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스스로 찾아서 가입하는 인터넷이나 전화가입을 제외하면 보험판매 시장에서 GA가 대세가 된 지는 꽤 오래됐다. 이미 GA 소속 설계사수도 보험사 전체 설계사수를 넘어섰다. 인맥에 의존해 보험을 판매하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꼼꼼한 비교와 분석이 필수가 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GA는 특정 보험사에 속하지 않고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한다. 고객의 입장에선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 상품을 한 번에 비교해 선택할 수 있다. 설계사들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와 수당을 지급하는 GA로 이직이 늘어나는 추세다.
보험업계가 GA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도 변화를 준비하는 가운데 신한생명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대형 GA는 190개로 전년 대비 12개 늘었다. 대형 GA는 소속 설계사 수 500명 이상인 회사들이다. 이들의 소속 설계사 수는 19만여 명에 달한다. 보험회사에 직접 소속된 설계사 18만여 명보다 1만 명가량 많다. 물량 공세에 인해전술이 더해지니 판매도 계속 늘고 있다. 중·대형 GA 기준 지난해 신계약 건수는 1461만 건으로 전년 대비 13.4% 늘었고 수수료 수입 역시 7조 4324억 원으로 20.8% 증가했다.
이런 추세를 모를 리 없는 일부 보험사들은 일찌감치 자회사 형태의 GA를 설립해 대세에 동참했다. 현재 GA 자회사를 운영하는 보험사는 삼성생명을 비롯해 한화·푸르덴셜·라이나·미래에셋·메트라이프·ABL생명 등 7곳에 달한다.
하지만 그동안 보험사의 자회사형 GA는 한계가 있었다. 본사와 GA의 보험상품과 보험료는 똑같다 해도 설계사 수당까지 같아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설계사에게 GA의 가장 큰 매력은 높은 판매수수료를 지급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회사형 GA는 본사 소속 설계사의 반발 때문에 큰 차별을 두기 어려웠다. 이렇다보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 GA가 시장을 무섭게 잠식해 들어오면서 보험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부 밥그릇 싸움에만 매달리다가는 아예 밥줄이 끊길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보험사는 내년 7월 오렌지라이프와의 통합을 앞둔 신한생명이다. 신한생명은 200억 원을 출자해 GA 자회사 ‘신한금융플러스’를 설립했다. 은행계 생보사가 GA를 설립한 것은 신한이 처음이다. 은행계 금융지주사의 GA 소유를 허용하도록 지난해 금융지주사 감독규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으로 신한생명은 성대규 사장 취임 이후부터 급성장하는 GA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
신한생명은 신한금융플러스에 본사 출신 관리자 3명을 내려보내 조직 구축 작업에 나섰다. 대표는 이성원 전 신한생명 전략기획팀장이 맡았다. GA 자회사의 조직구성은 자회사 이동을 희망하는 신한생명 설계사와 타보험사, GA 소속 설계사가 주축이 될 예정이다. 보험업계는 영업문화가 다른 두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기 전 단계로 자회사형 GA를 두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한생명은 지난 2월초부터 GA 자회사 설립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왔다. 금융당국과의 협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스케줄까지 준비하는 등 자회사 설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신한생명은 텔레마케팅(TM) 채널과 방카슈랑스 채널에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여성 보험설계사 비중이 높다. 반면 대면 채널 위주인 오렌지라이프는 남성 보험설계사들이 많은 편이다.
신한금융플러스는 8월 중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상품 추천 시스템과 금융 소비자보호 중심의 책임 경영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생명을 시작으로 다른 은행계 보험사들의 GA 설립이나 인수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 중 NH농협생명은 금융지주 차원에서 GA 설립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농협생명을 중심으로 한 GA 설립을 검토하라”는 특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김광수 회장의 지시를 받고 내부적으로 농협생명의 자회사 GA 설립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농협금융은 신한금융플러스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플러스의 판매구조 및 향후 계획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내년 중 설립을 목표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KB는 한 차례 KB손해보험 중심으로 GA 설립을 검토하다 중단한 상태지만, 시장 판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대응이 불가피하리라는 전망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KB금융지주도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완료하면 GA 설립이나 인수를 검토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KB는 한 차례 KB손해보험 중심으로 GA 설립을 검토하다 중단한 상태지만, 시장 판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대응이 불가피하리라는 전망이다. KB의 경우 푸르덴셜생명 인수 완료 후 일정시간 안정화 과정을 거친 뒤 본격적인 GA 설립 검토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GA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한화생명은 대형 GA 인수로 몸집을 확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화생명은 피플라이프 인수를 검토 중에 있다. 피플라이프는 삼성생명 출신인 현학진 회장이 2003년 설립한 GA로, 업계 10위 규모다. 현재 109개 점포를 갖고 있고, 연내 25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피플라이프 영업수익은 242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5% 증가했다. 하지만 당기순손실은 328억 원을 기록,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한화금융에셋과 한화라이프에셋 등 GA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한화생명은 피플라이프 인수를 통해 영업조직 강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IT(정보통신) 기업들도 GA를 설립해 보험사들과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토스·뱅크샐러드 등 핀테크 기업에 이어 포털 1위 네이버도 최근 ‘NF(네이버파이낸셜) 보험서비스’라는 상호로 법인 등록을 한 상태다(관련기사 뛰는 네이버·카카오 날개까지…금융권 ‘빅테크 공습’ 사이렌).
보험업계는 4000만 명의 가입자를 활용해 네이버가 디지털 전문 GA를 표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권에서조차 변화가 더디다는 평가를 받던 보험업계도 시대변화를 거스르지는 못하는 것 같다”면서 “이름값으로 보험 팔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말 그대로 무한경쟁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