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카드’를 깜짝 선보이자, 외교 당국자들 사이에선 꽉 막힌 한일 관계의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7월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비공개 회의를 위해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애초 박지원 원장 카드에 담긴 문 대통령 의중은 교착된 남북관계를 돌파할 적임자에 방점을 찍었다. 박지원·이인영(통일부 장관)·서훈(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를 통해 남북 관계를 북미 정상회담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내치 포석도 담겼다. 국민의당 시절 오전 회의 때마다 문 대통령을 때린 ‘문모닝’을 구원투수로 영입, 협치와 탕평을 매개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취지였다. 문 대통령 복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내정 후 “협치와 탕평 인사의 끝판왕”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플러스알파(+α)인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박 원장 일거수일투족은 정치권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양국은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 공시송달 기한 종료일인 8월 4일 이후 올해 하반기 외교의 최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여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원장은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친분이 깊다. 박 원장은 일본 발 경제보복이 한창인 지난해 8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일본 오사카를 방문, 니카이 간사장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
박 원장은 당시 한일 관계의 해법으로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처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처럼 하면 된다”고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한일 양국이 발표한 ‘21C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말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담은 내용이 양국 공식 문서에 처음 명시된 선언이다.
한일 역할론은 박 원장뿐이 아니다. 서훈 실장은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을 한일 소통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기타무라 국장은 지난 7월 8일 서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취임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25분간 통화에서 한일 정세를 주로 논의했다. 기타무라 국장은 일본 내 대북 전문가로 알려졌다. 대북 전문가가 한일 카운트파트너로 마주 앉음에 따라 양국 외교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7월 28일 오후 5시 50분 ‘남북 이면 합의서’ 논란 중에 박 원장의 임명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협상의 두 주역이자, 한일 관계 역할론을 부여받은 ‘박지원·서훈’ 조합은 7월 29일 자정을 기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박 원장은 같은 날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조국이 우리에게 요구한 시대적 소임을 반드시 해내자”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