨를 보면 몸이 상당히 좋다”면서 “헤엄을 쳐서 2~3km 거리를 몇 시간 동안 이동할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김 씨의 제반사항과 북한에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언급했다는 점을 돌이켜봤을 때 김 씨가 ‘일반 탈북민’과 궤를 달리 하는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탈북민은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북한에 살아본 입장에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결심을 하긴 쉽지 않다”면서 “제3국 도피가 아닌 재월북을 선택한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7월 27일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재월북한 탈북민은 총 11명이다. 2015년에 3명이 북한으로 다시 넘어갔고, 2016, 2017년엔 각각 4명이 재월북했다. 올해 재월북자 수는 현재 확인 중이라는 것이 통일부 공식 입장이다. 그간 재월북한 탈북민의 경우엔 해외로 출국한 뒤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탈북자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엔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해외 출국 시 신고 의무가 없다”면서 “탈북자들의 소재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재월북자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았던 인물은 임지현 씨다. 임 씨는 2014년 1월 탈북한 뒤 3년 만인 2017년 재월북했다. 2017년 4월까지 TV조선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임 씨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3개월 뒤 임 씨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TV’에 등장했다.
임 씨는 해당 매체에 등장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앞서의 탈북민은 “7월 재월북한 김 씨가 임 씨와 비슷하다”면서 “추후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김 씨 역시 북한 지도부 선전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