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이 지분을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사장에게 전부 넘긴 데 대해 그룹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진은 한국타이어의 기존 강남 역삼동 사옥. 사진=일요신문DB
조희경 이사장 측은 30일 서울가정법원에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은 법정후견 제도의 한 종류로 나이가 많거나 장애, 질병 등으로 사무 처리나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동생이자 그룹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전량을 넘긴 조양래 회장의 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의심스러우니 진위를 가려달라는 취지다.
조 이사장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조 회장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양래 회장은 지난 6월 26일 조현범 사장에게 본인이 소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그룹 지분을 기존 19.31%에서 42.9%로 늘리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타이어·한국아트라스비엑스·한국네트웍스·한국카앤라이프를 지배하는 지주사란 점에서 이번 지분 승계는 조 회장이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조현범 사장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룹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은 19.32%,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0.83%, 차녀 조희원 씨는 10.82%로 지분율 변동이 없었다.
조 회장의 지분 매각으로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조희원 씨 등 남매들이 연합해 조현범 사장을 상대로 경영권 다툼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조현범 사장이 납품업체로부터 6억 1500만 원을 챙기고 계열사 자금 2억 6000만 원을 빼돌린 배임 횡령·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등 좋지 않은 시기에 승계가 이뤄진 점도 이상기류로 감지됐다. 당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일축했으나 결국 가족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조 이사장 측은 이날 “조 회장은 조 사장에게 주식 전부를 매각했는데, 그 직전까지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며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으며, 사후에도 지속 가능한 재단의 운영방안을 고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승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회사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며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밀실에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년후견심판 청구가 접수되면 법원은 의사 감정을 통해 조양래 회장의 정신 상태를 확인한다. 만약 법원이 질병, 노령 등으로 사무 처리나 의사결정을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인정할 경우 후견인을 지정한다.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은 이후 재산 등을 보호하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조 회장 측은 이에 불복해 항고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면 후견인 업무는 정지된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그룹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나섰다는 것은 장남 조현식 회장과 차녀 조희원 씨가 뜻을 같이 하고 차남 조현범의 승계를 반대한다는 의미”라며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지분 승계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분 매각이 조양래 회장 본인의 의사를 반영한 정상적 거래였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성년후견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지분 거래 무효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며,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